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화장품 소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동·식물과 미생물은 체내에서 다양한 유기물질을 생성한다. 이 중 일부는 독특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경쟁자를 물리치거나,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살아있는 유기체에 의해 생성되는 화합물이나 물질들을 천연물이라 한다. 이런 천연물 연구는 의약품 신소재 화장품 등의 개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되면 전 세계 과학자가 관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청자고둥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습. 사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제공


◆청자고둥에서 진통제 만들어 = 오래 전부터 육상생물을 중심으로 천연물 연구가 진행돼 왔다. 1928년에는 인류 최초로 항생제를 만들어 냈는데, 푸른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발견해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한 수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살렸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페니실린에 내성을 지닌 돌연변이 병원균이 발견됐으며, 새로운 항생제가 개발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내성이 생긴 병원균이 등장해 왔다. 많은 과학자들이 육상 생태계에서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새로운 의약품 개발을 위해 '해양'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양에서는 지구 전체의 80%에 달하는 수십만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극히 일부만이 연구에 활용됐다. 표본 확보가 상대적으로 쉬운 육상생물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돼 온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채집기술 발달과 잠수정 이용 등으로 심해에서도 원료를 확보할 수 있게 되면서 해양생물연구에 대한 길이 열리고 있다.

해양천연물을 활용한 신약개발 연구는 195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육상보다 늦었지만 해양과학자들은 남극에서 북극까지, 해수면에서 심해까지 범위를 넓혀 해양 동·식물뿐만 아니라 미세조류, 해양미생물 채집을 통해 새로운 해양생물을 발견하고 있다.

해양생물에서 추출한 해양천연물을 이용해 의약품을 개발한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성인의 엄지손가락만한 크기의 청자고둥은 '코노톡신'이라는 독이 든 침을 발사해 물고기나 다른 연체동물을 잡아먹는다. 여기서 진통제 성분을 추출했다. 코노톡신은 모르핀보다 수천배 강한 진통작용이 있어 '프리알트'라는 진통제로 판매되고 있다. 특히 청자고둥 독 성분은 백여 개 혼합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종(種)마다 수면, 마비 등 다른 생물에 영향을 미치는 성분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도 다양한 질환 치료제로 개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도 인근 해양미생물로 항암제 연구 = 우리나라도 전 세계 모든 해역에서 해양탐사가 가능한 해양과학조사선을 보유하고 있다. 2018년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이사부호를 활용해 인도양 공해에서 열수분출공을 발견하고, 주변 온도가 400℃가 넘는 극한 환경에서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새우, 게 등 새로운 생명체를 대량 확보했다. 해양과기원은 심해 생물로부터 신약개발을 위한 새로운 물질을 발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내 해역에서 발견한 생명체를 이용한 천연물 연구도 활발하다. 독도 인근에는 1만2000여종의 다양한 해양미생물이 존재하고 있다. 해양과기원 신희재 박사 연구진은 지난해 독도 주변 퇴적토에서 3종의 신물질을 발견하고 '독도리피드'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도리피드는 샴푸·치약·화장품 등에 활용되는 생물 계면활성제인 '람노리피드'의 일종으로, 대장암 등 6가지 종류 암에 대해 항암 활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의약품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활용이 기대된다.

바다는 지구 생물다양성 원천으로 인류에게 중요한 자산이지만, 아직까지는 미지의 세계로 여겨진다. 미래학자들이 인류 미래는 해양에 달렸다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해양생물과 각종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연구되면 인류 미래는 더욱 풍요로워 질 것으로 기대된다.

공동기획 : 내일신문·한국해양과학기술원

["재밌는 해양과학이야기" 연재기사]

정연근 기자 · 류창현 행정원

정연근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