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관세 무기 공격

통화전쟁 가능성 높여

전 세계적으로 탈 달러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유럽 각국은 달러가 아닌 유럽의 통화를 사용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양자무역에서 자국 통화를 사용한다. 중국은 2018년 상하이에서 위안으로 거래되는 원유 선물시장을 개설했고 지난 해 이란 중앙은행은 이라크에 유로화와 디나르화 계좌를 열어 이를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주요 무역상대국에 대해 보호무역관세를 무기로 삼아 공세를 퍼부으면서 달러의 가치는 지속 하락하고 국제적인 통화전쟁의 가능성은 높아만 간다.

◆유로화 결제 시스템 '인스텍스(INSTEX)' 강화 = 13일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전세계 국가들의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미국이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달러를 이용해 경제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오스트리아 싱크탱크인 미제스 경제연구소는 최근 "달러화가 금융 위기, 미국의 보호무역, 잇따른 제3국 금융 제재 등으로 점점 신뢰를 잃고 있다"며 달러 패권이 장기적으로는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불규칙한 정책으로 인해 달러화는 역풍에 직면했고 다른 국가들은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찾아 나선 모습이다.

유럽은 유로화 결제 시스템인 '인스텍스(INSTEX)'도 강화하고 있다. 인스텍스는 EU가 지난해 1월 역내 기업들이 미국의 이란 제재를 우회해 이란과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기구다. 이란산 원유나 가스를 수입하고 싶은 기업이 인스텍스에 돈을 내면 인스텍스가 대신 결제하는 식이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다시 이란 제재에 나서자, 이란과 계속 교역하고 싶어 하는 영국·프랑스·독일이 중심이 돼서 인스텍스를 만들었다. 인스텍스를 통하면 달러화로 표시된 신용장도 필요 없고, 미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국제은행 간 결제시스템(SWIFT)을 거칠 필요가 없다. 1950년부터 1958년까지 운영된 유럽결제동맹(EPU)과 비슷한데,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금도 없고 달러도 없던 유럽 각국이 물물교환하던 방식을 원용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벨기에·덴마크·핀란드·네덜란드·노르웨이·스웨덴도 인스텍스 동참 의사를 밝혔다.


◆중국, 외화보유 다원화 강조 = 중국은 2018년 상하이에서 위안으로 거래되는 원유 선물 시장을 개설했다. 중국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브렌트유 등이 아시아 시장의 원유 공급·수요 현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며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거래를 출시한 것이다. 원유거래에 사용되는 이른바 '페트로위안'은 달러의 지위에 대한 조기 경고로 해석된다. 이는 위안화 표시 원유 선물 거래를 뜻하는 용어로, 향후 위안화 국제화 추진에 속도를 올리기 위한 결정으로도 분석된다.

또 작년 말 기준 중국의 외화 보유액은 3조1079억달러다. 인민은행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외화 보유액의 투자 대상을 한층 더 다변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미중 갈등 와중에 중국은 최우량 안전 자산인 미국 국채 보유량을 줄이고 황금 등 대체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향후 이런 흐름이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2018년 연간 보고서에서 마지막으로 공개한 외화보유액 세부 투자 내역에 따르면 달러화 표시 자산 비중은 2005년 79%에서 2014년 58%까지 떨어졌다. 중국의 외화보유액 중 달러화 표시 자산의 비중은 세계의 중앙은행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최신 통계를 보면, 작년 3분기 기준 세계 중앙은행 평균은 61.8%였다.

한때 세계 최대 미국 국채 보유국이던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 국채 매입을 줄여 일본이 지난해 6월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됐다. 이런 흐름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실현 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중국의 고의적인 미국 국채 대량 매도는 미국 내 금리 급등 등으로 이어져 큰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핵 옵션'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 국채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중국은 공격적으로 금 보유량을 늘려가고 있다. 중국이 외화 관리 차원에서 보유 중인 황금의 양은 작년 1월 5994만온스에서 작년 12월 6264만온스로 270만온스나 증가했다.

◆이슬람 금화 '디나르' 거래 = 지난해 12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이슬람 국가 정상회의에서 아예 이란, 터키, 말레이시아, 카타르 등 4개국은 골드 디나르(이슬람 금화)와 물물교환을 기반으로 한 무역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2월에는 이라크 기업이 이란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이라크 디나르화로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이란 중앙은행이 이라크에 유로화와 디나르화 계좌를 열어 이를 통해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 대금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미 터키는 리비아와 이란에 이어 공식적으로 반 달러 대열에 합류한 바 있다. 외신에 따르면 금 보유량이 많은 터키는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과거부터 이란에서 원유를 사면서 달러 대신 금으로 결제해왔다. 이란이 핵개발에 나서면서 유엔은 지난 2006년부터 지속적으로 제재를 강화해왔고 2016년 이란이 핵합의를 이행하기 전까지 제재는 이어졌는데 그 당시 터키는 거래가 막혀 값이 싸진 이란산 원유를 육로를 통해 들여오면서 금을 건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관련기사]
[2020 세계경제 ‘위태로운 회복’ | ② 환율갈등 심화] 달러 패권 위협 상황 가속화

["2020 세계경제 ‘위태로운 회복’"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김영숙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