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 토론·총회 거쳐

전체 17개동 24개 사업 추진

올해 전체 주민세 절반 환원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며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지역주민 중심 지방자치로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인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은 법안에서 빠졌다. 여전히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이미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동장을 주민추천제로 뽑고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자체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지역별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발굴,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9월 25일 하안4동에서 열린 '상자텃밭 개장식'에 참여한 박승원 광명시장이 주민들과 상자텃밭을 일구고 있다. 사진 광명시 제공


광이마을 역사이야기 만들기, 걷고 싶은 추억의 너부대로 조성, 우리동네 의사소통 게시판, 만수무강 '짜장데이', 행복마을 텃밭가꾸기…

경기도 광명시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주민세 환원 마을사업'이 주민자치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주민들이 마을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스스로 찾아내 실행하면서 마을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계기가 되고 있다.

'주민세 환원 마을사업'은 말 그대로 주민이 낸 주민세를 주민들에게 돌려주고, 주민들이 직접 마을 의제를 발굴해 해결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공모분야는 생활불편 해소사업, 마을발전 및 활성화사업(마을특화사업), 주민자치사업, 환경사업이다. 주민들이 사업 제안서에 5인 이상의 연명부를 작성해 해당 동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하면 각 동 주민자치회가 제안서를 토대로 3회 이상의 토론회를 거쳐 최종 사업을 선정한다. 광명시는 지난해 전체 주민세 15억원 가운데 약 3억원을 17개 동 주민자치회 등에서 제안한 24개 마을사업에 투자했다.

주민들이 발굴한 주민세 환원사업은 마을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하안4동은 '행복마을 텃밭 만들기'에 나섰고 광명3동은 광삼로 일원 골목길에 벽화 그리기와 금연거리 만들기를 추진했다.

철산4동은 오래된 도로 곳곳에 시(詩) 안내판과 쉼터 의자, 포토존 등을 만들어 설치하고 주민들에게 천연벌레기피제, 식물영양제를 만들어 나눠줬다. 또 수백개의 양파를 직접 다듬어 만든 짜장과 과일, 떡 등을 작은 꾸러미에 담아 75세 이상 어르신(600여명) 가정에 전달했다. 이종화 철산4동장은 "주민이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한 사업으로, 쉼터 의자와 간판 등도 모두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며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주민들이 잠시나마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명시는 올해 사업비를 전체 주민세의 절반인 7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앞으로 성과를 지켜보며 계속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도도현 광명시 자치분권과장은 "주민세 환원사업은 주민이 마을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찾아내 실행하는 주민주도 자치분권 실현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회'로 전면 전환 = 이처럼 주민세 환원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주민자치회'의 힘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광명시는 지난해를 '자치분권 원년'으로 선포하고 주민자치회 전면 전환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2019년 11월 광명5동과 광명7동을 시작으로 지난해 10월 전체 18개 동 가운데 재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광명1동을 제외한 모든 동에 주민자치회가 구성됐다.

주민자치회는 주민 자치활동을 지원하는 대표조직으로,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갖고 해당지역의 현안과 의제를 주민총회 등을 거쳐 결정하고 실행하는 기구다.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에 대한 협의, 주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련되지 않은 주민자치센터의 운영 등 각종 업무 수탁, 마을축제 개최, 마을신문·소식지 발간 등을 한다. 기존의 동 자치조직이었던 '주민자치위원회'는 행정복지센터가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와 관련한 사항 등을 심의하는 역할에 그친 점을 고려하면 한 단계 발전된 주민자치기구다.

광명에서 가장 먼저 주민자치회가 출범한 광명5동과 광명7동은 지난해 첫 주민총회를 개최해 주목받았다. 이들 동 주민자치회는 분과별 활동과 주민의견 수렴을 통해 마을의제를 선정하고 2021년 주민자치회 운영계획, 주민참여예산사업, 주민세 환원 마을사업을 투표를 통해 결정했다. 광명5동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일주일 간 온라인 투표 및 행정복지센터 앞 상설투표소를 운영해 총 374명(온라인 159명, 상설투표소 215명)이, 광명7동은 사전투표와 총회 현장투표를 동시에 진행한 결과 240명(총회장 182명, 사전투표 58명)이 각각 참여해 사업계획 등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주민들이 마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치역량을 쌓기까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시는 주민들의 자치활동을 지원하고 주민자치회의 성공적 정착을 돕기 위해 마을자치센터와 행복마을관리소를 운영하고 있다. 김민재 마을자치센터장은 "주민자치회 시행 초기이지만 주민들이 마을일에 대해 토론하면서 즐거워하고 때로는 진지한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갖게 됐다"며 "주민자치회와 주민세환원사업 등을 통해 시 공무원과 주민, 중간조직이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명자치대학·아카데미 통해 자치역량 키워 = 특히 '국내 첫 평생교육도시'인 광명시는 평생교육을 통해 자치역량을 제고하고 있다. 주민자치회 위원이 되려면 마을자치센터가 운영하는 주민자치아카데미에 참여해 최소 6시간 이상 교육을 이수하도록 조례로 정했다.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운영하는 '광명자치대학'은 마을리더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마을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고 소통하는 방법 등을 배우는 현장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통합적 자치실천력을 키워준다. 자치분권학과 마을공동체학과 사회적경제학과 도시재생학과 기후에너지학과 반려동물학과(올해 신설) 6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지난달 23일 광명자치대학 제1기 졸업식이 열렸고 오는 3월 중에 제2기 교육생을 모집한다. 김민재 센터장은 "광명자치대학은 시민들을 자치분권의 주체로 성장시키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승원 광명시장은 "코로나 위기 극복과 새 시대로의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와 협치, 학습과 실천이 매우 중요하다"며 "시민주권시대에 걸맞는 자치역량과 민주시민의식을 키워나가는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주민자치회와 주민세 환원사업, 자치대학 등을 활성화해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연재기사]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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