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 경쟁력이 제품 경쟁력 … 연방정부·주정부·지자체에, 유럽연합까지 지원

코로나19로 한국경제의 아픈 손가락인 중소기업과 청년일자리가 다시 한번 타격을 입고 있다. 코로나도 면역력이 강한 사람에게는 감기 앓듯 지나가지만 기저질환자나 노약자에게선 목숨을 앗아간다. 어떻게 한국경제 중소기업과 청년일자리에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을까?


내일신문은 정미경 한독경상학회 아우스빌둥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다섯 차례에 걸쳐 중소기업이 인력양성제도인 아우스빌둥(Ausbildung)을 이끌며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독일의 사례를 재조명한다. <편집자주>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핵심은 "경쟁을 영속적으로 유지할 시스템을 갖춰 사회가 경쟁의 효율성이라는 과실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다. 경쟁을 지속하기 위해서 국가가 불공정과 무질서로부터 자유를 지키도록 한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경쟁능력이 없는 사람은 배려하지만 개인이든 기업이든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할 것을 가장 먼저 요구한다. 이러한 자기책임과 사회적 균형을 기초로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산업환경을 만들어 대기업에 종속되지 않고 세계를 리드하는 중소기업을 만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힘의 균형 = 균형의 중심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힘의 균형, 균형 있는 원하청관계를 의미한다. 균형 있는 원하청 관계는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클수록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핵심이 된다.

독일은 1957년 경쟁제한 금지법(GWB)이라는 소위 반카르텔법을 도입했고 이 법이 독점금지 및 경쟁의 핵심규범이 됐다. 독일과 유럽의 엄격한 반카르텔법에서 대표적인 예외가 중소기업의 카르텔 허용이다.

한국도 공정거래법 제19조(부당한 공동행위 금지)의 예외조항과 동법 시행령 28조(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동행위 요건) 등으로 중소기업의 카르텔을 예외로 규정하고 있어 제도의 외형은 이미 도입됐다. 세계에서 좋다는 법은 거의 다 한국에 도입이 됐다. 문제는 제도의 외형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사용자협회 1000년 전통 = 독일의 경우 법적인 강제 이외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가 있다.

독일 대기업의 수출비중이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고 하지만 수출품 경쟁력은 제품의 알맹이인 부품의 경쟁력 없이는 달성될 수 없다. 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중소협력업체의 품질경쟁력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원청의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협력업체가 조용히 안정되게 지속적으로 잘 굴러가게 돕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길드 방식에 따라 작은 기업이 서로 협력하는 사용자협회가 1000년이 넘는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동일시장에서의 경쟁은 가능한 피하고 시장분할을 통해 상호이익을 추구한다. 산업화 이후 등장한 대기업에 대한 대응력도 높다. 거대한 기업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돼 대기업이 하청업체를 착취하는 것은 어렵다.


◆1개 대기업 납품비중 25% 못 넘게 = 정부도 중소기업 보호에 적극적이다. 2000년대 말 독일 철도청이 민영화되자 부품업체들에게 납품가격을 3%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부품업체들은 이를 카르텔청에 신고했고 이에 따라 철도청이 인하요구를 철회한 바 있다. 또 협력업체가 공급한 제품에 대해 최장 30일 이내에 결재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예방하기 위해 1개의 대기업과의 주문 생산이 하청기업 매출액의 20∼25%를 넘지 않도록 한다. 또 원청의 선급금에 대해 연방, 주정부가 하청을 보증한다. 2011년 기준 한국 중소 제조기업의 하청비율은 전체 중소 제조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6.2%를 차지한다. 또 이들 기업은 매출액에서 대기업 납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82.5%에 달할 정도로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이러한 의존성이 원하청의 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만들었다.

◆불리한 시장조건, 공정경쟁 지원 = 독일에서 산업발전의 주역은 시장에 참여하는 민간이다. 국가는 시장이 일궈낸 산업구조의 맹점을 보완한다.

정부는 이런 원칙에서 대기업에 비해 불리한 시장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한다. 중소기업(KMU) 지원에 중앙정부 소속인 연방경제부 중소기업정책국과 독일재건은행(KfW)이 앞장선다. 주정부의 경제부처와 주립은행, 기초지자체와 저축은행, 유럽연합과 유럽투자은행 모든 정치·행정 주체가 중소기업지원에 나선다.(그림 참조)

◆환경변화에 맞춰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 높여 = 연방정부는 각 주와 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중소기업정책을 실시한다. 독일연방정부의 경제부는 독일의 중소기업이 미래에도 지금과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인구학적 변화, 에너지전환, 디지털화와 같은 새로운 환경에 발맞춰 발전해야 한다며 정책을 리드한다. 중소기업 지원정책은 다음 각 분야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먼저 중소기업의 창업과 기업승계를 활성화해 기업이 혁신성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도록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다. 특히 창업과 승계를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그간 과소평가된 여성과 외국인에게 창업 또는 승계에 매력을 느끼도록 한다.

중소기업 창업과 성장을 위한 자본조달을 지원한다. 투자는 혁신의 기본전제이다.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자본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자본을 조달한다. 연방정부는 상장 대기업에 비교해 자본조달이 용이하지 않은 중소기업이 투자와 혁신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독일재건은행(KfW)과 유럽투자기금을 중심으로 약 20억유로를 확보하여 대출을 보장한다.

독일사회의 고령화 문제는 한국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지만 1970년대부터 시작돼 한국에 비해 훨씬 오래된 문제다. 이는 기술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여기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우수인력 확보경쟁이 발생한다. 국가는 이에 대응해 충분한 인재풀을 조성한다. 한편 국내 인구의 감소에 대한 대응으로 이민자와 난민에게로 눈을 돌린다. 이민자와 난민을 도전의식이 강한 인력군으로 만들기 위해 이들에 대한 교육, 훈련, 일자리 알선에 적극 나선다.

공적지원의 의존성이 높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더 자주 관공서를 찾고, 더 많은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는 기업이 본업인 혁신 생산 일자리 창출에 집중하는 시간을 빼앗는다. 중소기업이 자기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독일은 제1·제2 관료주의 경감법과 조달법을 현대화했다.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독일식 답답한 관료주의는 사라졌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절차의 간소화로 약 20억유로의 행정비용 경감됐다고 한다.

중소기업 업무와 생산의 90% 정도는 디지털화로 효율성을 높이고 간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반면 중소기업의 디지털화 관심은 대기업에 비교해 적다. 연방경제부는 전국 25개 지역에 '중소기업4.0역량센터'를 설립해 중소기업이 최신 정보통신기술, 디지털화 및 네트워크화 효력을 체험하고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으로 R&D사업을 추진하지만 중소기업은 독자적인 R&D 수행이 어렵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정부연구소의 연구개발 결과를 생산에 적용할 수 있도록 산업클러스터를 통해 중소기업의 혁신역량을 강화한다.

독일 중소기업의 약 44%가 직·간접적으로 독일의 무역에 기여하고 있다. 연방경제부는 '글로벌 중소기업' 이라는 기치아래 중소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을 독려한다. 또 독일의 중소기업이 다른 나라의 중소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부는 국제 표준과 규정이 독일의 중소기업에 유리하도록 각종 국제조직에서 치열한 로비활동도 벌인다.

이밖에도 독일식 이원화 직업훈련제도 및 마이스터 제도, 산업별 협회, 노사정 사회적 파트너십 등 독일식 제도를 유럽으로 확산해 중소기업이 독일에서 향유하던 비즈니스 환경을 유럽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 유럽 '소기업 우선주의' 실현 = 독일이 중심이 돼 유럽연합은 소기업의 기업활동을 확대하고 소기업활동의 법적 행정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10대 기본원칙을 명시했다. '소기업 우선원칙'은 유럽중소기업법으로 제도화됐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매우 혁신적이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중소기업의 57.0%가 특허상품 출원 등 시장에 혁신을 제공했다(EU 평균은 38.4%). 독일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힘의 균형을 조성하고 중앙 지방 유럽의 정부가 모두 나서 중소기업을 도와 다방면에서 공정한 시장이 가능하도록 경쟁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은 이유는 가족과 지역에 뿌리를 둔 전통 있는 기업을 국가가 적극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미경 박사는

현재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며 단국대 초빙교수로 있다.

한독경상학회 아우스빌둥위원회 위원장이다.

독일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동 대학에서 강의했다.

독일의 직업훈련제도, 한국과 독일 인적자본투자의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중소기업 경쟁력, 독일식 비결을 찾는다" 연재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