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가톨릭대의대 교수

우리나라에서 주치의라 하면 대통령이나 재력가 등 실력자들이나 둘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선진국 국민은 가까운 동네 의원에 주치의를 두고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증상의 종류나 아픈 부위에 따라 지역의 전문과 의원을 찾아가거나 병원으로 직접 진료 받으러 가지만, 선진국 국민은 건강에 이상 신호가 있을 때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간다.

우리는 흔히 "아프면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말을 쓰지만, 선진국에서는 "아프면 당신의 주치의에게 가보세요."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여기서 주치의라 하면 사는 곳에서 가까운 동네 의원 의사를 의미한다. 주치의가 있는 동네의원과 그 역할을 일차의료라 한다. 일차의료는 입원환자 중심의 병원의료와 대비되는 용어다. 일차의료란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로서,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해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고령화 속 만성질환, 국가과제

보건의료체계가 효율적이고 형평성 있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차의료가 근간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국내 보건의료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차의료가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주치의 역할을 하는 일차의료 의사에게 등록하는 것이 필수 요소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낮다. 주치의 제도에 대한 오해와 편견 때문이다. 일차의료 의사는 주치의 등록을 통해서 환자를 위해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동의하는 것이며 환자는 여행 중이거나 응급상황인 경우가 아니라면 주치의에게 서비스를 받을 것을 동의하는 것이다. 주치의가 자신이 책임을 맡는 일정한 환자 인구집단을 보유하므로 의사의 책임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주치의 등록은 환자-의사 관계를 튼튼하게 하여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시킨다.

지속성 향상은 환자의 건강결과 향상, 환자 만족도 향상, 특정 전문의 진료에 대한 조정기능 향상, 병원입원 및 응급실 이용 감소, 그리고 전반적인 보건의료 비용의 감소 등과 관련이 있다는 일관된 근거가 있다.

인구의 고령화와 이에 동반하는 만성질환의 증가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지난 30년 동안 선진국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하여 보건의료체계를 변화시켜 왔는데, 그 변화의 가장 핵심적이면서 공통적인 요소는 일차의료였다. 예를 들면, 일차의료 교육수련체계를 정비하여 주치의가 되려면 최소 3년의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마쳐야 하며, 일차의료 간호사 수 증가와 역할 확대를 통해 만성질환 관리에 참여하도록 하였으며,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되는 일차보건의료 팀 진료와 여러 명의 주치의들로 구성된 그룹 진료를 권장하여 서비스의 접근성, 포괄성, 지속성을 향상시켜왔다.

주치의 제도가 없었던 노르웨이, 프랑스, 스웨덴, 캐나다 등은 주치의의 서비스 조정기능 향상을 위해서 주치의 제도를 시작하였다. 호주는 주치의 제도가 없지만, 강력한 의뢰체계와 서비스 질 평가를 통해서 일차의료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주치의 제도를 갖추었던 국가들(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등)은 만성질환의 효율적 관리를 도모하는 서비스 질 평가에 따르는 보상을 시작하였다.

환자의 자유로운 의사 선택권을 허용해 왔던 미국은 일차의료 의사의 범위를 구분하였고, 민간 보험 가입자들이 주치의로 두고 이용하도록 권장해 왔으며, 메디컬 홈 운동을 통해서 일차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무분별한 진료, 주치의로 잡아

우리나라의 보편적 건강보험은 어느 덧 30주년을 맞이했고, 그 동안 의료기관 접근성을 크게 향상시킨 것은 성과이다. 그러나 의료기관 민간소유 비중(>90%)이 세계 최고인 상태에서 일차의료의 개념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국민의 무분별한 의료기관 접근을 방임해 왔다. 선진국의 일차의료 개혁 동향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연간 의사진료 빈도, 인구 1000명당 입원병상 수 및 그 증가율, 의료비 연간 증가율, 갑상선암 과다진단율 등에서 세계 최고수준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결과들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 지속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며, 문재인 케어 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에 큰 걸림돌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이 바로 일차의료 강화이며, 주치의 제도 도입이 그 시작이다.

[국민주치의제도 도입을 위한 특별기고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