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미성년자에 성적목적 접근하면 처벌

"그루밍 적발할 위장수사 제한적으로 허용"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3대 입법이 시급하다. △온라인 그루밍의 형사범죄화 △의제강간 연령의 상향 △피해자를 처벌하는 대상아동·청소년 조항 폐지가 그것이다.
위 3가지는 여성·청소년단체가 수년동안 줄기차게 입법을 촉구했음에도 실현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21대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2011년 6월, A씨(남, 27세)는 피해자(여, 13세)와 인터넷 채팅인 '버디버디'를 통해 자신이 15살 중학생이라며 접근했다. A씨는 피해자와 꾸준한 온라인 채팅으로 친해진 뒤 '직접 만나자'라고 제안했다. 피해자는 아무런 의심없이 A씨 집으로 찾아갔다. A씨는 피해자를 묶고 나체를 촬영했다. 그후 A씨는 만나주지 않으면 나체를 촬영한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성추행했다."

지난해 8월 연합뉴스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온라인 그루밍은 성관계를 맺기 위해 이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채팅 앱 등을 이용하는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출발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자료 연합뉴스 유튜브 영상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성범죄자들은 더 이상 범행대상을 찾아 길거리를 다니지 않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채팅앱 등을 통해 대상을 선정하고, 선물공세나 조언 등으로 신뢰를 쌓은 뒤 범죄를 저지른다.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그루밍을 시급히 형사범죄화해야 하는 이유다.

◆인터넷강국, 온라인 그루밍 확산 = 현행 법상 온라인 그루밍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자료가 없다. 유형과 특성에 대한 분석만 있을 뿐이다.

지난 1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윤정숙 연구위원 등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그루밍(grooming)의 특성 및 대응방안 연구'란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로서 그루밍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시점은 대략 1995년경이다. 초기에 성적 그루밍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해 범해진다'는 특징에 주목했다. 2000년대초 만해도 온라인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여서 오프라인상의 그루밍이 더 많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터넷이 활성화되며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온라인 그루밍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그루밍은 오프라인 그루밍이나 일반 성범죄에 비해, 피해자 수가 더 많았다. 오프라인 그루밍 성범죄자가 1.1명의 피해자를 낳고, 일반 성범죄자가 1.3명의 피해자를 낳은 반면,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자는 평균 1.6명의 피해자 수를 보였다. 온라인 그루밍 가해자는 평균 31.2세로 오프라인 그루밍 가해자 41.7세나 일반 성범죄자 38.1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었다. 범죄 지속기간을 보면 온라인 그루밍은 1개월~3개월이 41.7%로 장기간 이었다.

피해자의 동거인 유형을 보면,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는 가출 등 '기타유형'이 35.7%로, 오프라인 그루밍 피해자 7.0%나 일반 성범죄 피해자 6.4%에 비해 크게 높았다. 보고서는 "아동·청소년들이 거처가 없어 잘 곳을 구하거나, 돈이 필요해 채팅 앱, 조건만남 사이트 등을 보다 쉽게 이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결과적으로 온라인 그루밍에 쉽게 노출되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2019년 10월 24일 공표>


◆온라인 접근만 해도 징역 10년 = 선진국들은 신속하게 온라인 그루밍을 범죄화하고 처벌하고 있다. 아동·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적 그루밍 행위를 처음으로 처벌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은 2003년 성범죄법을 제정해 아동에 대한 직접적인 성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아동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성적 그루밍 행위를 범죄화 했다.

법 제정 당시 영국 정부는 법 해설서를 통해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어디서나 통신을 통해 아동과 연락을 취하거나 아동의 신뢰를 얻어서 아동을 상대로 '관계성 범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접촉(만남) 이전의 성적인 행위를 할 수 있게 돼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법 제정을 통해 성적인 행위를 할 의도로 18세 이상의 사람이 16세 미만의 아동을 만나기 위해 유인하는 행위 또는 그 과정을 포착해 미연에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영국 성범죄법 제15조는 '18세 이상의 성인이 16세 미만 아동을 성적인 목적으로 만나거나, 연락을 취한 뒤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경우 또는 만날 의도가 있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이 법에 의해 2005년에서 2008년 사이에 12세~16세 사이의 피해자 3명을 그루밍한 후 강간한 혐의로 32세~39세 남성 6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유럽의회, 란사로테협약으로 아동보호 = 유럽의회는 2007년 10월 일명 '란사로테협약'이라고 불리는 '유럽의 성착취 및 성적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는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에 따라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처벌을 국내법으로 제정하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네덜란드는 2007년 형법을 개정해 아동 성범죄의 법정형 상향과 성적 그루밍에 대한 처벌 규정을 신설했다. 네덜란드 형법 제248의e조는 '컴퓨터 작업이나 통신서비스를 이용해 알고 있거나 16세 미만이라고 합리적으로 의심했어야 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제안한 자, 그 사람과 음란한 행동을 하려는 의도 또는 그 사람과 관련된 성행위 이미지를 생성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남을 하려고 어떤 조치를 취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급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네덜란드가 영국과 다른 점은 오로지 온라인 그루밍 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처벌범위가 한정돼 있고, 영국이 18세 이상으로 가해자 연령을 제한한 반면, 네덜란드는 피해자 연령만 제한을 두고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호주는 2017년 6월 미성년자 온라인 보호조항을 담은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형법 제474의25B조는 전송서비스를 통해 16세 미만의 아동에게 해를 입히거나 성행위를 하거나 계획하는 행위를 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아동 성범죄나 포르노, 아동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행위와 관련된 통신매체는 차단하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규정도 두었다. 이후 뉴사우스웨일즈주나 퀸즈랜드주는 형법을 개정해 16세 미만 아동에 대한 그루밍을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세계 24개국 온라인 그루밍 강력 처벌 = 앞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형법을 통해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를 성매매 또는 성행위를 하게 할 목적으로 설득, 유인, 강요하는 경우 10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 조문을 근거로 2009년 그루밍을 통해 아동포르노를 촬영하고 이를 배포한 사람에게 40년형을 선고한 바 있다. 텍사스, 오하이오, 미네소타 등 일부 주는 그루밍 행위를 성범죄로 규정하고, 온라인 또는 앱 채팅을 통해 아동들에게 그루밍하는 행위에 대해 그 행위만으로 처벌하고 있다.

캐나다 형법 제172조의1은 '아동을 유혹하는 행위에 대한 법정형을 2007년 5년에서 10년으로 상향했다가, 2015년 1년이상 14년 이하로 법정형을 다시 올렸다.

스웨덴은 2009년 7월 그루밍 금지법을 제정했다. 15세 미만의 아동과 인터넷으로 접촉해 성행위를 의도한 그루밍 행위에 대해 1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다. 그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매년 리포트를 발표하고 있다.

2017년 기준, 법을 통해 아동에 대해 성적인 목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행위를 처벌하는 국가 중 △온라인 그루밍과 관련한 조항이 따로 있고 △온라인 그루밍의 정의가 있고 △아동과 만날 의도나 의도와 관계없이 온라인 그루밍 행위를 처벌하고 △아동에게 음란물을 보여주는 행위를 모두 처벌하는 국가는 아르헨티나, 호주, 브라질, 캐나다, 칠레,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프랑스, 독일, 인도, 아일랜드, 이탈리아,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말레이시아, 페루, 필리핀, 폴란드, 포르투갈, 슬로바키아공화국, 남아프리카, 스페인, 영국, 미국 등 24개국이다.

◆기망이나 협박 없으면 처벌못해 = 우리나라에 그루밍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거론된 것은 2007년 4월 국가청소년위원회였다. 당시 위원회는 '성행위를 목적으로 청소년을 만나거나 만나려고 시도하는 행위를 하면 실제 성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처벌하는 규정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2009년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개정에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수를 하고자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 조항은 시행 1년도 안돼 논란이 됐다. 2010년 10월 한 중학교 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과 성관계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가가 없고 △학생이 만 13세를 넘은데다가 서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어서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아청법은 성매매를 위해 유인하는 경우, 기망이나 협박에 의해 성관계를 하는 경우만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이 '좋아해서' '서로 합의하에' '대가없이' 성관계를 맺었다면 처벌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후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40대 남성이 15세 중학생과 성관계를 해 임신하게 한 사안에서 '사랑하는 사이'라는 이유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루밍 범죄화없이 성범죄 근절 요원 = 그루밍 단계에서 그 행위를 처벌하자는 개정안은 2019년 5월 처음으로 발의됐다. 임재훈 의원이 대표발의한 아청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임 의원은 법안에서 '성매매를 위해 유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채팅앱 등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아동·청소년에게 만남을 요구하거나 성적 행위를 요구한 자'를 처벌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앞의 보고서는 "성인이라는 우월적 지위와 신뢰관계를 오용해 아동의 정신과 육체를 조종하는 그루밍을 범죄화하지 않는다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근절은 요원할 것이 분명하다"며 강력한 대책을 촉구했다.

보고서는 먼저 "아청법을 개정해 영국형 그루밍 처벌 규정을 두는 것이 옳다"고 제안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적 그루밍 행위를 찾을 수 있는 '함정수사(또는 위장수사)'기법을 제한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루밍 행위를 처벌하는 대다수 국가들은 경찰의 온라인 함정수사 또는 위장수사를 법정에서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따로 문제 삼고 있지 않다.

["[기획] 21대국회, 미성년자 성착취 막을 3대 입법 시급"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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