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 87%가 바다에

영하에서 400℃에 육박하는 온도, 고압, 무산소, 강한 자외선, 극도로 부족한 영양분…

이러한 극한 환경은 해양에서 살아가고 있는 미생물의 생존 환경이다. 빛의 유입이 많은 표층수, 매우 높은 압력의 심층수, 화산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심해 열수구, 해면이나 관벌레와 같은 해양동물의 몸, 무산소 및 영하 이하의 온도를 유지하는 퇴적물을 포함한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해양 미생물은 각기 저마다의 전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극지연구소 연구원들이 해양미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극지연구소 제공


해양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아 물고기, 산호, 해조류 등과 같은 바다 생물에 비해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해왔다. 하지만,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에는 전 지구 미생물의 87%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인간에게는 극한으로 생각되는 환경을 생존을 위한 최적의 환경으로 이용하기 위해 다양한 유전자와 대사 기작을 발전시켜왔다. 또한 물질 순환, 기후변화 조절, 유용한 물질 생산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지구의 보이지 않는 지배자'라고 불리고 있다.

◆해저 메탄 먹으며 온난화 막는 미생물도 = 해양 미생물이 얼마나 다양하고, 이들의 분포를 결정하는 환경 요소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2009년 '타라 해양 프로젝트(Tara Ocean Project)'가 시작됐다. 요트 정도의 작은 배 '타라'를 타고 적도와 남극을 포함한 여러 기후대의 해양 200여 지점에서 3만여점의 해수를 채취했다.

3년에 걸친 항해에서 얻어진 시료를 차세대염기서열 분석법으로 분석,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미생물을 보고했고 이들의 다양한 대사 기작을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서로 다른 환경에 살고 있는 해양 미생물들이 기후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다 속에는 200만에서 800만테라그램(Tg) 이상의 메탄이 저장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방대한 양의 해저 메탄이 공기 중에 방출된다면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행히 해양에서 살아가고 있는 고세균들 중 일부 그룹이 해저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을 무산소 조건의 퇴적물에서 최대 90%까지 소비함으로써 지구온난화를 드러나지 않게 막고 있다.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북극 해저에서 일어나는 메탄 방출 현상을 이해하고자 북극 보포트해, 척치해, 동시베리아해에서 연구를 수행 중이다. 북극해의 해저지질 구조나 메탄의 세기에 따라 메탄을 산화하는 해양 고세균의 분포는 차이가 있다. 해양 고세균은 주변 여건에 따라 메탄을 만들 수 있는 잠재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이들의 메탄 조절방법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생물에 의한 기후 조절의 단서를 찾는 것이 과제다.

◆신물질 원천도 제공 = 해양 미생물은 새로운 물질을 생성하는 보물 창고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은 남극 해양 세균(슈도알테로모나스 종)에서 얼음 성장 억제 물질을 발견하여, 이를 활용한 혈액 동결 보존제를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해면, 산호, 군체멍게 등의 움직이지 못하는 해양저서생물은 적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특이한 물질을 생성한다. 이 물질들은 항생, 항진균, 항바이러스, 항암활성 등의 다양한 생리활성을 지닌 화학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과 공생하는 미생물이 이들 물질을 만든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해면과 함께 사는 세균에서 말라리아의 치료에 효과를 보이는 물질이 보고된 바 있다.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출현으로 인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요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넓고 깊은 바다 만큼의 다양성을 가진 해양 미생물에서 현재 기술로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나 다가올 미지의 질병 X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이영미 선임연구원

공동기획 : 내일신문·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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