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제 목소리 못 내고 존재감도 없어 … 플랫폼 공정경제·국내 IT기업 역차별 해소 주목

2019년 초부터 문재인정부 2기 내각 발족 필요성이 제기됐다. 집권 중반기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3월에는 행정안전부 장관 등 7개 부처 장관과 2개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5개월 뒤 12개 부처 장관급과 주미대사 인사가 이어졌다.

조성욱 서울대 교수는 이때 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발표됐다. 당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개각은 도덕성을 기본으로 하고 해당 분야 전문가를 우선 고려했다. 여성과 지역 등 균형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이 사실상 완성됐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인사 하마평이 이뤄지던 무렵, 당초 '조성욱 교수'는 금융위원장 후보로 먼저 거론됐다. 전공분야도 '금융'쪽에 가깝다. 최근까지 금융위원회 소속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을 맡기도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금융위원장엔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낙점됐고, 조 교수는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정무위 간담회 참석한 공정거래위원장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금융위원장 후보로 먼저 거론 = 공정위 내부는 술렁였다. 신임 위원장이 공정위가 다룰 경쟁정책업무와는 큰 연관이 없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전임 김상조 위원장은 시민단체에서 재벌개혁을 다뤄온 상징성이 있었다. 재벌개혁을 요구해 온 시민단체나 학계에서는 "문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의지가 약해진 것 아니냐"는 탄성이 나왔다.

조 위원장도 내심 금융위원장 발탁을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공정위원장 발탁에 '여성 균형'이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에서 '내각에 여성 30% 발탁'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런 배경 탓인지 조 위원장의 행보는 '조심' 그 자체였다. 인사청문회에서는 자세를 한껏 낮췄다. 취임 뒤에도 외부행사를 자제하고 말을 아꼈다. 김상조 위원장 당시 거의 매달 현장을 찾거나 '이벤트성 발표'를 하던 때와는 분위기가 '극과 극'이었다. 취임 초에는 공정위 직원들과 회의를 하거나 보고를 받을 때에도 "많이 배웠다"는 말을 자주했다는 후문이다.

◆"한 일이 있어야 평가하지" = 그의 '잠행'이 길어지면서 문 대통령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실제 '조성욱 10개월'에 대해 묻자, 전문가들로부터는 "별로 평가할 게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3일 "공정위에 대한 사전 현안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현재까지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전임 김상조 위원장이 워낙 색깔이 분명했던 탓인지, 조 위원장 스스로 특별한 이슈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과거와는 다른 정책방향을 모색하는 기간이자 내실을 다지는 기간으로 이해한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모색기간' 10개월은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많다. 이 교수도 "공정위원장 임기가 3년이고, 정무직이다보니 1~2년 만에 교체되기도 하는데 모색기간이 다소 길기는 하다"고 지적했다.

◆경제민주화 후퇴 우려 = 공정위원장이 제 목소리를 못내면서, 문재인정부의 경제민주화정책도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현안이 대기업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 문제다. CVC는 그동안 금산분리(대기업이 금융업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원칙에 따라 허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입장을 바꿔 CVC를 허용키로 하고 하반기경제정책방향에 담기로 했다. 벤처·스타트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높여 제2의 벤처투자 붐을 조성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학계 일각에서는 "결국 재벌기업이 금융업까지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CVC의 경우 부처별 입장이 엇갈린 사안이었다. 그동안 기재부 등은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해 허용을, 공정위는 금산분리 원칙 훼손을 우려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정책조정 과정에서 조 위원장이 제 목소리를 못내면서 '금산분리원칙 후퇴'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남은 기간이 중요 = 최근 공정위가 제출한 공정거래법전면개정안도 '경제민주화 후퇴'로 비판받고 있다. 공정위는 20대 국회에서 제출했던 개정안을 거의 그대로 21대 국회에 냈다. 박상인 교수는 "사익편취나 대기업 경제력집중 억제 두 측면에서 모두 규제를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누더기법안"이라고 혹평했다.

다만 최근 공정위의 '무존재감'은 시대여건과도 무관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위기극복이 최대화두가 되면서 '공정경제' 이슈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이 교수는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도 그랬지만, 경제위기가 오면 경제민주화 문제는 관심받기가 어렵다"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조 위원장이 플랫폼산업의 공정경제나 국내 IT기업들이 주장하는 미국 거대기업과의 역차별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면서 "이런 미래지향적 분야에서 성과를 낸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공정위도 "조 위원장 취임 이후 ICT 특별전담팀을 구성해 디지털 경제 분야의 경쟁·갑을·소비자 이슈 전반을 발굴하고, 디지털 공정경제 정책 방향성을 선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조성욱 위원장이 지금까지는 여러 상황으로 제 목소리를 못 냈지만,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향후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 국회논의 과정 등에서 전향적인 입장을 내고 추진력을 보여 달라는 주문이다.

["조성욱 위원장 9개월, 흔들리는 공정거래위원회" 연재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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