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칭패턴 깨지면 위기

평균 2km 남짓의 두께를 가진 남극대륙의 빙상은 전 세계 얼음의 90%, 전세계 민물의 70%를 저장하고 있다. 눈과 얼음으로 덮여있는 극지역은 열대나 중위도 지역에 비해 지구온난화 반응이 더 크게 나타나는데, 최근 온난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해양과 대기의 열이 남극대륙으로 유입돼 남극빙하의 유실이 뚜렷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남극의 온난화 현상은 대륙 전체에 걸쳐 나타나지 않고 지역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빙상 온도 관측 결과 동태평양 구역에 접해있는 서남극 온난화 속도는 눈에 띄게 빠르지만 대서양부터 인도양에 걸친 동남극 지역에서는 아직 미미하다. 동남극이 온난화 추세 속에서 지구기온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동·서남극 간 온난화 차이를 일으키는 근본원인으로 두 지역의 빙상 고도 차이를 주목,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즈(Science Advances)' 6월호에 게재했다.

◆서남극 앞바다 수온과 서남극 상공 대기 반응 = 연구팀은 우선 1950년대 후반 이후 축적된 빙상표면 온도자료에 주요 패턴추출기법(주성분모드추출기법)을 적용해 남극 빙상온도 변화를 지배하는 두가지 큰 흐름을 분리해냈다.

하나는 남극대륙 전체의 온도 상승 패턴이고 또 하나는 동·서남극 간 온도가 반대로 변하는 것이다. 빙상 온도 변화의 특징을 분리한 후엔 각각의 원인을 진단했다.

남극권 해양과 대기 변화 반응을 살펴본 결과 동·서남극 간 온도가 반대로 변하는 비대칭 패턴의 핵심원인은 서남극 앞바다 수온 상승과 서남극 상공 대기의 거대한 반시계방향 고기압성 대기의 순환 반응이었다.

연구팀은 기후모델 실험을 통해 서남극 앞바다 수온 상승이 상공에 고기압성 반응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서남극 빙상 온도가 올라가게 했지만 , 동남극 빙상 온도는 반대로 내려가게 만드는 것을 확인했다. 서남극 앞바다 수온 상승에서 시작된 공기의 흐름이 남극지형에 의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서남극에는 온도 상승, 동남극에는 온도 하강 반응을 유발한 것이다. 서남극 빙상 높이는 동남극 빙상보다 1000m 정도 낮다.

여기에 나머지 하나인 남극대륙 전체의 온도 상승이 더해지면서 동남극은 온도가 하강하는 반응과 상쇄돼 온난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현재와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반응은 먼 옛날에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남극 여러 지역의 빙하코어에서 복원된 수천년의 온도 자료, 그리고 고기후 수치모델, 과거 6000년의 변화 실험을 동시에 확인해 동·서남극 간 비대칭 패턴이 존재한 것을 확인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지구온난화 시기 이전의 긴 세월동안 남극의 기후는 동·서남극 간 비대칭 패턴에 의해 조절돼 온 것이다.

◆100년 이내 남극온도 균형 깨질 수 있어 = 연구팀은 서남극 빙상고도를 동남극 수준으로 높였을 때, 그리고 동남극 빙상 고도를 서남극 수준으로 낮췄을 때 반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컴퓨터 수치모델로 살펴보았다. 서남극 빙상 고도를 높이니 서남극의 온난화 정도가 크게 약해졌고 동남극 냉각반응은 커졌다. 반면 동남극 빙상고도를 낮췄을 때 서남극 온난화 반응은 강해지고 서태평양 쪽에 인접한 동남극 지역까지 확장되었다. 지형이 바뀌면서 고기압성 바람의 세기가 달라지고 주변 바다 흐름도 바뀐 것이다.

동남극 빙상고도를 서남극 수준으로 낮췄을 때는 고기압성 흐름이 더 강하고 서남극 앞바다 수온도 더 올라갔다.

바다 수온이 더 올라간 이유는 바람의 변화가 표층해류를 통해 중위도 따뜻한 물을 서남극 앞바다로 더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남극 빙상지형 구조는 남극의 대기-해양 순환과 함께 남극의 기후변화를 조절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속도로 온난화가 진행될 때 21세기 말 남극모습은 어떨까?

유엔 산하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기후변화 보고서의 21세기 미래전망 자료를 사용해 남극기후변화를 분석한 결과 긴 세월 동안 자연적 조절 역할을 하고 있던 동·서남극 간 비대칭 패턴의 역할이 불과 100년 이내에 급격히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 아직 빙하가 유지되고 있던 마지막 보루인 동남극 지역의 온도 상승도 커지면서 빙하 유실 속도가 점점 증가할 것이고, 이는 해수면 상승으로 나타나 전 세계 해안가 대도시는 심각한 기후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남극빙상의 온난화 모니터링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공동기획 : 내일신문 극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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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홍 책임연구원 · 정연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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