강제성 부족, 실효성 논란

원청 노동자 보호만 의무화

사업주는 고객의 폭언·폭행에 노출된 '감정노동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업주는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이런 내용을 포함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하고 10월부터 시행됐다.

이번 개정은 국내 산업구조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중심을 이동하면서 감정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각종 피해와 문제가 사회 이슈로 발생한데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할 법적 ·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없었다. 피해를 입은 감정노동자는 이직 또는 퇴사하거나 개인 비용으로 상담치료를 받는 등 개인적인 대응을 했다. 이번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으로 감정노동자의 권익이 크게 보장될 이란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사업주는 고객응대 노동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건강장애가 발생하거나 가능성이 높을 경우 일시적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거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 필요할 경우 치료·상담도 지원해야 한다. 사업주는 또 고객이 폭언 등을 하지않도록 요청하는 문구를 사업장에 게시하고, 전화 응대 시 이를 음성으로 안내한다. 고객응대업무 지침을 마련하고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예방조치도 취해야 한다. 특히 피해 노동자가 가해 고객에게 법적 책임을 묻고자하면 CCTV 등 증거자료를 지원해줘야 한다. 이 같은 요구 때문에 해고 또는 그 밖에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위반 시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노동계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해 소비자도 상식에 벗어난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과태료 부과 등 강제조항이 있지만 실효성을 담보할 세부안이 없어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역부족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사업주 처벌은 오로지 고객 응대 피해로 '업무 중단' 요청을 한 노동자에게 부당한 인사조처를 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또한 개정법이 전체 감정노동자가 아니라 '10%'만을 위한 법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재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기업에 보호의무를 부과한 것은 원청 소속 노동자만 보호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90% 이상을 차지하는 백화점, 면세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 대형 유통매장에서 근무하는 입점(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실상 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한 백화점에서 근무하는 김 모씨는 "나를 비롯해 대형 유통매장은 직원 대부분이 협력업체나 납품업체 소속"이라면서 "언론보도에서 보면 감정노동자 보호법에는 우리에 대한 원청의 의무사항은 없는데 그럼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국회와 정부가 감정노동자를 진심으로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여론수렴 결과를 바탕으로 하루빨리 법령 개정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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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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