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복합위기 온다면서 법인세·보유세·주식양도소득세 인하 추진

연말쯤이면 10%대 시장금리 가능성 "취약계층·중산층 보호망 우선"

"경제전쟁이라 할 만큼 대내외 상황이 급박하다. 미국이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 금융시장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환율과 주식 시장의 변동성 또한 더 커질 수 있다. 당분간 고물가로 인해 가계 생계비와 기업의 원가 부담이 줄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30일 한덕수 부총리의 국정현안조정회의 모두 발언이다. 복합경제위기가 닥칠 것에 대비해 정부부처가 선제대응하자는 취지다. '전쟁'이란 표현까지 쓰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비상경제장관회의│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차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하지만 '복합위기·경제전쟁'이란 정부 진단과 비교하면 새 정부 경제정책은 '천하태평'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표를 얻기 위해 남발한 부자감세 공약 실현에 국정과제 중심이 쏠려 있다.

복합경제위기가 현실화되면 취약계층에겐 직격탄이 된다. 코로나19로 유동성이 넘쳐나던 시기에 '영끌'로 주식·코인·부동산에 투자했던 청년층이나 중산층 역시 파산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이들의 위기는 한국경제의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복합위기에 선제대응해야 할 정부정책이 '부자감세'에 발이 묶인 형국이다.


◆감세 또 감세, 어디까지 = 1일 정부 경제정책방향과 인수위 국정과제에 따르면 친기업·친시장을 표방한 윤석열정부의 정책 핵심기조는 감세다.

우선 법인세 최고세율을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25%→22%)으로 낮춘다(내일신문 6월24일자 1·10면 부자감세 기사 참조).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보유세와 상속·증여세의 납세 부담은 줄인다. 주식 양도소득세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유예한다. 세 부담을 낮추면 시장과 민간 중심으로 경제가 활력을 찾을 것이란 게 정부 설명이다.

정부는 1가구 1주택자들의 보유세 부담도 낮출 예정이다. 종부세의 경우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조치를 1년간 한시적으로 중단한 데 이어 1주택자에 대해서는 올해에 한해 공시가격 대신 2021년 수준의 공시가격을 적용하고 현재 100%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대폭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재산세도 2020년 수준이나 그 이하로 낮춘다.


이에 따라 주택의 세 부담이 2020년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아울러 재산세와 종부세 통합을 국정과제로 추진한다. 아파트는 2030년까지, 단독주택은 2035년까지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상향 조정하는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상속세는 인적 공제를 확대하고, 가업상속공제 요건은 완화될 전망이다. 현재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은 인적 공제 등을 통해 통상 재산 10억원까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다. 중소·중견기업이 가업을 상속할 때는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 혜택을 받는다. 증여세의 경우 공제 한도가 자녀 1인당 10년간 5000만원인데, 1억원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감세 수혜자는 누구 = 문제는 누가 감세혜택을 받느냐다. 우선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들이다.

케이프투자증권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세전이익 기준, 최고세율 인하에 따른 법인세 감면액이 6조원을 넘고, 감면액 중 3분의 2 가량은 10대 재벌 계열사에게 돌아간다. 삼성전자 법인세가 1조5916억원 감소하는 등 119개 대기업이 6조1590억원 감세 효과를 본다.

부동산 보유세 완화 역시 고가 부동산을 보유한 부유층이 수혜자다. 신한은행 WM컨설팅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정부안을 적용하면 시가 10억원 미만 주택 보유자의 올해 보유세는 7만원 가량 줄고, 시가 50억원대 고가 아파트는 1700만원 넘게 준다'고 추산했다.

주식양도세 부과 대상을 100억원 이상 초고액 보유자로 축소할 경우에도 세수가 크게 감소하고, 부과 대상도 극히 일부에 그친다는 분석이다. 현재 주식양도세는 종목당 10억원 또는 코스피 1% 이상(코스닥 2%·코넥스 4%)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에게 부과한다.

김용원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최근 4년간 양도차익 100억원 이하에 해당하는 대상의 양도소득세를 제외할 경우 상장주식 양도소득세의 50.7%인 약 2조5000억원의 세수가 감소할 수 있다"면서 "2020년 현재 상장주식 양도세 신고 건수는 2만7163건이고, 같은 해 개인투자자 수가 913만명에 이른 것을 고려했을 때 개인투자자 중 양도세 과세대상이 되는 비율은 0.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0.3%의 고소득 투자자를 위한 감세정책이 된다는 얘기다. 상속·증여세 완화 역시 고소득자일수록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구조다.

◆복합위기 대응정책으로 전환해야 =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이런 부자감세 정책이 현재 복합경제위기국면에 어울리는 정책이 아니란 점이다. 복합위기에 역행, 오히려 위기를 더 키울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복합위기가 현실화하면 가장 취약한 계층이 저소득자와 빚 많은 중산층이다. 복합위기는 높은 금리와 물가, 낮은 성장률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복합위기에 노출될 취약계층의 파국을 막기 위한 선제대응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말로는 복합경제위기를 우려하면서도 정책은 여기에 역행하고 있어 걱정"이라면서 "고물가·고금리 시대에 사전대응해 취약한 서민·중산층을 보호할 정책개발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는 최근 논평에서 "새 정부가 저성장 극복과 성장복지 선순환을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도 내용은 과거 보수정부가 추진했던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의 연장선에 있어 우려된다"며 "그동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는 관행적 규제완화 정책이 우리가 처한 복합적인 사회경제 위기를 해결하는데 유의미한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책기조 전환을 촉구했다.

["서민·중산층 힘들어지는데 웬 부자감세" 연재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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