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량확대보다 형평성 기반 배정 더 중요

내년에는 최근 5년래 가장 큰 규모의 IPO(기업공개) 시장이 펼쳐질 전망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 크래프톤, 카카오뱅크,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기업가치가 조 단위에 달하는 대형 기업들의 상장이 예상되면서 IPO 제도개선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전문가들은 적정한 기업가치 산출과 공모가 발견 기능 강화, 공정한 공모주 배정 방식으로 투자자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자와 기업 모두를 위한 안정적인 IPO시장을 만들고 주식시장 활성화에도 기여하기 위해서는 IPO 공모주 배정의 신뢰성 제고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다.


◆고액자산가·대출청약자에 유리한 방식 개선해야 =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발표할 '공모주 배정 및 IPO 제도개선' 방안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금융위는 일반투자자들에게 배정하는 IPO 물량을 30% 선으로 늘리기 위해 하이일드펀드 배정 비율을 10%에서 5%로 줄이고 우리사주조합 청약 미달 물량은 최대 5%까지 개인 청약자 물량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에 대한 물량확대보다 공정한 배정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형평성에 기반하지 않은 배정방식으로 인해 소외되는 투자자들이 생긴다"며 "형평성을 고려한 방식으로 일반공모물량 배정방식이 바뀐다면 공모주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주식시장이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의 국가는 일반청약자에 대한 의무배정을 복수계좌 청약금지를 전제로 소액청약우대방식, 추첨방식 등 투자자 일반에 투자기회의 확대 및 형평성을 높이는 방식(equitable basis)으로 운용하고 있다. 특히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형평성 배정기준이 일반청약 배정방식으로 상장규정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우대고객구분 우대배정, 고액청약물량에 비례한 안분배정 등 고액자산가, 대출청약자, 복수계좌청약자에게 유리하게 일반청약자에 대한 공모주 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 일반청약 배정실무상 자산평잔 등이 높은 우대고객은 청약한도가 일반고객보다 많고 우선배정을 받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청약경쟁률에 따른 안분배정이 이루어지더라도 일반고객은 우대고객보다 구조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게 된다. 특히 투자열기가 과열된 공모주 배정에 있어서는 소액청약자는 공모주 배정기회가 매우 적다. 1억원을 넣어 겨우 2주나 5주를 받으며 소액투자자들은 단 1주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반면 고액자산가나 대출청약자는 청약증거금을 많이 납부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크게 유리하다. 또 증권사를 달리하는 복수계좌 청약이 가능해 소액청약자가 배정받을 기회는 더욱 줄어들게 된다.

김 연구원은 "이러한 배정 방식은 일반 소액투자자들에게도 고르게 공모주를 배정시킨다는 형평성의 제도적 취지에 반하는 모순이 있다"며 "현행 배정실무는 배정을 많이 받기 위해 실수요보다 큰 청약증거금을 납입한 후 공모주배정을 받은 투자자(특히 대출청약자)의 단기수익편취 행태를 조장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단기투자성향의 고액자산가 및 대출청약자에게 많은 물량이 배정되는 현행 배정방식은 제도도입 취지에 반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 정합성에도 반한다"며 "금융당국은 소액청약자 우대, 추첨방식 등 일반청약자 의무배정에 대한 형평성 기준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기관투자자들도 공정 배정 요구 = 형평성에 관한 문제는 개인투자자만이 아니라 기관투자자들에게도 해당된다. 현재 상장주관사는 수요 예측을 통해 기관별 인수희망 가격 및 수량, 의무보유 확약 내용 등을 고려하고 상장 대상인 발행사가 공모가를 결정하면 각 기관에 물량을 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때 주관사가 상장하는 기업의 이익이 아닌 개별 기관과의 관계를 고려해 주식을 배정하는 불공정성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관계로 특정 사모펀드는 의무보유 확약 없이 전체 펀드 순자산의 10%를 배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6개월 보호예수를 걸었지만 펀드 순자산의 2%도 배정받지 못하는 사례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개인투자자 비중을 늘리기 위해 기관의 물량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되자 기관투자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공모주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공모주 물량을 너무 적게 받아 수익률을 높이기 너무 어려운 실정"이라며 "낮은 수익률로 인해 펀드자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편 국내 기관투자자에 대한 공모주배정방식은 효율적 공모가격결정을 위해 가격정보를 제공하고 가격안정을 위해 장기보유를 하는 투자자에게 인수인이 자율적으로 공모주를 배정하는 글로벌 투자은행의 수요예측 모델을 기본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수업무규정(제9조)에 따르면 청약자 유형군에 따른 의무배정비율을 정하고 있다. 때문에 인수인이 가격정보제공에 대한 보상으로서 공모주를 자율적으로 배정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연구원은 "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 벤처기업투자신탁(코스닥 상장의 경우)에 대한 공모주식 의무배정은 벤처육성을 위한 보상 정책으로 볼 수 있다"며 "이러한 정책 대가성 의무배정은 공모주 가격결정을 왜곡시키고, 공모주 시장조성 및 장기투자자 육성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IPO 공모주 배정 둘러싼 쟁점"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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