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시·도 단위 한곳 뿐, 병 키워 치료 … "국가차원 인프라 구축 필수"

장애인(2019년 261만명 등록)은 자신의 장애가 원인이 돼 생기는 건강상 문제뿐만 아니라 생활 속 건강활동 미실천과 사회적 의료지원 부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 만성질환들 때문에 힘겨운 생활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주치의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전국적 시행은 요원하다. 내일신문은 장애인들의 건강권 강화 요구에 따라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주>


#1. 발달장애인 아이는 흔히 치석이나 충치 제거하는 기계 소리에 민감하고 진료를 두려워한다. 아이들은 가만히 입을 벌리고 머리를 고정하기 힘들어 한다. 해서 치과에서는 대부분 전신마취를 해야 치료가 가능하다고 안내한다. 그런데 전신마취가 가능한 곳이 지역에서 멀기도 하고 대기자가 많아 몇개월을 기다려야 가능하다.

#2. 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다양한 전신 건강문제를 겪는다.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중복장애의 경우도 있다. 어금니가 살 속에 파묻혀 있는 경우 음식을 씹고 넘기기 어려운 섭식장애를 겪는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전신마취를 하지 않으면 치료가 어렵다고 말한다. 정신장애인과 달리 뇌병변의 경우 몸을 고정하는게 어렵지 않은 경우도 많다. 간단한 치료는 전신마취 없이 진행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3. 척수에 문제가 있는 지체장애인들은 팔다리에 힘이 없을 뿐 입을 벌리고 머리를 고정할 수 있다. 다만 휠체어와 진료대 사이로 몸을 옮기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뿐이다. 옮기는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도 일반 치과의료기관에서는 장애인이라면 무조건 안전사고를 이유로 들며,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몇 개월을 기다려 구강진료센터에서 치료해야 한다.



발달장애인·뇌병변 장애인 부모와 지체장애인들이 장애유형에 따라 치과진료에서 겪는 어려움을 17일 오후 본지에 밝혔다. 그들은 장애인들이 치과진료를 하기 위해서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오랜 대기시간과 힘든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다고 호소했다.

경기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서 장애가 심하지만 전신마취 없이 외래진료를 받고 있다. 사진 경기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 제공

이와 관련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진행한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은 "심한 경우 장애인이 충치치료하는데도 1년 정도를 대기하는 사례가 있다"며 "장애인 구강진료센터의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는 등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치과영역 중증장애인이 전체의 32.8% =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의 다빈도 질환 1위가 치주질환이다. 치주질환이 진행되면 조기 치아상실로 음식물 씹기가 어렵고 영양섭취 부족이나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노인에게 나타나는 문제가 장애인들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나타나는 셈이다.

장애인의 영구치 충치 경험은 85.2%로 비장애인의 54.6%보다 훨씬 많다. 또한 장애인의 영구치 충치 경험은 만12세에 3.67개에서 만19세에는 8.2개로 크게 늘어난다. 65세 이상 장애인 치아충치 환자는 2011년 7만3000여명에서 2015년 8만9000명으로 연평균 증가율이 4.98%로 같은 기간 국민 전체 증가율 0.73%보다 6.8배 높았다.

그 결과 2017년 장애인 254만명 가운데 치과영역 중증 장애인은 83만명으로 32.8%에 이른다.


이처럼 장애인의 구강건강지표가 심각한 수준임에도 우리나라 장애인의 치과이용률은 높지 않다. 2017년 장애인 치과 검진 결과를 보면,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11만명,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장애인이 6만여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진료받은 경우는 2017년과 2018년 5만명 전후에 머물렀다.

진료가 적은 이유는 우선 인프라 부족에 있다. 2017년 말 기준 전국 1만7607개 치과병의원 가운데 장애인를 대상으로 진료 가능한 곳은 333개(1.9%)에 불과하다.

일부 치과의료기관에서만 장애인진료가 이뤄지는 것은 장애인의 장애유형에 따라 의료진이 진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치과진료는 입을 벌려 기구로 치료하는 형태를 띠기에 의료진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뇌병변 지적 정신 자폐성 등 중증장애인들은 스스로 행동제어가 어렵다고 치과계는 본다. 그래서 전신마취가 가능한 치과의료기능이 갖춰진 대학병원이나 치과전문병원 등 소수 치과의료기관에서만 진행하게 된다.

치과의료기관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부터 국가는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설치해 운영 중이다. 현재 중앙센터 1개소, 광역시도별 권역센터 11개소가 운영 중이다. 이용 장애인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진료한 장애인 수는 2019년 전체 장애인 261만명 가운데 6만7275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장애 정도와 경제적 수준에 따라 지원안 마련해야 = 구강진료센터가 광역시도별로만 설치가 돼 있고 그 수가 적다보니 장기 대기자가 속출하고 있다.

최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신마취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의 경우, 진료 예약에서 초진까지 평균 22일 이상, 초진에서 진신마취 진료까지 평균 106일이 걸린다. 전체 진료 평균 대기시간은 128일에 이른다.

대기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마취과 전문의 부족이 한몫한다. 중증인 경우 마취전문의가 마취를 하는데 전국 구강진료센터 안에 16명뿐이다. 12명은 겸임이고 단 4명만 전임이다. 심지어 부산센터는 마취과 전문의가 없다. 중증장애인인 경우 대기시간이 1년까지 늘어나는 이유다.

김동현 경기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장은 "장애인이 치과 진료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시설과 인력 확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이 치과 진료를 받지 않는 이유에는 진료비 부담이 가장 컸다. 장애인 진료에는 전신마취 등의 추가 비용이 든다.

복지부 자료에 나온 '발치 11개, 신경치료 1개, 상악틀니, 하악RPD, 어태치먼트, 전신마취 6회를 실시한 사례'에 필요한 비용은 502만6500원이다. 하지만 비장애인의 경우 250만원 정도 든다. 장애인이 2배 이상 비용이 더 드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장애인들이 치과진료를 주저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지속 진료를 위해 장애인들이 부담해야 되는 비용을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자체 운영비를 전용해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2019년 구강진료센터가 부담한 장애인의 자부담비는 17억7000만원에 이른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정기적으로 스케일링도 하면 장애인의 건강에 도움이 클 텐데, 그것도 전신마취해야 한다고 하고 비용도 비싸다"며 "아이가 아주 심한 통증을 호소할 정도가 되어서야 치과진료를 신청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결국 병을 키워서 가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진료비 부담은 장애인 구강진료 접근성을 제약하는 주요 요인"이라며 "국가가 진료비 일부를 장애 정도와 경제적 능력을 고려해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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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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