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가 만드는 새로운 도시

정부부처 공무원이 주민인 곳

세종시가 국가균형발전의 상징을 넘어 주민자치의 새로운 모델로 나아가고 있다.

세종시 전동면 주민자치회가 지난해 7월 주민총회 투표 결과를 개표하고 있다. 사진 세종시 제공


세종시는 '특별자치시'라는 명칭만큼 특별한 지자체다. 행정도시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형태도 광역과 기초가 결합된 단층제 지자체다.

인구가 많아 인근에 추가로 건설되는 여느 신도시가 아닌 전국에서 몰려든 주민들이 허허벌판에 새롭게 만들어가는 도시다. 중앙부처 공무원이나 연구원 등 전문가가 주민인 곳이기도 하다.

세종시 주민자치회는 이 같은 배경을 깔고 시작됐다. 개척자로 나선 주민들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해결했고 그와 같은 흐름이 주민자치회로 모아졌다. 적극적인 주민의 참여를 동력으로 복합커뮤니티센터를 거점으로 새로운 주민자치를 진행하고 있다.

민선3기 세종시는 '시민주권 특별자치시'로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웠다. 주민자치의 모범을 세우겠다는 각오다.

◆주민들의 공간 '복합커뮤니티센터' = 세종시의 주민자치 흐름은 주민자치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시작됐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도시는 아파트만 덩그러니 있었다. 말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엔 온갖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라는 이유로 함께 모여 자신의 새 터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물이 새는 아파트, 마트 하나 변변치 않은 정주여건 등등. 행정중심복합건설청과 세종시는 초기부터 주민들의 쏟아지는 요구에 직면해야 했다.

더구나 많은 수의 주민들은 등 떠밀려 이주해온 중앙부처 공무원들이었다. 지자체 공무원보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수두룩했다. 세종시는 버스노선 하나 정하는데도 주민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원도심에도 적용됐다. 세종시는 민선2기 시절 조치원읍을 동서로 잇는 도로 건설을 추진하며 4개의 대안을 내놓고 주민들의 결정을 기다렸다. 주민들에게 믿고 맡기니 놀랍게도 합의안이 나왔다.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주민들에게 통보하는 게 아니라 정책논의 초기부터 주민들과 함께 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전국 그 어느 곳보다 강력한 주민자치의 흐름은 최근 주민자치회 구성으로 이어졌다. 2019년 시작된 주민자치회 전환은 올해 6개소를 마지막으로 20개 읍면동에 모두 구성됐다. 분과위원회도 모두 81개가 만들어졌고 위원도 모두 606명이 참여하고 있다. 규모가 작지만 광역지자체로는 처음이다.

세종시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세종시는 광역과 기초가 결합된 단층제 지자체로 주민자치회 역시 시가 직접 지원·관리한다. 광역지자체가 직접 지원하는 만큼 인력이나 재정 모두 튼튼하다.

세종시는 전국 최초로 2018년 자치분권특별회계를 만들었다. 지난해 159억원이었던 예산은 올해 174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주민자치회가 주도해 추진하는 마을사업도 100여개 포함됐다.

세종시 주민자치회의 또 다른 특징은 주민들의 공간인 복합커뮤니티센터의 존재다. 정주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담아 만든 게 동별 복합커뮤니티센터다.

센터엔 행정과 민원사무 등을 맡는 행정복지센터는 물론 도서관 수영장 다목적체육관 강당 카페 등이 입주해 있다. 규모나 시설면에서 타 지자체의 동 주민센터와는 비교불가다. 마을 공공시설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다. 행복도시 안 10개 동에 건설됐고 최근 읍면으로 확대하고 있다.

세종시 관계자는 "내년 복합커뮤니티센터를 주민자치회에서 100% 운영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센터가 주민자치회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젊고 참여 높은 도시 = 세종시는 지난 2012년 행정도시로 출범했다. 충남 연기군에 충남 공주와 충북 청원 일부 지역이 결합해 만들어졌다. 신도심인 행복도시에 10개 동이 있고 조치원읍 등 원도심에 10개 읍면이 있다.

일단 인구가 빠르게 늘고 있다. 2012년 10만이었던 인구는 2021년 4월 36만명을 넘겼다. 외지인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세종시는 전국 광역지자체 가운데 고령인구가 9.3%로 가장 낮고 합계출산율은 6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대표적인 젊은 도시이기도 하다. 적극적인 참여 분위기가 가능한 이유다. 세종시 주민들을 누군가는 "주민들이 너무 극성"이라 하고 누군가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사람들이 이랬을 것 같다"고도 한다.

2018년 민선3기가 출범하면서 이춘희 세종시장은 '시민주권 특별자치시'를 선언하며 △읍면동장 공모제 △주민자치회 △리 단위 마을회 △자치분권특별회계 등의 신설을 약속했다. 주민공동체에 재정조정권을 부여하고 규칙과 조례 제안권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구 1000만의 서울시보다 인구 30만의 세종시가 훨씬 주민자치의 모범을 세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자신감은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자치분권특별회계가 만들어졌고 주민자치회도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읍면동장 공모제 등도 실시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에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세종시 관계자는 "아직 동 단위 이익과 아파트 단지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시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읍면과 동지역 주민자치회의 조화도 여전히 과제다. 타 지자체에 비해 많은 청소년층의 주민자치회 참여를 높이는 방안도 교육청과 모색하고 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시민주권대학 운영을 통해 주민자치회의 현장활동을 촉진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찾아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며 "민간위탁과 관리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주민자치회 자립화 모델을 마련하는 등 주민자치회가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연재기사]

윤여운 기자 yuyo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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