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기마다 미래 꿰뚫는 발언 내놔

품질부터 디자인·특허·인재·융합 제시

"국제화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 당시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삼성 핵심 CEO와 고위 임원들이 모여 들었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신경영 선언'을 했다.

1987년 부친 이병철 회장에 이어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지 6년만에 삼성의 근본적인 체질혁신을 주문한 것이다.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썼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결심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담아낸 것이다.

'신경영 선언'은 오늘날 삼성을 만든 기반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10주년을 맞은 2003년 6월 5일 "신경영을 안 했으면 삼성이 2류, 3류로 전락했거나 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고 회상했다.

세인들 사이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은둔의 황제'라고 불렀다. '초일류기업'을 향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에만 집중한 탓이다. 그의 '업(業)의 특성'을 꿰뚫는 직관은 대단했다.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 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야 합니다.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 진다." 신경영 선언을 한 1993년에 이미 디자인의 가치를 설파했다.

1996년 1월 신년사에서는 창의성과 지적자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그는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경영의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IMF사태 직전에는 21세기 정보화사회의 급속한 확산을 예견했다.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는 인간의 지적 창의력이 부의 크기와 기업경쟁력을 좌우하게 됩니다. 하드적인 제품 성능이나 품질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평준화돼 더 이상 경쟁무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10년 앞을 내다보면서 세계 표준이 될 수 있는 기술개발과 무형자산을 확대하는 데 집중해 나가야 하겠습니다."(1997년 신년사)

초일류기업을 향한 고민은 이어졌다.

"5년에서 10년 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 땀이 납니다."(2002년 4월 전자계열사 사장단 회의) "디지털시대 경쟁력은 지식과 브랜드,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분야들이 좌우할 것입니다."(2004년 1월 신년사) "지금이 진짜 위기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2010년 3월 24일)

인재확보와 기업문화 혁신 주문도 쏟아냈다.

"삼성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글로벌 인재를 키우고 부단히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문화를 구축해야 한다."(2011년 신년사)

"5년, 10년 후를 위해 소프트기술, S급 인재, 특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장들이 S급 인재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특허는 투자 차원에서라도 미리미리 확보해 두어야 한다."(2011년 7월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

수많은 성과에도 이 회장은 '위기의식 재무장'을 요구했다. 2013년 10월 28일 신경영 20주년 만찬에서 영상메세지를 통해 "우리는 초일류기업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한 길로 달려왔다.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한다"면서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2014년 신년사는 이 회장의 공식적인 마지막 메시지다.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인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하게 버립시다.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 관행을 떨쳐 냅시다.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냅시다. 산업과 기술의 융합화·복합화에 눈을 돌려 신사업을 개척해야 합니다."

한국경제의 큰 별, 이건희 회장의 초일류기업을 이루기 위한 '혁신'은 기업과 사회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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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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