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관리부터 노인·아이 돌봄

사회적 협동조합에 위탁 예정

전국 최초 주민자치회 법인화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며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지역주민 중심 지방자치로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인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은 법안에서 빠졌다. 여전히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이미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동장을 주민추천제로 뽑고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자체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지역별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발굴,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해 10월 27일 시흥시 매화동 행정복지센터 다목적실에서 열린 '매화동 주민자치 클러스터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 모습. 사진 매화동 제공


경기도 시흥시 매화동은 전국 최초로 '주민자치회'를 법인화해 주목받고 있다. 주민자치회는 마을의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주민 대표기구인데, 이를 주민들에게 이해시키고 동참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다양한 마을사업을 도맡아 할 실행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관리 및 주민자치활동에 사회적 협동조합을 도입한 첫 사례다.

◆행안부·시흥시·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협업 = 시흥시 매화동은 300년 전통의 호조벌과 주택단지가 혼재한 도농 복합지역이다. 기존 주택단지는 건축물 노후화가 심하고 인구 고령화가 뚜렷해 도시재생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런 매화동에 최근 매화일반산업단지가 들어서면서 마을환경과 주민 생활상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요구도 다양해졌다. 지난 2019년 7월 출범한 주민자치회 위원들은 이러한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행력이 있는 주민자치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립·다가구가 대부분인 매화동은 마을공동공간에 대한 주거·환경관리가 어려워 주민들이 '동네관리소'(마을기업)을 운영 중이었다. 주민들 스스로 마을을 관리하자는 취지로 간단한 집수리와 공구대여 등 공공서비스를 담당해왔다. 시흥시와 매화동 주민들은 행정안전부의 컨설팅을 받아 주민자치회와 동네관리소를 연계해 공공서비스를 실행할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공공서비스 실행체계 구축을 위한 법인 창립계획을 수립, 지난해 3월 행정안전부 공모에 선정돼 사업비 3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두 달 뒤엔 고용노동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지역연계사업에도 선정됐다. 이후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시흥시(주민자치과)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행안부 컨설턴트가 참여하는 '마을실행법인준비 민관TF'를 꾸렸다. 지난해 9월 주민총회를 열어 주민자치 실행법인 동의안을 의결하고 실행법인과 주민자치회의 연계(관계설정)를 위한 운영세칙 개정, '매화동 주민자치 클러스터 사회적협동조합(사회적협동조합)' 발기인 대회를 거쳐 10월 27일 창립총회를 가졌다.

최윤정 시흥시 주민자치과장은 "매화동은 기존에 희망센터, 동네관리소 운영 등 주민자치활동 기반이 있었고 주민자치회가 출범하면서 동네관리소를 확대해 마을 공공사업을 주민 스스로 할 수 있지 않겠냐는 취지로 실행법인을 만들게 됐다"며 "행안부가 지난해 전국 7곳에 실행법인을 제안했지만 실제 창립된 곳은 매화동뿐"이라고 설명했다.

행안부는 지난해 12월 개최한 전국주민자치박람회에서 매화동 주민자치회에 최우수상(지역활성화)을 수여했다.

◆시와 위탁업무 협의, 주민참여 등 과제 = 실행법인의 출범으로 매화동 주민자치회를 비롯한 주민자치조직이 더욱 강화되고 주민 스스로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의 대소사를 관리·운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지역공동체 안전망 구축 및 공공 일자리 창출, 공동체 활성화 등 풀뿌리 주민자치의 온전한 실현이 가시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매화동 사회적협동조합이 주민자치회 실행법인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일단 시흥시에서 어떤 사업을, 어느 범위까지 위탁받아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매화동 주민자치회는 우선 기존의 동네관리소가 해온 마을관리업무를 좀 더 확대해 사회적협동조합이 담당할 예정이다. 여기에 초등학생 돌봄 및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육사업, 어르신 케어사업, 매화일반산업단지와 연계해 마을주민 맞춤형 일자리 창출 등 크게 4가지 사업을 사회적협동조합이 담당할 공공서비스 분야로 보고 있다.

윤봉한 매화동 주민자치회장은 "내 집 앞 관리는 내가 한다는 심정으로 마을관리는 주민이 직접 하면 더 깨끗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전체 동 주민 1만3000명 가운데 65세 이상 어르신이 2000여명이고 맞벌이부부가 많다는 점 등 지역특성을 고려해 선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위수탁 받을 사무를 시와 협의하는 것부터 위탁사무를 어떻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집행해 나갈 것인지가 과제"라고 덧붙였다.

마을관리 업무를 시에서 위탁받아도 주민들이 실제 사업에 주체로 참여하느냐가 가장 큰 과제다. 윤 회장은 "조합원이 안되면 공공일자리사업에 참여할 수 없고 자신에게 손해가 될 수 있지만 조합원으로 참여하면 직접 마을 일을 수행하면서 마을의 변화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준비단계여서 선뜻 나서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상운영이 되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윤정 과장은 "아직 시범 단계이지만 시 각 부서와 위탁업무 협의를 할 때 실행법인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임병택 시흥시장은 "매화동 주민자치 클러스터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은 코로나19로 공동체 활동이 어려운 가운데 이뤄낸 뜻깊은 성과"라며 "앞으로도 주민자치 실현과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연재기사]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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