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구조물 설계에 유용

홍수·해일 인명피해 줄여

지난해는 근대 기상업무(1904년)를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의 수가 가장 많았던 것으로 기록된 해다. '다나스'부터 '미탁'까지 7개의 태풍이 영향을 미쳤다. 평년보다 2배 이상 많은 숫자다. 잇따른 태풍으로 크고 작은 시설물 피해가 생겼다. 특히 태풍 '링링'이 몰고 온 역대급 강풍(초속 54.4m)으로 복구공사가 진행 중인 전남 신안군 가거도항 방파제 50m 정도가 무너졌다.

지난해만 그런 게 아니다. 거의 매년 해안가에서 태풍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2015년 태풍 '고니'가 지나간 뒤 8m에 달하는 너울성 파도가 강원도 삼척 마을을 뒤덮었고, 2016년 태풍 '차바' 때는 부산 감천항과 다대포 방파제가 크게 파손되었다. 2018년에는 '솔릭'으로 제주 위미항 방파제 일부가 유실되고, '콩레이' 때는 해수면이 높아져 부산 마린시티 해변도로가 2016년에 이어 또다시 침수되었다.

◆거가대교 해저터널 구조물 조파수조에서 안전성 평가 = 인공적으로 파도를 만들 수 있는 '조파수조'는 해안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연구에 사용한다.

파도풀장에서도 레크레이션 목적으로 인공 파도를 만들긴 하지만, 연구용 조파수조에서는 훨씬 정교한 장치로 원하는 파도의 높이나 길이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조파수조는 방파제·안벽 등 바다에 설치되는 인공구조물 설계에 매우 유용하다. 대부분의 해양구조물은 워낙 규모가 커서 바다에서 성능을 미리 시험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조파수조에 축소 모형을 설치하고 태풍 현장을 방불케 하는 파도를 일으켜 구조물의 내구성을 미리 실험할 수 있다.

부산 가덕도에서 경남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 해저터널과 교량을 연결하는 인공섬 구조물이 대표적 사례다. 2010년 준공된 인공섬 구조물은 태풍이 닥칠 때 10m 이상의 파도에도 견뎌야 했기 때문에 시공 전 조파수조에 실제 구조물의 70분이 1 크기 모형을 설치하고 4개월에 걸쳐 엄격한 실험을 진행했다.

최초 설계에서는 50톤 테트라포드 모형이 쓰였지만 그 중 일부가 실험 중 파도를 맞고 굴러 떨어졌다. 결국 파도에 버티지 못하는 구간은 더 무거운 72톤 테트라포드 모형을 설치하여 안정성을 확인했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바다에서 시공을 마쳤다. 많게는 공사비가 수천억원에 달하는 해양구조물은 사전에 안정성을 평가하는 수조 실험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국내에서 최신식 조파수조 여럿 보유 =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의 수리실험동에는 다양한 실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시설이 구축되어 있다. 테니스장 10배 규모의 가로 45.3m, 세로 44.5m 3차원 조파수조, 국내 최초로 바닥 높이를 변화시킨 2차원 조파수조 2기 등을 보유하고 있다.

해양구조물 안전성 평가 뿐 아니라 수중 드론이나 선박 등 해양장비 테스트도 가능하고, 모래·쓰레기 이동 실험도 할 수 있다.

현재 KIOST에서는 높은 파도나 조위 상승 때 자동으로 작동하는 가동식 호안(제방을 보호하는 시설물) 연구를 진행 중이다.

평상시에는 땅 속에 보이지 않게 있다가 연안재해 위험이 높아지면 호안이 위로 올라와 침수를 방지하는 원리다. 따라서 평소에는 시민들의 바다 접근성 및 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연구성과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없는 방파제 파력 평가 기법을 개발하는 연구도 진행 중인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 설계 기준 세계화에도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외부 기관에서도 다양한 목적으로 KIOST 조파수조를 활용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스마트선박 모형이 최적의 운항경로를 스스로 탐색하면서 장애물을 피하는 기술을 검증했으며, 카이스트(KAIST)에서는 파도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 정확성을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하였다.

유네스코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연평균 7000명이 홍수나 해일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재산피해 규모는 약 29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강력한 태풍이 잇따라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들의 안전한 연안 이용과 해양구조물 설계기술 향상을 위해 조파수조를 이용한 연구 및 기술개발에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공동기획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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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 오상호 KIOST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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