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북·평남지역이 가장 활발해

대도시에서 시골학교로 퍼져

중국 등 포함 350개교 추산도

공식문건은 총독부 자료 인용

1929년 12월초 서울지역 1차 시위를 기점으로 학생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고보나 상업학교 등 중등학교가 있는 공주 개성 평양 원산 춘천 동래 함흥 등 북한지역 대도시를 중심으로 학생시위가 잇따랐다. 특히 북한지역 학교들의 적극적인 동조시위로 학생독립운동은 전국으로 퍼질 동력을 얻었다.

같은 시기 남한에서는 인천상업학교, 강원도 춘천고보, 부산 동래고보 등에서 동조시위를 펼쳤다. 김성민 박사는 "광주학생시위가 일어난 직후 동조시위가 벌어진 곳이 북한지역"이라며 "평양은 학교가 밀집돼 있어 서울과 유사한 연합시위를 벌였고, 함경도는 사회운동단체의 지원으로 시위양상이 격렬했다"고 말했다.

1929년 12월 28일 보도금지 해제로 각 지역 학생독립운동이 사회에 알려졌다. 학생 시위는 공주 개성 인천 원산 평양 함흥 부산 춘천 등 주요 지방도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학생 시위는 조기 방학으로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1930년대 1월 초 개학하면서 다시 시작됐다. 사진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제공


△북한지역

전국으로 퍼진 학생독립운동은 대도시 중등학교에서 시작돼 군단위 보통학교로 확산되는 특징을 보인다. 함북지역이 전형적이다. 함북지역은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난 곳이다. 함북도청 소재지인 경성에서는 1929년 12월 19일 신간회 간부들이 주도한 시위운동은 실패했다. 하지만 1930년 들어 경성의 주요 학교들이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면서 도내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 해 1월 청진 회령 경성 등 주요도시 상업학교에서 시작된 시위는 2월 경성 성진 웅기 명천 길주군의 보통학교로 확산됐다. 도내 23개 학교에서 시위운동이 일어나고 지역사회인사까지 결합하면서 시위양상이 격렬해졌다.

평남지역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1929년 평양 숭실전문학교 등 중등학교에서 일어난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조시위는 그 해 12월 14~16일숭실전문, 광성고보, 숭인학교, 평양농업학교, 평양여고보로 번졌다.

학생독립운동 주도자들이 대구형무소에서 출옥기념으로 1931년 6월 16일 대구달성공원에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광주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제공


1930년 1월에는 평양지역 내 숭인학교, 숭실학교 등 기독교 중등학교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20여개 공사립 학교로 퍼졌다. 1930년에는 도내 16개 군지역 중 9곳에서 시위운동이 계획되거나 벌어졌다.

함남지역은 1929년 16~21일 함흥고보, 함흥 영생중학교,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함흥농업학교, 함흥 제2보통학교 학생들이 교내 시위를 벌이거나 수업거부를 계획했다. 1930년 1월 14일 함흥상업학교와 영생학교 학생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원산지역에서는 1930년 1월 17일 원산여고보와 루씨여고보, 원산사립청년학관 등이 시위운동을 전개했다. 1월 27일 원산시내 10여개 보통학교 학생들의 시위가 실패로 돌아간 뒤 2월에는 정평 이원 단천 영흥의 보통학교와 농업학교로 시위가 확산됐다.

평북지역은 사립 중등학교를 중심으로 시위운동이 벌어졌다. 1929년 12월에는 평북 선천 신성학교와 원산상업학교 학생들이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했다. 정주 오산고보, 보성여학교, 영변 숭덕학교 등 기독교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시위운동이 진행됐다. 영변 숭덕학교 학생들은 1930년 2월 중순 인근 농업학교, 보통학교와 연계해 시위를 벌였다.

△남한지역

남한지역에서는 충청지역이 가장 활발했다. 충청지역에서는 1929년 12월 2일 충남 공주고보와 영명학교, 영명여학교 등이 함께 수업을 거부했다. 다음해 1월 21일에는 충북 청주고보와 청주농업학교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해 시위운동을 벌였고, 충북 괴산 충주 음성 보통학교로 확산됐다. 1월 22일에는 충남 부여보통학교와 부여농업보습학교 학생들이 맹휴를 전개한 뒤 당진 홍성 조치원 예산 대전 부여 온양 천안 등으로 확산됐다.




경남과 전남지역도 상당수의 보통학교가 시위에 참여했다. 1930년 1월 경남 동래고보와 진주고보, 부산제2상업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난 뒤 경남 사천보통학교, 김해보통학교, 양산 원동보통학교, 창녕 영산보통학교를 비롯해 고성 삼천포 함안 보통학교로 시위가 번졌다.

전남 함평농잠보습학교와 함평공립보통학교, 강진 대구보통학교, 여수공립수산학교, 목포 정명여학교, 나주공립농업보습학교, 나주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시위에 참여했다.

이밖에 경기도에서는 개성 송도고보와 개성공립상업학교,개성학당상업학교, 호수돈여고보, 미리흠여학교, 인천상업학교 학생들이 집단으로 수업을 거부하거나 시위운동을 벌였다.

전북에서는 전주여고보 학생들이 1930년 1월 20일 전주고보, 전주농업학교, 전주공업보습학교, 신흥학교 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계획했다. 1월 26일에는 정읍농업학교 학생들이 시위운동을 계획했지만 주도자들이 사전에 체포돼 실패했다.

강원도에서는 1929년 12월 19일 춘천고보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못했다. 이후 강릉 철원 이천 등에서 시위운동이 계획됐다. 경북은 대구에 국한됐다. 대구고보와 대구여고보는 1930년 1월과 2월 시위운동을 계획했으나 사전에 드러나 실패했다.

△정확한 참여규모 파악 못해

1929년과 1930년 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전국 학교·학생 수는 아직도 정확히 파악이 안 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공식문건에는 조선총독부 자료를 인용해 광주학생운동에 194개교, 약 5만4000명의 학생이 참여한 것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들의 조사를 통해 참가학교 수가 점차 늘어났다. 국가보훈처 김성민 박사는 251개로 추산한다. 김 박사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한 251개 학교 중 북한 지역이 118개교(47%)에 달한다고 밝혔다.

2006년 광주시교육청이 발표한 자료에는 참가학교가 320개 학교로 늘었다. 이후 중국 등을 포함한 학교 숫자는 350개까지 늘어났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1929년 당시 전체 320개 참가학교 가운데 북한 지역 학교는 모두 133곳(41.6%)에 달한다. 전라(41개), 서울·경기(56개), 경상(40개), 충청(23개), 평안(64개), 함경(53개) 등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시교육청의 참여 학교 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참여학교 일부가 겹치거나 잘못 파악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지역 학생독립운동 동조시위는 당시 언론보도와 일제 측 보고서 등에 의존해 개략적인 윤곽만 나와 있다.

김성민 박사는 "당시 신문보도와 일제 자료를 통해 학생시위가 일어난 곳을 집계한 것이기 때문에 숫자가 정확하지는 않다"면서 "광주교육청 자료는 학교가 중복되거나, 학교이름이 잘못 표기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참고자료 : 북한지역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양상과 특징(김성민), 광주학생운동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현황과 공훈사업 개선방향(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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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택 기자 durum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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