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친화적 농장에서 다양한 일상의 즐거움 누려 … "개인 삶 존중차원서 치매정책 출발"

# 한 노인이 자기의 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다 음악을 들으며 지그시 풀 뜯는 양들을 바라본다. 외부인이 지나가면 '할로우'라고 인사한다.

옆방 노인들은 식사를 하는데 지금 별 생각이 없어 나중에 먹을 생각이다. 그렇다고 식사 담당자가 '먹어라' 강요하지 않는다.

한 쪽에는 직원이 한 노인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다. 직원은 노인의 스타일을 존중해 선호하는 것을 그때그때 확인한다.

넓은 농장에는 닭들이, 저쪽에는 돼지들이, 살찐 토끼들이 끼리끼리 노닐고 있다. 자원봉사하는 13세 소녀는 망아지 털을 고르고 있다.

그 사이로 몇몇 노인들이 낯선 방문객들에게 다가가 말을 나눈다. 그들이 치매노인인지 모를 정도다.

공동공간에서는 추억의 음악도 들을 수 있다. 롤링스톤, 비틀즈 등 좋아하는 취향들이 달라 다양한 가수들의 음악이 준비돼 있다.

또 다른 공간에는 주야간으로 이용하는 노인들이 물총놀이를 하고 있다. 마냥 어린아이들처럼 물건 떨어뜨리기를하고 크게 웃는다.

네덜란드 하임스커크시 거주형케어팜인 레이헤르스후퍼 농장 전경


지난 8월 28일 네덜란드 하임스커크(Heemskerk)시 거주형케어팜인 레이헤르스후퍼(De Reigershove)에서 펼쳐진 모습들이다.

케어팜은 네덜란드에서 발달장애인, 자폐등과 같은 정신적 문제가 있거나 치매 등 노인성질환자, 약물중독자나 노숙자 등 사회적케어가 필요한 사람들이 농장을 활용한 복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중요시 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케어팜은 대부분 데이케어형이지만 중증치매환자들에게는 거주형케어팜이라는 옵션도 있다. 치매환자에 적용하는 다른 비약물적 접근과 비교해 장점이 크다.

조예원 바흐닝언케어팜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농장이라는 환경이 주는 독특한 가치가 있다. 농장은 개방적인 녹색 환경임에 더해 요양시설과 같은 다른 기관과 달리 이용객들이 집에 머무는 것과 같은 편안함을 준다.

실내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야외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다양한 동물과 식물을 접함으로써 정신적인 이로움을 얻을 뿐만 아니라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테라피 프로그램과 같은 정해진 활동 참여보다는 이용객의 관심에 따라 자유로운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은 다른 비약물적 접근법에 비교해 큰 장점이다.

네덜란드 하임스커크시 거주형케어팜인 레이헤르스후퍼의 노인숙소


2013년 10월 설립된 레이헤르스후터 케어팜의 원장인 헨크 스미트(Henk smit)씨는 "치매로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외부활동을 좋아하고 꽃과 산책을 좋아했는데 기존 요양시설에서 의자에 묶여 지내는 것을 보았다. 요양시설에서는 그게 맞다고 했지만 장인어른은 행복하지 않았다"며 "치매노인들이 집처럼 편안하게 느끼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운영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환자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운영 = 대부분의 네덜란드 케어팜은 데이케어를 제공한다. 치매환자들은 오전에 농장에 도착해서 하루를 보내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며, 많은 농장들이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여 오고가는 차량 이동을 책임진다.

농장주의 철학에 따라서 농장에서의 활동은 달라질 수 있고 이용객의 증상과 관심사에 따라서도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점은 환자들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돌봄을 받을 수 있게끔 농장주가 최대한 노력하고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이다.

활동적인 이용객들은 텃밭이나 꽃밭을 가꾼다거나 목공소에서 작업을 하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거나 마당쓸기, 자전거 타기와 같은 야외활동을 하기도 한다. 치매환자들은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기 어렵기 때문에 농장에서 식사를 제공하며, 다 함께 식사준비를 하는 것도 일과 중 하나가 된다.

이런 활동이 어려운 환자들은 마당에 앉아 동물을 구경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케어팜을 이용하는 치매환자 본인뿐 아니라 돌보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의 푸드포굿 데이케어형 케어팜 전경. 도시 속 치유농장 모습


도시 한 가운데 있는 케어팜도 있다. 8월 28일 오후에 방문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Utrecht)시의 푸드포굿(Food for Good) 데이케어형 케어팜이 그렇다.

시에서 버려진 공원을 무상으로 임대해 운영 중이다. 장애인, 장기실업자, 번아웃 증후군을 겪는 사람 뿐만아니라 일반 교수, 학생, 금융인,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지역주민들이 이용하고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노인요양원 치매노인들이 매주 목요일 정기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농장의 생산물을 판매를 하기도 하고 이용객들이 가져가기도 한다.

운영책임자 한스 페일스(Hans Pijls)씨는 "밭 작업을 하면서 음식도 만들며 설거지도 하고 거름 작업도 하면서 자기들의 정신적 만족을 얻고 있다"며 "그런 가운데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작업을 통해 교류하게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무슬림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한 참여자가 무슬림과 같이 작업 못하겠다고 의견을 내자 "지금은 작업에만 집중하라"고 권유했다. 작업에 집중하다보면 옆 사람이 누군지 간에 어울려 작업하게 되면서 대인관계 만족도도 높아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네덜란드 하임스커트시 거주형케어팜인 레이헤르스후퍼의 노인 이용 기구들


◆네덜란드 케어팜 성공요인에서 한국형 찾기 = 이렇게 케어팜은 치매환자들에게 많은 이점을 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차원에서 농업부문을 제외하고는 아직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 한동숭 전주대학교 미래융합대학장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우리나라 요양시설에 케어팜을 운영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참여할 것"이라며 "치매환자 돌봄을 이익 추구보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요양서비스 현장에서 케어팜을 이용할 수 있게 집단 연구와 시범사업 등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네덜란드에서 케어팜이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염두에 두고 관련된 지원이 이뤄진다면, 한국형 케어팜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며 "농업부문과 복지부문이 상생하는 협업, 케어팜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전문성이 갖춰지고 이용객들을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질을 존중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면, 지속가능한 케어팜이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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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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