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장비 비장애인중심 설계로 이용 어려워 … "만성질환 관리 주치의와 연계"

장애인(2019년 기준 261만명 등록)은 자신의 장애가 원인이 돼 생기는 건강상 문제뿐만 아니라 생활 속 건강활동 미실천과 사회적 의료지원 부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 만성질환들 때문에 힘겨운 생활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주치의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전국적 시행은 요원하다. 내일신문은 장애인들의 건강권 강화 요구에 따라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주>


우리나라 여성장애인은 2019년 기준 전체 장애인 261만명 가운데 110만명에 이른다. 가임기여성(20세∼49세)은 15만여명 정도다.

여성장애인은 자신의 주 장애로 인한 건강관리가 필요한 부분과 만성질환관리, 그리고 임신출산 관련 영역에서 보건의료 돌봄이 절대 필요하다. 하지만 여성장애인의 건강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지원 수준은 매우 열악해 정책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혁 충북대 의대 교수는 "여성장애인은 비장애인남성-여성, 그리고 장애인 남성에 비해 건강지표가 가장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남성중심 가정문화, 저소득 수준, 차별인식, 낮은 모성보호 등의 복합적인 사회환경이 주요 요인"이라며 "여성장애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건강정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장애인 만성질환 관리 부재 심각 = 국립재활원 2017년 장애인건강관리 사업자료(2018년)에 따르면, 비장애인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장애인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고혈압 당뇨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장애인의 고혈압 발생률은 52.1%로 남성장애인의 41.3%보다 높았다. 당뇨의 경우도 여성장애인은 27.6% 발생률을 보여 남성장애인의 24.4%보다 높았다. 심장질환 발생률도 여성장애인은 17.3%, 남성장애인은 14.4%로 여성이 높았다.

이렇게 여성장애인이 남성장애인보다 만성질환 발생 지표가 나쁜 배경으로는 개인적 사회경제적 복합적 요소가 언급됐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행한 '국내장애인의 만성질환 및 건강행태 조사 연구'보고서(김지영 부연구위원 등. 2019년)에서는 "여성장애인에게 비만군과 복부비만의 유병률이 가장 높게 나타났는데, 특히 복부비만으로 인해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은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여성장애인이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등 건강실천과 관련해, 교육-소득수준과의 연관성이 거론된다.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낮은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만성질환 유병의 위험도가 높고, 주관적 건강수준을 부정적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높았다.

실제 여성장애인의 교육수준은 남성 장애인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장애인 약 57.8%가 초등학교 이하의 교육을 수료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장애인의 경제활동참가률과 고용률 또한 각각 22.6%, 21.0%로 남성장애인의 48.7%, 44.7%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심장뇌혈관 소화기질환 등 만성질환에 영향을 주는 구강검진 경우를 보면, 여성장애인의 검진률은 2017년 기준 수검대상 43만여명 가운데 18.8%로 남성장애인 65만여명 가운데 24.1%보다 낮았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여성장애인의 주장애와 만성질환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를 주치의가 맡아할 수 있도록 정부는 건강주치의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 추진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성보호 인식 개선도 필요 = 우리나라 여성장애인의 산부인과 이용 편의성을 높여 달라는 요구는 오래됐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장애인의 장애특성에 맞는 의료장비의 부재가 심각하고 진료 자체를 제대로 받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 여성장애인이 임신기간 중 건강관리와 분만 준비를 위해 산부인과를 방문하면, 의료진들이 여성장애인을 고위험군 산모로 간주해 진료를 회피하거나 다른 의료기관으로 가라고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2. 유방암 검사를 하는 유방촬영기가 있는데, 서서 촬영해야 한다. 그런데 지체장애인들 경우 서서 촬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는 초음파를 권한다. 유방촬영기는 무료검진이 되지만 초음파는 여성장애인이 자부담해야 한다.

#3. 임신 중에 체중변화 등을 확인해야 하는데 장애유형에 따라 일반체중계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휠체어를 타고 몸무게를 잴 수 있는 의료장비와 자궁검사를 할 때 높낮이가 조절되는 검진도구도 산부인과에서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회원 등이 22일 본지에 알려온 '산부인과를 이용하면서 겪은 여성장애인 들의 불편 사례들'이다.

자궁암 검사나 유방암 검사 때 진료대로 이동이 필요한데 휠체어와 같은 보호장구를 사용하는 중증 여성장애인의 경우 이동을 위한 의료장비가 전무하기 때문에 각종 여성 질환에 대한 건강진단과 관리를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작은 도시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도 이동편의를 위한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의료기관이 많다. 지역의 중증 여성장애인들은 의료적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장애와 함께 심각한 부인성 질환과 성인병 발병률이 높다.

여성장애인을 위한 장애친화적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 확대 요구가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의 노력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4년 전남여성장애인연대 회원들의 활동으로 전라남도가 조례를 만들고 2016년부터 현재까지 거점 장애인산부인과병원이 4곳(목포미즈아이병원, 강진의료원, 순천현대여성아동병원, 여수제일병원)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이 이용하는 공공산후조리원도 2곳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최근 광주지역에서도 2곳의 거점 장애인산부인과병원이 만들어졌다.

문애준 전남여성장애인연대 대표는 "회원들의 활동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여성장애인의 임신출산 등과 관련해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전남·광주지역에 거점병원이 마련됐지만 지방예산만으로 일부 지역에만 설치되는 한계가 있다"며 "전국적으로 여성장애인이 일상 검진과 임신출산 진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장애인 전문 보건의료 국가기관인 국립재활원(서울)은 임신출산 관련해서 분만전 진료서비스까지만 제공하고 있다.

박 교수는 "여성장애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 주치의와 산부인과의 연계 진료가 잘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며 "권역별재활병원에서 재활기능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검진, 만성질환관리, 임신출산 진료가 제공되는 보건의료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에 대한 의료인들의 잘못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청각장애인이 산부인과 진료를 받았는데, 여성장애인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불임수술를 한 사례도 있었다.

문 대표는 "그 청각장애인이 당시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상상해 보라"며 "여성장애인의 모성보호에 대한 의료인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애인 건강권 강화 시급" 연재기사]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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