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심층기획 ② … “오바마, 중국과 견제·협력 원했지만 정보기관은 반대”


2013년 초 중국 시진핑 주석이 취임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시진핑이 어떤 지도자인지 알아야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한 지식, 중국의 의도 등에 깜깜이 상태였다. 포린폴리시는 “2000년대만 해도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에 대해 상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활동했다”며 “하지만 중국의 중대 정치적 전환이 이뤄지던 2010년대, 미 정보기관들은 흐릿한 안경을 끼고 중국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미 국가안보기관 전 간부는 “중국의 미 인사관리처(OPM) 해킹, 이로 인한 CIA의 중국 인적자원 네트워크의 붕괴라는 이중악재로, 미국은 중국에서 벌어지는 이벤트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고위 정책결정자들에게 전달되는 고급 기밀보고서의 질과 양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한다.

당시 새로운 중국 정책을 입안하던 백악관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열띤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행정부 관리들의 의견은 갈렸다. 한쪽은 ‘시진핑은 유능한 개혁가’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은 ‘신 마오주의자, 위험한 강경파’라고 맞섰다. 양측의 의견 대립은 매우 선명했다고 오바마 행정부 선임 관리는 말했다.

국가안보기관 전직 관리는 “시진핑에 대해 낭만적 견해는 없었다. 하지만 시진핑이 어떤 지도자인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시진핑 주석의 대대적인 숙청작업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도 내다보지 못한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CIA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전직 선임요원은 “시진핑 주석이 개혁을 지속할 것이라는 기대섞인 생각이 있었다”며 “하지만 CIA 내 절대 다수는 그가 공산당 독재모델을 따를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CIA 전직 중국분석가인 게일 헬트는 “시진핑 초기 부패 일소를 보며 약간의 희망이 있었지만,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보면서 정적을 제거하고 개인숭배 문화를 조성하려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고 했다.

“CIA 자신감 뭉개져”

미국이 중국 시진핑을 파악하는 데 고전한 이유는 정보요원들의 활동이 예전처럼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직 안보기관 간부는 “요원을 현장에 내보내는 데 주저함이나 우려, 불안감이 있었다. OPM 해킹으로 CIA 방어막에 구멍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라며 “중국이 우리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2018년 4차산업시대 사이버 전쟁을 다룬 책 ‘퍼펙트 웨폰’(The Perfect Weapon)을 출간한 데이비드 생어에 따르면 중국에 배치될 예정이었던 CIA 요원 수십명의 일정이 취소됐다. 한 전직 선임 정보분석가는 “CIA는 수년 동안 중국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인적네트워크가 적발되면서 CIA 자신감이 완전 뭉개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2~2014년 중국은 미국의 사이버해킹에 맞서 디지털 방어를 강화하고 있었다. 미 정보기관 전직 분석가는 “중국 지도부는 1~2년 동안 점진적으로 자국의 인터넷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저인망식 디지털 감시와 생체정보 수집, 폐쇄회로(CCTV)의 증가 등이 맞물리면서 미국 정보기관이 수집하는 정보도 줄어들었다.

미국 정보요원과 중국 요원과의 일반적인 교류도 어려워졌다. 2010~2011년 위키리크스가 미국 외교전문을 폭로했다. 거기엔 미국 요원들과 상대적으로 솔직하게 의견을 나누던 일부 중국 요원의 이름이 실려 있었고, 이들의 안위가 위태로워졌다. 예를 들어 외교전문에 이름이 등장한 중국정부 관계자와 국영언론 관계자는 이후 직업적 앞길이 막혔다.

그간 정보기관 간의 교류를 통해 미국은 중국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곤 했다. 미 국무부 현직 관리는 “위키리크스 폭로 이후 중국 요원들은 미국 파트너와의 대화를 더더욱 꺼리게 됐다. 중국측은 미국이 비밀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중국 정보기관이 몸을 사리게 된 건 자체 검열이 강화된 측면도 있었다. 미 국방정보국(DIA) 전직 요원은 “미국이 중국 통신을 도감청하고 있다는 두려움뿐 아니라 중국 보안기관이 자체 감시를 늘리고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중국 스파이들은 미국 데이터를 전방위로 뒤졌다. OPM 해킹과 별개로,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해커들은 2014년 메리어트호텔의 대규모 해킹을 통해 여권과 신용카드 데이터 등 3억8300만명의 개인정보를 훔쳤다. 2014년 미국 최대 보험사 중 한 곳인 앤썸에서는 미국인 7800만명의 개인정보가 새나갔다. 아메리칸항공, 유나이티드항공, 여행예약 업체이자 중국의 여행정보 프로그램 핵심 타깃인 세이버 등의 네트워크도 해킹 당했다.

중국은 미 해군이 운영하는 컴퓨터 시스템에 잠입해 해군장병 10만명 이상이 연계된 민감한 데이터를 빼가기도 했다. 미 국가안전국(NSA) 전직 선임간부는 “중국은 진공청소기처럼 전세계 국가를 상대로 산더미 같은 정보를 빨아들였다”고 말했다.

“중국은 정보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오바마행정부는 중국 사이버해킹에 대해 보다 공세적인 조치를 취했다. 2014년 미국 기업들을 상대로 사이버 스파이 행위를 한 5명의 중국군 해커를 기소했다. 국가지원 해커에 대해 미국이 기소한 첫 사례였다. 그리고 중국정부에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오바마행정부는 중국과 상호협력할 핵심 영역이 있다고 믿었다.

그중 하나는 비자 절차 간소화였다. 2014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이 1년짜리 사업·여행비자를 10년으로, 학생비자를 5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협정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양국간 여행·교육 교류를 크게 늘릴 수 있는 조치였다.

미국 정보기관 일부에서 격하게 반발했다. 미 정보기관 현직 간부는 “미 정부가 모르는 상황에서 미국을 드나들 수 있는 비자확대는 중국 국가안전부(MSS)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백악관에서도 비자확대 문제를 놓고 수많은 관계자 회의가 열렸다. 정보기관 간부는 “오바마 대통령은 비자확대 협약을 희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무역·학술진흥을 위한 수단으로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CIA와 FBI는 중국의 사이버 정보 수집 활동을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바마행정부가 미중 협력이 가능하다고 본 두번째 영역은 사이버공간이었다. 2015년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방문, 새로운 상호협력 방안을 선언했다. 양국은 기업 비밀을 탈취하는 것을 금지하자고 했다. 이와 관련해 양국 고위급 협의기관을 설치하기로 했다. 한쪽이 협약을 위반할 경우 공식항의 창구로 기능하는 곳이었다.

당초 오바마행정부는 개인정보를 목표로 한 사이버해킹까지 금지하자는 내용의 확대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미 정보기관들이 이에 반대했다. 미 국가안보 전 간부는 “정보기관들은 개인적으로 식별가능한 정보의 탈취 금지는 협상테이블에 아예 올리면 안된다는 요지부동의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전직 국방정보원 부국장 더글러스 와이즈는 “중국이 협약을 지키지 않아도 페널티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사실 정보기관의 반대는 미국도 해외를 상대로 광범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직 선임 정보분석가는 “우리가 중국의 OPM 해킹에 대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 역시 특정 국가를 상대로 개인정보를 얻기 위해 사이버해킹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해킹을 활용할 수 없는 공식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미, 중 정보기관-민간기업 관계 주시

당시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정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위해서는 사이버해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2010년대 중반 미국 정보요원들은 비밀리에 중국 국가안전부가 통제하는 온라인 네트워크에 잠입했다. 3명의 전직 요원에 따르면 이곳은 미국 정부기관과 기업으로부터 해킹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곳이었다.

정보기관 전직 간부는 “요원들은 이곳에 보관된 데이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을 지켜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보는 파편적이었기에, 미국은 중국이 이 데이터를 어디에서 얻었는지 알 수 없었다. OPM과 매리어트 호텔 해킹과 같은 대규모 사건이 발각되면서 비로소 정보의 획득처를 알게 됐다.

미국 사이버 해커들은 중국의 데이터 저장과 처리 능력에 신경을 집중했다. 중국의 정보기관이나 군부와 연계된 시설들에 들어가는 데이터센터와 기술, 하드웨어가 주 관심사였다. 전직 정보요원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고 중국 내 데이터센터를 가동하고 있다면, 우리의 장기적 목표물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 정보기관의 활동 규모는 광범위했다. NSA 위협대응센터 부국장 스티브 라이언은 "중국이 정보영역에 있는 모든 이들보다 앞선 점은 고갈되지 않은 인적자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거머쥘 수 없을 만큼 많은 데이터를 거머쥐고 있다"고 말했다.

2016년 미 대선 과정에 러시아가 개입했다고 의심하면서, 오바마 행정부 국가안보기관들은 미국의 취약점을 집중 논의했다. NSC 전직 간부는 "더 큰 걱정거리는 중국이 수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무기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중국이 데이터를 무기화한다면 미국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중국은 러시아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 시기를 즈음해 중국 정보기관과 민간기업들의 관계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미국 국가안보 선임 간부들은 2016년 요원들에게 중국 민간기업들과 MSS 사이에 무엇을 공유하는지 파악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국가안보기구 전직 간부는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이동통신사 ZTE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또 다른 이동통신사 화웨이가 이란 등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흔적을 발견하게 됐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7년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중국 정보기관과 민간기업들의 연계 정황이 구체성을 띠자 미국 정보기관과 행정부 관리들은 중국의 거대 기술기업들을 본격 겨냥했다.

["포린폴리시 심층기획"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