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직접 건의 … 국민발안제 사실상 현실화

민주주의의 회귀 … 직접→간접→직접으로

국민이 나서 행정을 바꾸고 법을 제안하는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 곳에 많은 인구가 모이기 어려운 현실이 간접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면 비대면 시대의 도래와 함께 국민과 유권자의 목소리가 직접 선출직 공무원들에게 전달되는 시대로 되돌아왔다.

열린민주당, '국민소환 법률안' 제출 |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8일 국회 의안과에 당론 1호 법안인 '국민소환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고 있다. 이는 국회의원을 국민소환으로 직접 해임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위한 법안이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국민청원이 청와대로 대표되는 행정부와 국회인 입법부에 전자방식으로 전달되고 이러한 요구들이 실제 행정과 입법에 반영되고 있다.

16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오전 7시 현재 765개의 청원이 국민 동의를 받고 있다. 동의수가 많은 청원 상위 5위는 "등교 개학은 누굴 위한 것입니까"(17만7344명 동의), "2017년 8월 저희 딸의 하의가 모두 벗겨진 채 추락사를 당했습니다"(12만7237명), "주시장 주낙영의 해임건의를 간곡히 청원합니다"(10만5803명), "알콜 만취자, 여성택시운전사 폭행"(8만7779명), "아동학대로 여행용 캐리어 안에 감금되었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9살 아이가 끝내 숨졌습니다. 아동학대 엄벌에 처해주십시오"(7만7332명) 등이다. 다양한 부분에 대한 의견과 건의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들었을 경우에 먼저 생각나는 해결법 중 주요 방법으로 '국민청원'이 생각날 정도다. 전날(15일) 국민동의를 받기 위해 올라온 청원만 34개에 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인기비결 = 청와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로 "국정 현안 관련, 국민들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이상 추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책임자(각 부처 및 기관의 장, 대통령 수석·비서관, 보좌관 등)가 답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7일에 시작한 전자청원이다.

 

 


2년 10개월간(34개월) 173개의 답변이 이뤄졌다. 국민동의 기준을 넘어 답변을 기다리는 3개의 청원까지 합하면 176개다. 월평균 5개꼴이다.

국민청원 인기의 핵심은 낮은 문턱이다. 본인인증이 쉽다. 개인정보를 노출하지 않아도 된다.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톡 등 본인계정으로 소셜로그인만 하면 청원뿐만 아니라 동의도 가능하다.

청와대 청원에 고무된 국회가 올해 1월부터 전자청원인 국민동의청원을 가동했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지난 1월 10일 이후 5개월간 전자입법청원인 국민 동의 청원에 들어온 청원은 모두 1240개이며 이중 100명의 동의를 얻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게 113개였다. 전체의 10% 정도다.

7개가 한 달 안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상임위에 직행했다. 한 달에 1개 정도다. 89개는 30일 동안 10만 명의 동의를 받지 못한 채 종료됐고 17개는 현재 공개돼 동의를 받고 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인기 없는 이유 =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이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소외받는 이유로는 높은 문턱과 함께 국회의원들의 '청원 패싱'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회는 국회의원의 소개제도를 없애고 전자청원 방식으로 전환했지만 국회 운영위 제도개선소위에서 '규칙'제정 관련 논의 결과 국회의원들은 애초 국회 사무처가 요구했던 것보다 높은 동의기준을 만들었다. 국민동의를 받기 위한 전 단계인 사전동의 기준을 '20명'으로, 공개한 청원에 대해 국민 동의를 받아 상임위에 올릴 수 있는 기준을 '석달에 5만명'으로 제시된 '규칙안'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사전동의 100명, 상임위 직행기준 한달 10만명'으로 상향조정했다. 문턱을 한껏 올려놓은 셈이다. 이는 독일 등 외국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또 청원법에 의해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하기 위한 절차가 까다롭게 만들어졌다. 이름, 전화번호, 주소, 이메일주소 등을 입력해야 하며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설정해야 한다. 사실상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청원법에 의한 본인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게 국회 사무처의 설명이다. 6개월동안 국민동의청원의 효능감을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한 것도 국민 참여도가 낮은 이유 중 하나다. 첫 상임위 상정 청원인 'n번방 등 디지털성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요구에 대해 디지털 성범죄의 일부인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서만 반영한 게 논란에 휩싸였다.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추가 청원이 들어왔고 국회는 전면적으로 법에 반영하기도 했다.

추가로 5개의 국민동의청원이 '10만명 동의'를 넘어섰으나 20대 의원들의 임기만료와 동시에 폐기돼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는 국민 청원에 대해 등한시해온 기존의 국회의 행태와 맞물려 국민들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주요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효능감을 높여라 = 청와대 청원은 근거규정이 없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활발했던 백악관 전자청원이 트럼프정부에서 거의 유명무실화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공식적인 청원창구인 국회 국민동의청원 활성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국회 사무처는 '사전동의 20명, 공개기준 석달 5만명'으로 조정하는 규칙안을 다시 올릴 계획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의지가 중요한 대목이다. 국민청원을 국회의원 임기와 같이 논의기간을 정하고 임기가 끝나면 다른 법안과 같이 폐기시키는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국회 청원은 입법뿐만 아니라 부처에 대한 요구 등도 할 수 있으며 이는 청원법에 근거해 법적 효력이 있다"며 "초반이지만 n번방 등에서 관심을 보여준 만큼 더 활성화될 수 있도록 문턱을 적절하게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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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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