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출마에 보수표 갈려 새누리당 수도권 참패

과거 진보야권은 선거 앞두면 원탁회의 통해서 연대

보수야권 내년 분열? 수도권·영남권서 고전 불가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년 전인 2011년 7월 26일 국회에서 진보세력이 한자리에 모였다. '희망 2103, 승리 2012 원탁회의'라는 이름의 이 모임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진보세력 연대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2012년 선거를 지금의 여당(새누리당)과 진보개혁정당 사이의 일대일 구도로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전 총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김상근 목사 등 야권인사 21명이 두루 참여했다.

진보세력은 선거를 앞두면 항상 연대를 시도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격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합당까지는 아니더라도, 후보단일화나 선거연대를 이끌어내 지지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발언하는 나경원 원내대표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1987년 대선에서 야권분열로 패배한 악몽을 재연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실제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김종필 후보를,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껴안았고 승리했다. 총선에서도 민주당은 다른 진보정당과 선거연대를 통해 승률을 높이는데 전력을 다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에는 보수가 사분오열된 상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유승민계·안철수계, 우리공화당으로 나뉘어있다. 장외에는 홍준표 전 대표와 김병준 전 비대위원장, 무소속인 원희룡 제주지사가 있다. 이들이 분열된 상황에서 총선을 맞을 경우 '전대미문의 4연패'(2016년 총선→2017년 대선→2018년 지방선거→2020년 총선)를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분열로 인한 패배 우려는 2016년 20대 총선 결과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과거 일대일 대결이 이뤄졌던 총선과 달리 2016년 총선에는 국민의당이란 강력한 제3당이 뛰어들면서 3파전 양상을 빚었다.

승부는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불과 몇백표 차이로 승패가 엇갈리는 지역구가 속출했다. 2000표 미만으로 승부가 갈린 지역구만 전국 27곳에 달했다. 인천 부평갑에 출마한 정유섭 후보(새누리당)는 불과 26표차로 문병호 후보(국민의당)를 눌렀다. 강원 원주갑과 을 지역구는 각각 134표와 350차로 승패가 엇갈렸다. 전북 전주 갑을병 지역구 모두 1000표도 안되는 근소한 차이로 1위와 2위가 나뉘었다.

제3당 후보가 얼마나 득표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2000표 미만으로 승부가 갈린 지역구 27곳 가운데 새누리당 11곳, 민주당 11곳, 국민의당 3곳, 무소속 2곳을 각각 차지했다. 이 결과만으로는 야권분열로 인해 누가 이득 보고, 누가 손해 봤는지 분명치 않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의당이 진보표보다 합리적 보수표를 더 많이 가져갔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 새누리당 수도권 참패(122석 가운데 민주당 82석, 새누리당 25석 )의 가장 큰 원인으로 '국민의당 출마로 인한 보수표 분열'이 꼽힌 것이다.

2016년 총선 결과를 근거로 야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통합 또는 선거연대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유승민계·안철수계, 공화당, 홍준표, 김병준, 원희룡 등 보수세력 전반이 전체 또는 일부라도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간 색깔 편차가 워낙 커서 어떤 식의 조합이 가능할지는 예측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한국당 수도권 비박의원은 최근 "(한국당) 황 대표가 추석 때까지 당 지지율 35%를 넘지 못하면 자력으로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유승민·안철수와 손잡는 야권통합을 추진해야한다"며 "당의 스펙트럼을 개혁보수, 합리적보수로 넓히지 않으면 총선에서 필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을 지지하는 강성보수만으로는 총선 승리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당 영남권 중진의원은 반대측면에서 야권연대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중진의원은 "(공화당이 한국당 공천에서 탈락한 의원들을) 이삭줍기할 가능성을 무시하면 안된다"며 "20대 총선에서 2000표 미만으로 당락이 엇갈린 곳이 부지기수인데, 공화당이 2000표 이상 가져가면 (한국당은) 접전지역에서 전부 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혁보수보다는 강성보수(공화당)와의 연대를 주장한 것.

한국당 박맹우 사무총장과 중진의원들이 지난 4일 홍문종 공화당 대표를 만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한국당과 공화당이 선거연대를 모색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돌아온 선거계절, 야권연대 이번에는?" 연재기사]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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