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 선언' 등 대대적인 혁신 추진 … 노조 불인정·정경유착은 과오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한국의 삼성'을 '세계의 삼성'으로 변모시킨 지휘자이자 사령관이었다.

이 회장의 혁신의지와 실행이 없었다면 삼성그룹 매출이 10조원(1987년)에서 387조원(2018년)으로 39배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기간 이익은 259배, 시가총액은 396배나 증가한 것도 혁신의 결과다.

1987년 11월 삼성그룹 회장 취임식. 사진 삼성전자 제공


이같은 외형적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경영체질을 강화함으로써 삼성이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추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6월 '신경영'을 선언하고 있다.


◆회장 취임사 약속 이루다 = 이 회장은 1987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이 회장은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일본 한기업연구소는 보고서를 내놓으면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IT산업의 모태인 반도체산업을 키워야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 회장은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나"라며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에 삼성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 데 이어 시장 점유율도 1위를 기록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이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반드시 1명 당 1대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1995년 8월 삼성 애니콜은 세계 휴대폰 시장 1위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랐다.

2010년 5월 삼성전자 16라인 반도체 기공식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


◆위기 극복의 리더십 =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 추월한 순간이었다.

이 회장은 이 때도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밤잠을 설치며 다가올 위기에 대비해 고민했다. 1993년 오사카 회의에서 이 회장은 "지난해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 지난해말부터 하루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스포츠 외교도 활발히 펼쳤다. 사진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발표 순간.


그해 사내 방송에 불량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장면이 보도된 것이다. 당시 이 회장은 미국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베스트 바이'를 둘러보다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 삼성제품이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두 사건을 겪은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놓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800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시간 토의로 이어졌다.

삼성은 1996년 연평균 17% 성장률로 변화와 혁신에 응답했다.

이 회장은 이때도 고삐를 죄었다. 삼성그룹은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와 경비 30%를 절감하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히 추진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지 1년 뒤 1997년 한국은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를 넘어서 세계 디지털 시장 선점 기회를 만들었다.


◆삼성 공채, 학력제한 폐지 = 삼성은 1995년 한국 기업사에 큰 변화를 가져 온 '삼성 공채 학력제한 폐지'와 '학력위주에서 실력위주로'로 대별되는 인사정책을 발표했다.

이 회장은 열린시대를 맞아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지시한 것이다.

이때부터 삼성은 대졸 공채 대신 3급 신입사원 입사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에 합격할 실력만 되면 대학 졸업장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됐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노력도 진행됐다.

이 회장은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결정했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에도 "삼성그룹 대부분이 양산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종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력회사와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다. 삼성에서는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라는 말이 사라졌다.


◆각종 비자금 사건에 연루 =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인 반면 각종 비자금 사건과 편법 승계, 노조 불인정 등의 오점을 남겼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조사를 받았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선대 회장부터 이어진 삼성의 '무노조 경영' 철칙을 계속 고집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 탈법·편법 승계는 글로벌 표준과 거리가 멀다. 시대변화와 흐름을 읽지 못했다. 이는 후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짐으로 다가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25일 논평에서 "고인의 생애도 공과가 뚜렷하다"며 "세계적인 기업 삼성이 빛을 내는 데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노동자 탄압은 짙은 그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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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현주 기자 hjbeo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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