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고서 검토 후 “심각한 우려”와 권고, 정부는 외면 … 전문가 “시급히 제도화”

고개 숙인 '조주빈 공범' 강훈 |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성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부따' 강훈이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위원회는 당사국에게 강력히 권고한다(The Committee urges the State party). 온라인 그루밍을 형사범죄로 정의하고 규정하라(To define and criminalize online grooming).”

지난해 10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 국가보고서를 검토한 후 밝힌 최종권고 중 일부분이다. 위원회는 ‘(대한민국에서 아동에 대한) 성폭력과 학대가 여전히 만연해 있으며, 온라인 아동 성매매 및 그루밍, 교사에 의한 성희롱이 급증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 후 이같이 권고했다. 정부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권고를 현재까지 외면하고 있다.

성범죄를 위해 아동·청소년을 길들이는 그루밍(grooming)은 신종 범죄수법이 아니다. 아동 성범죄에서 그루밍은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아동·청소년들이 컴퓨터와 핸드폰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면서부터 온라인 그루밍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3월 19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수의 91.4%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앱을 통해 이뤄졌다. n번방사건도 범죄자가 청소년들에게 랜덤채팅앱으로 접근해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유인한 후 범죄를 저질렀다.

많은 국가는 아동에게 성행위를 목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2003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온라인 그루밍을 범죄화하고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성범죄법을 제정했다. 이 법 제15조는 18세 이상의 성인이 16세 미만의 아동에게 성적인 목적으로 접근하는 행위(온라인을 포함)를 범죄로 규정했다. 이후 네덜란드, 호주 등 많은 국가들이 온라인 그루밍을 범죄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아동·청소년 스마트폰 보급률과 이용시간을 자랑한다. 지난해 10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중·고등학생의 95%와 초등고학년의 81.2%가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이용시간도 평균 1시간 53분에 달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을 온라인 범죄자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매우 미흡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1월 발간한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그루밍의 특성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아동·청소년성보호법을 개정해 영국처럼 그루밍 처벌규정을 두고 △그루밍을 적발할 수 있는 함정수사(또는 위장수사)기법을 제한적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획] 21대국회, 미성년자 성착취 막을 3대 입법 시급" 연재기사]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장병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