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아동권리위원회 의제강간 연령 상향 강력권고 … 법무부 "13세에서 16세로 바꿔 아동 보호하겠다"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3대 입법이 시급하다. △온라인 그루밍의 형사범죄화 △의제강간 연령의 상향 △피해자를 처벌하는 대상아동·청소년 조항 폐지가 그것이다. 위 3가지는 여성·청소년단체가 수년동안 줄기차게 입법을 촉구했음에도 실현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21대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편집자 주>


"어른에 의한 아동의 성착취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경우든 강간죄로 처벌하겠다는 단호한 사회적 선(16세 미만)이 필요하다."

법무부가 형법상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연령을 기존의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입법을 추진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인 김한균 박사는 19일 "의제강간 연령상향 관련법안은 역대 국회에서 여러차례 발의되었지만 중한 사안으로 고려된 경우가 없어 흐지부지되기를 되풀이했다"며 "이번이야말로 n번방 사건 피해자 상당수가 미성년자인 점에서 대상청소년 규정 등과 묶어 법을 개정할 좋은 기회"라고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9일 법무부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근절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성착취 아동청소년 권리옹호 전문가그룹'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제강간 연령 상향'과 '대상 아동청소년 조항 폐지'등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대부분 국가 한국보다 연령 상한 높아" = 미성년자의제강간·강제추행죄는 일정 나이에 이르지 못한 아동의 성관계에 대한 승낙능력을 부정해 아동 동의가 있는 경우에도 강간·강제추행죄의 예에 의해 처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3세 미만이 기준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세계적 기준에 맞춰 16세로 기준 나이를 상향해야 한다는 비판이 많았다.

2013년 김한균 박사의 논문인 '형법상 의제강간죄의 연령기준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따르면, 대부분의 문명국에서는 아동의 성을 사는 행위는 물론, 성인이 아동을 상대로 성행위하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고 범죄로 취급하고 있다.


국가마다 기준 연령에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의 국가가 우리보다는 더 높은 연령 기준으로 아동 성착취를 보호한다.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스 등은 15세를, 호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홍콩 등은 16세를, 아일랜드 미국(텍사스, 루이지애나, 네브래스카) 등은 17세를, 아프가니스탄 부탄 이집트 가봉 등은 18세를 미성년자의제강간 기준 연령으로 설정했다.

UN 아동권리위원회(CRC)는 지난해 10월 '한국 5-6차 보고서 심의에 따른 최종견해'에서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위원회는 △13세 이상인 아동은 동의능력이 있다고 간주돼, 성적 착취 및 성적 학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점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했다고 고려되는 아동이 범죄자로 취급되며, 법적 조력 및 지원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되고 구금과 같은 '보호처분'의 대상이 돼 성적 착취를 당해도 신고를 단념하게 된다는 점 등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밝혔다.

송지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중현)에 따르면,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른 아동의 연령은 18세 미만이다.

협약은 모든 어린이가 누려야 할 마땅한 권리로 생존의 권리, 보호의 권리, 발달의 권리, 참여의 권리 4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송 변호사는 "이 중 보호의 권리는 성폭력 등 어린이를 유해한 것으로부터 보호할 권리를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청소년들이 영악해졌다고는 하지만,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지는 의문"이라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만18세로 다수의 국가가 우리보다 연령 상한 기준이 높다"고 지적했다.

◆"중학생 연령 아동에 대한 성착취, 처벌공백 커" = 김 박사는 지난해 10월 '아동·청소년 성보호 실질화를 위한 의제강간죄, 16세 미만 간음죄 및 대상아동·청소년 규정 개정'이라는 논문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내지 성착취에 대한 단호한 금지선을 설정하는 형사입법이 필요한데, 이는 형법상 의제강간죄 연령기준의 상향 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과 성착취에 가장 취약한 대상은 13세 이상 16세 미만 중학생 연령의 아동청소년"이라며 "형법에서 가장 시급히 메워야 할 공백은 바로 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미성년자의제강간 연령 상한이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일정 연령에 달하지 않은 아동청소년의 성행위 동의 능력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취지는 일차적으로 성인이 합의 행위를 구실삼아 실제로는 아동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권익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또 "아동청소년의 권리를 더욱 제한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인에 대해서 성관계든 성매매든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해서는 안된다는 금지선을 강화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호나 신뢰 안에서 길들여지거나 우월적 지위 앞에 수동적으로 성인에게 성을 착취당하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면, 하물며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 처한 아동청소년을 성인의 성폭력과 성착취로부터 보호할 필요는 더욱 절대적이다"라고 밝혔다.

◆"우리 법제, 아동에 대한 이해 부족" = 임수희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부장판사는 최근 법무부장관에 보낸 서면의견서에서 "우리의 형사법체계는 '아동'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폭행·협박·위계·위력을 쓸 필요가 전혀 없이 아동의 정서적·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면서 쉽게 아동의 성을 취할 수 있는데도 현행법엔 이를 처벌하지 못하는 '법의 흠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임 판사는 "형식적 조작기(가설과 논리적 추론이 가능해지는 청소년 발달단계)가 완성되기 전 아직 뇌발달이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단지 몸이 자랐다는 이유로 만13세의 아이부터 어른의 성적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시각, 아동의 기본적 필요가 결핍돼 있을 때 그것을 제공하면서 아동의 성을 취하는 자들을 단지 성매매범으로 보고 아동은 대향적 범법자로 보는 시각, 이것이 모두 우리 법제의 아동에 대한 몰이해를 기반으로 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17일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를 근본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국민적 요구를 적극 수용해 미성년자 의제강간 기준연령을 기존의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기획] 21대국회, 미성년자 성착취 막을 3대 입법 시급" 연재기사]

안성열 장병호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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