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군·구별 다학제센터 필수 … "장애인 욕구에 맞는 방문·재활 진료 활성화 필요"

장애인(2019년 기준 261만명 등록)은 자신의 장애가 원인이 돼 생기는 건강상 문제뿐만 아니라 생활 속 건강활동 미실천과 사회적 의료지원 부실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후천적 만성질환들 때문에 힘겨운 생활이 가중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주치의제도가 도입된 지 5년이 지났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도 전국적 시행은 요원하다. 내일신문은 장애인들의 건강권 강화 요구에 따라 그 대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주>


2015년 12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도입된 '장애인건강주치의제도'가 두 차례의 시범사업을 진행중이지만 한발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도입된 취지에 따라 국회와 정부는 제도 안착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장애계와 보건의료전문가들의 요구가 높다.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살림의원 의료진이 뇌출혈로 와상상태의 장애인 가정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사진 살림의원 제공


김동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은 "현재 시범사업은 장애인 개별 욕구에 상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주치의와 사회복지사 재활치료사 운동재활사 등 장애인 건강관리와 관련된 전문가들이 팀으로 접근·지원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건강주치의사업 대상이 중증에 한정된 규정을 삭제해, 모든 장애인들의 장애와 만성질환 등 중증화를 예방하고 질환관리하는 주치의로서 실질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장애인·의사에 부담주는 시범사업 개선해야 = 2015년 장애인 건강주치의제도가 도입됨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2018년 5월 1차 시범사업을 진행했고 올해 6월부터 2차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건강관리 주치의', 지체 뇌병변 시각 중증장애인 대상 '주장애관리 건강 주치의', 지체 뇌병변 시각 중증장애인 대상 '통합관리 건강주치의'에 장애인들이 등록 신청하면 시범사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홍보가 널리 돼 있지 않고, 참여한 의사의 수도 적어 시범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됐다.

장애인등록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261만명이다. 이 가운데 등록된 중증장애인은 98만명(37.6%)이다.

홍승권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시범사업에 2019년 기준 주치의 교육을 이수한 의사가 316명이었으나 실제 활동 중인 주치의는 87명에 그쳤다. 건강관리를 일상적으로 받아야 하는 장애인의 수요에 비해 등록주치의는 턱 없이 적은 셈"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살림의원 의료진이 파킨슨질환을 앓는 장애인의 욕창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살림의원 제공


또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에 따르면, 건강보험 가입 장애인은 주치의시범사업을 이용할 때 수가의 10%를 더 내야 한다. 기초상담을 통해 포괄적인 진료계획을 세울 수 있는데, 상담만 하고 상담비를 부담하라고 하면 장애인들은 '낯선' 진료비 청구에 당황하곤 한다. 의사 입장에서도 방문 진료를 할 경우, 장애인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의료수가가 '일차의료 왕진 시범사업'보다 3만원 이상 적다.

추 원장은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이나 의사들이 부담을 안고 진행하는 것이라면 참여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사업성과의 실효성을 높이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교수는 "진료시간만큼 소요되는 서류처리와 청구작업은 의사에게는 행정부담, 장애인에게는 본인부담금을 높인다"며 "교육, 상담, 방문 진료를 통합해 이용할 수 있는 지불제도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더불어 "의료기관별 등록 장애인 수와 이들의 질병 개선 정도를 평가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건강주치의제도 홍보 널리 진행해야 = 더욱이 1차 ·2차 시범사업은 개별 의사, 소수 간호사의 주치의 활동에 한정된 문제가 있다. 장애인의 만성질환 관리, 일반질환 진료, 주장애 진료 등 복합적인 진료 욕구를 만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종혁 충북대 의대 교수는 "장애인은 장애와 더불어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특히 중증인 경우 주치의가 있는 의료기관까지 가서 진료를 받기는 더 힘들다"며 "방문진료가 활성화돼야 한다. 의사뿐만 아니라 재활치료사 작업치료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도 장애인 요구와 필요에 따라 방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2019년 기준 인구 고령화에 따라 65세 이상 노년층 장애인이 전체의 48.3%로 절반에 이른다. 지체장애인이 48.5%, 청각 22.7%, 뇌병변 11.1%, 시각 10.2% 등이다.

이들 중증장애인들이 의료기관으로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진료시스템은 많은 이동수단과 활동보조인 그리고 이동 중 위험부담을 높이는 것으로 주치의제도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장애인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주치의제도 자체를 널리 홍보해야 한다"며 "나아가 15개 장애유형 속 세분화된 장애유형과 그 경·중증도를 고려한 다양하고 세밀한 시범사업 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하고,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방과 농어산촌지역에서 주치의 비중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인 장애·만성질환 관리 가능한 체계 구축 필요 = 장애인건강주치의사업 대상을 중증장애인으로 한정한 법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법안 통과 직후부터 있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교수는 "건강주치의의 주요 활동이 만성질환의 발생 및 중증화를 예방하고 일상생활 속 만성질환 관리와 타 전문의료기관으로 이송 연계 등을 담당하는 것인데, 이미 중증상태가 돼 전문치료관리가 주로 필요한 장애인을 대상으로만 사업을 진행한다고 법률에서 못 박아 놓았다"며 "장애인의 절대다수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그들의 건강관리는 비장애인에 비해 사회적으로 거의 방치수준이다. 모든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건강주치의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우리나라 장애인 가운데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비율은 2017년 기준 장애인의 만성질환 발생률이 84.3%(202만명)로 비장애인 46.5%보다 37.8%p 높게 나타났다.(내일신문 11월 16일자)

박종혁 충북대 의대 교수는 "시·군·구별로 장애인주치의를 지원하는 다학제지원센터를 두고, 다른 전문·응급의료기관과 연계, 그리고 요양과 복지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최혜영 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은 "장애인들이 요구하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명실상부한 건강주치의제도로 나아가기 위해 제도·법안 개선 작업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한편 홍승권 가톨릭대 의대 교수,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장애 발생 원인 중 비장애인이 사고나 만성질환 등으로 인해 장애인이 되는 비율이 89% 정도로 조사된다"며 "실질적인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전국민주치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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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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