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매우 송구"

사실상 '대국민 사과'

'불통' 전 정부와 차별

검찰개혁 공감대 확산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결국 사퇴의사를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수용했다. 조 장관과 그의 가족에 대한 검찰의 수사압력과 여론에 밀린 모습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인사 잘못을 시인한 셈이 됐다.

하지만 조 장관의 사퇴를 통해 문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선 문재인정부는 이전 박근혜정부와 같은 '고집불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조 장관의 사표를 수리한 것은 서초동 집회에서 검찰개혁을 요구한 지지자들 뿐 아니라 광화문 집회에 모인 반대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 결정이었다.

수보회의 발언하는 문 대통령 |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조 장관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반대여론이 확산되어 왔음에도 그동안 문 대통령이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조 장관이 물러나면 보수야당의 공격이 문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실제 조 장관 사퇴 이후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문 대통령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문 대통령은 헌정유린과 조국 사퇴에 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도 "그동안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우습게 여겼던 이 정권이 사과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는 "이 사태를 만든 책임은 전적으로 문 대통령에 있다"며 국정쇄신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같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조 장관을 사퇴시킨 건 더 이상의 갈등을 차단하고 민생 경제 등 중요한 현안들이 '조국 블랙홀'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조 장관 사퇴발표 직후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러면서 "광장에서 국민들이 보여주신 민주적 역량과 참여 에너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며 "그 역량과 에너지가 통합과 민생, 경제로 모일 수 있도록 마음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시체팔이를 한다'며 음해하는 등 끝까지 반대자들을 '갈라치기'하며 배제했던 이전 정권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 장관은 물러났지만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더욱 커졌다. 역설적이게도 조 장관과 가족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 무차별 압수수색, 피의사실 공표 등 검찰의 과도한 수사는 많은 국민들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조 장관이 장관직을 수행한 것은 35일에 불과하지만 검찰개혁의 첫발을 뗐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내놓은 특별수사부 축소안과 장시간·심야조사 제한, 부당한 별건수사·수사장기화 금지 등 수사관행 개혁안, 법무부 감찰 실질화 방안 등은 이전 정부에서는 추진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문 대통령은 "검찰 개혁에 대한 조국 장관의 뜨거운 의지와 이를 위해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는 자세는 많은 국민들에게 다시 한번 검찰 개혁의 절심함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검찰개혁의 큰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확인된 만큼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과 검경 수사권 조정법 처리도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조국사태를 겪으며 검찰개혁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과제가 된 것 아니냐"며 "국회에서 검찰개혁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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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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