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보험사 등 장기·대형투자기관 투자 촉진

경영진 인식제고 … 정책적 인센티브 제공 필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는 전세계 자본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의 ESG 성과를 활용한 투자 방식은 투자자들의 장기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편, 기업 행동이 사회에 이익이 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기업과 투자자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지면서 세계적으로 많은 금융기관이 ESG 평가정보를 활용하고 ESG 투자시장도 확대되는 상황이다. 국내시장에서도 ESG 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ESG채권, 특히 원화채권 발행은 제한적인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ESG원화채권 발행의 문제점으로 추가비용부담과 ESG등급 신뢰성 불충분, 일부 전통산업 및 반 ESG 업종 기업의 구조적·태생적 한계를 지적했다. 국내 ESG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한국상황에 맞는 ESG채권 기준 및 투자 가이드라인 마련, 발행자에 대한 세금혜택, 비용지원과 같은 인센티브 제공 등 정부의 선제적인 역할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투자 활성화 사회분위기 조성 =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ESG 투자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하면서 안정적인 투자처로 평가받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금융권도 ESG 관련 금융상품의 매력을 인지하고 시장 확대에 적극적인 모습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1월 ESG 공시 전담팀을 꾸리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ESG 전문 위원회도 만든다. 상반기 중에는 탄소저감률과 재무정보·시가총액 등을 조합해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기업으로 구성된 '탄소배출 저감지수'를 구성할 계획이다. 한국신용평가는 ESG 채권 인증사업을 시작했고 KB금융지주는 이사회내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신한은행 등 국내 은행권은 ESG 목적의 채권(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 발행 등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기업을 지원했다.

김유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몇년간 비재무적 위험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확대되어 온 ESG 투자 시장은 팬데믹 이후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평가가 더욱 중시되면서 성장이 가속화될 전망"이라며 "국내 금융권도 ESG 투자를 확대하고, 여신금융 포트폴리오 계획 시 투자 관리 지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유지혜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주로 기업지배구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상대적으로 환경·사회에 관련한 이슈에 대한 부분은 비중이 낮다"며 ""온실가스 감축,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등 세계 공통의 이행과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금융기관과 기업의 경영활동에 ESG 관련 정보공개 의무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지난 2월 올해 업무계획에서 녹색산업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제도적 기반 구축을 주요 업무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금융위원회, 중기부 등과 협업해 총 12조5000억원의 녹색산업 특화자금을 조성하고, 민·관 합동 녹색산업 펀드를 운영하는 등 녹색금융을 활성화하고,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이 활용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 대상 및 기준에 대한 지침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의 올해 업무계획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ESG 우수기업 등에 금융이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지속가능 금융 기반을 조성한다는 목표 하에 △정부부처 등에서 제공하는 기업의 환경, 고용, 노동 관련 공공데이터 정보를 DART를 통해 제공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정보제공 확대 추진 △사회적 기업 등에 대한 지원실적을 점검하고 전용 대출상품 등 우수 금융지원사례 전파 △금융지주회사의 지속가능금융, UN의 책임은행원칙 이행현황 등을 점검하고 자발적 참여 유도 등의 구체적인 실천목표를 제시했다.

국민연금의 경우 지난해 12월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올해부터 ESG 투자 비중을 늘리고 투자대상 기업들의 ESG 평가를 강화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마련한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을 보면 국민연금은 전체 자산군에 사회책임투자를 적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우선 도입하고 자산군과 운용방식별 특성을 고려해 책임투자 전력을 적용하기로 했다.

◆ESG 등급 신뢰성 부족 = 하지만 해외선진국에 비하면 국내 ESG투자는 걸음마 수준이다. 2018년 기준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뉴질랜드의 ESG 투자 규모는 약 30조달러로 전체 운용자산 대비 ESG 투자 비중은 25%에서 많게는 60% 이상인 반면, 국내 전체 ESG 투자 규모는 약 28조원, 전체 운용자산 대비 ESG 투자 비중은 4.18%에 불과하다. 그나마 이 중 96% 이상을 국민연금이 차지하고 있다.

권성철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위원은 "ESG 원화채권 발행의 문제점으로 △발행사 입장에서 추가비용부담이 발생 한다 △ESG 등급의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다 △일부 업종 기업은 구조적 , 태생적 한계 가 있어 발행시장 접근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국내 ESG 전문평가사간, 국내와 해외 ESG 전문평가사간 평가기준이 상이하고 특정기업에 대한 평가등급도 상당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고 등급체계가 상이한 상태에서 개별 ESG 등급 논거에 대한 공시가 충분하지 않아 그 신뢰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ESG 평가체계 간 일관성이 외에 실제 ESG 투자를 시행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으로 여러 다수의 ESG 평가기관이 제공하는 ESG 점수 간 비일관성 및 낮은 투명성의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며 "국내의 ESG 평가체계는 주로 기업지배구조 평가에 집중되어 오면서 사회책임과 친환경경영에 대한 평가 능력은 선진국에 비해 다소 뒤처져 있다"고 꼬집었다.

◆발행사·투자자에 혜택 제공 = ESG채권은 발행사 입장에서 저금리의 자금 조달 친환경기업 이미지 홍보의 장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ESG 채권은 일반채권에 비해 다양한 측면에서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ESG 평가 사전검증 사후관리 및 사후보고와 관련한 추가적 비용발생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ESG 투자자 투자기관 또는 ESG 투자펀드에게는 충분한 세제혜택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권 연구위원은 "ESG는 환경보호 사회적 책임 이행, 특별한 리스크 대응이라는 당위적 대의명분 뿐 아니라 사업적·재무적 측면에서도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기업의 장기적 생존에 ESG 이슈가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ESG 채권시장을 발전시킬 유인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광휘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국내 ESG채권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내상황에 맞는 ESG채권 기준 및 투자 가이드라인 마련, 발행자에 대한 세금혜택, 비용지원 등 인센티브 제공, 투자자 인식 및 발행자의 역량 강화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연기금, 보험사 등 장기 대형투자기관 투자 촉진 등 정부의 선제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며 "정부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 연구원은 우선 ESG채권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의 적격한 사용처(프로젝트, 사업 등)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ESG채권 인증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보유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검증할 수 있는 공신력 있는 평가기관 지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ESG채권 가이드라인 제정과 적격 평가기관의 선정은 투자자와 발행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거래비용을 감소해 궁극적으로는 시장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투자자에게 다양한 투자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SG 선행국가에서는 중앙정부(주로 환경부), 거래소, 전용펀드 운용기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격 평가기관을 지정하고 있으며, 시장을 촉진시키고 효과적인 관리·감독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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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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