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과 충돌·남용우려 등 부정적 쟁점 많아

영국, 선진국 유일 채택 … 소환조건 엄격 제한

"윤리특위 제대로 운영해 자정능력 보여줘야"

자유한국당의 '장외버티기'로 국회 공전이 장기화되자 여당과 다른 야당 중심으로 국민소환제가 제기됐다. 특히 국회 정상화가 절실한 여당에서 지도부가 나섰고 정동영 민주평화당 당대표도 직접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정능력을 사실상 상실한 국회가 과연 국민소환제를 도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동안 관련 법안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채 방치한 것을 고려하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도입돼 있는 윤리특위를 제대로 운영하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87년 13대 국회 이후 국민소환제 도입을 위해 제출된 법안은 모두 9건이었으며 철회한 후 다시 제출한 것을 고려하면 8건이다. 김재원 의원이 17대와 18대에 각각 제출했으나 상정조차 되지 않은 채 임기종료와 함께 사라졌다.

"국회 윤리특위 구성하라" | 민주평화당 최경환, 장병완, 천정배 의원, 당직자들이 1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 진상규명 특별법 처리와 망언의원 제명을 위한 국회윤리특위 구성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19대 들어서자마자 황주홍 의원이 또 국민소환제 도입을 제안해 소위로 넘겨졌지만 역시 논의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20대 들어서는 김병욱, 황영철, 박주민, 황주홍, 정동영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5개 법안이 계류돼 있다. 2017년 7월 김병욱, 황영철, 박주민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모두 소위로 넘겨졌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검토보고서는 부정적 = 2012년 행안위의 검토보고서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해소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측면"을 근거로 "타당하다"고 하면서도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헌법과 충돌하고 남용에 따라 의회의 대화와 타협기능이 상실될 수 있으며 입법례를 보더라도 베네수엘라와 스위스의 일부 주 등을 제외하고는 도입하고 있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7년에 제출한 안행위 검토보고서는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민주적 통제방안 마련"이라는 측면과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에 대한 소환규정과의 형평성 등을 의미있게 평가하면서 "대의제를 보완할 수 있고 책임있는 정치활동을 강제할 수 있으며 유권자 정치참여를 확장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 효과를 언급했다. 그러나 곧바로 "대의제 특히 자유위임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될뿐만 아니라 우회적인 신임투표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에 현행 헌법해석과 관련해 도입 자체의 합헌성이 문제될 수 있고 국회의원 발언과 표결에 대해 외부에 책임을 지지않는 면책특권을 형해화할 수 있으며 정당이나 정치인간의 정책적 대립, 정적의 제거 등의 목적으로 남용될 수 있는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요 선진국중 유일하게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하는 나라는 영국"이라면서 "영국 의원소환법은 하원의원 650명을 소환대상으로 하며 범죄를 저질러 구속, 구금될 경우 의회로부터 10회 또는 14일간 기일출석 금지명령을 받을 경우, 의회윤리법을 위반할 경우 등 소환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베네수엘라(모든 선출직 공직자대상) 에티오피아(하원의원) 리히텐슈타인(의회의원) 나이지리아(상하원의원) 등도 유권자가 소환을 발의해 유권자가 투표하는 국민소환제를 채택하고 있다.

◆윤리특위도 안되는데 … = 전문가들은 국회의 국민소환제 도입보다는 윤리특위를 제대로 가동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법뿐만 아니라 비윤리적 행태를 징계하려는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데다 위헌 논란까지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2018년 개헌논의과정에서도 헌법에 국민소환제 도입을 논의했지만 헌법개정특위는 "국력낭비, 운영상의 문제 등으로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직접 민주주의를 통한 대의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정리했다.

입법조사처는 '헌법개정시 국민소환제 도입의 쟁점'보고서에서 △헌법상 자유위임원리와의 조화 △헌법상 무죄추정원칙과의 충돌문제 △신임투표로의 남용문제 △소환사유와 절차의 문제 △헌법규정사항과 법률규정사항의 구별 등을 지목하면서 "국회가 스스로 의원자격심사나 윤리심사제도를 강화해 자정제도에 대한 실효성을 높이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이라며 "대의기관의 자율적인 자정제도가 제대로 작용되기도 전에 직접 주권자가 신임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대의기관의 책임성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국민소환제도는 헌법이나 대의제 취지 등과 충돌하는 지점이 적지 않은 만큼 국회 신뢰를 위한 윤리특위를 상설화하는 등 실질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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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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