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 법인세 인하 강행 … 박근혜정부서 근로소득세·담뱃세 인상

전문가들 "대기업 투자 여부는 시장논리, 세금 줄인다고 투자 늘지 않아"

"법인세를 깎아주면 기업이 여윳돈으로 투자를 할 것으로 보는 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기업은 미래 전망과 시장논리에 따라 투자를 결정할 뿐이다. 감세로 기업의 성장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은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들이 제도권에 유입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기조에 대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의 제언이다.

한밤중의 기획재정부 간부회의│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일 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재부 주요 간부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이 회의에서 추 부총리와 참석자들은 경제 상황 점검과 민생안정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고 기재부는 밝혔다. 사진 기획재정부 제공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윤석열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5%에서 22%까지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명분은 경제활력 제고다. 법인세를 인하해 우리나라 대기업의 세계경쟁력을 높이고 대규모 투자를 유인,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의 오판'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법인세를 깎아준다고 대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과거정부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오히려 부자와 재벌감세는 몇 년 뒤 세수 충원을 위한 서민 증세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이 '부자감세는 곧 서민증세'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MB정부와 판박이 정책 = 법인세 인하 등 부자감세 정책기조는 14년 전 이명박정부 당시와 꼭닮았다. 이명박정부는 법인세 최고구간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면서 '법인세율이 1%p 내려가면 국내 투자가 2.8% 증가하고 고용은 4만명 늘어난다'고 했다.

하지만 법인세 인하 이후 오히려 대기업 투자는 감소했고 기업 사내유보금만 쌓였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MB정부 감세정책에 따른 세수효과 및 귀착효과'보고서를 보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기업들이 절감한 법인세는 총 26조7000억원에 달한다.

◆시장 불확실성 해소가 투자핵심 = 하지만 정부 기대와 달리 대기업의 투자확대는 없었다. 기업의 설비투자, 건설투자 등 투자 규모를 보여주는 총고정자본형성(민간부문) 통계를 보면 투자 규모는 2009년~2012년 4년 간 23조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직전 4년(2005년~2008년)의 투자 증가 규모인 33조5000억원보다 오히려 10조원 이상 감소한 수치다.

고용 효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고용률은 2009년(58.6%) 2010년(58.7%) 2011년(59.1%) 내내 제자리 걸음을 하다가 2012년(59.4%) 약간 올랐지만 여전히 2007년(59.8%), 2008년(59.5%) 보다 낮았다.

반면 기업 사내유보금(이익잉여금)의 전년 대비 증가액은 2009년 72조4000억원에서 2010년 94조4000억원, 2011년 165조3000억원으로 3년 연속 큰 폭으로 늘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금 감면액이 투자나 고용으로 이어지는 대신 기업 곳간에 차곡차곡 쌓인 셈이다.


◆세수부족이 부른 담뱃세 폭등 = 당시 부자감세의 가장 큰 '효과'는 세수부족에서 확실히 나타났다. 이명박정부 4년 차인 2012년에는 2조8000억원에 '구멍'이 났다 .2013년엔 -8.5조원, 2014년에는 -10조90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

결국 박근혜정부 초기부터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때 등장한 해법이 근로소득세 증세와 담뱃세와 주민세 인상이었다. 근로소득세는 국민적인 조세저항을 불러, 당초 정부가 예정한 만큼 올리지 못했다. 결국 박근혜정부는 '국민건강'을 명분으로 담뱃세를 한갑당 2000원씩 올렸다. 당시 담배가격이 한갑에 2500원이었음을 고려하면 '폭등' 수준이었다. 담뱃세로만 인상 첫해 5조4000억원의 세금을 더 걷었다. 전국민이 부담하는 주민세 규모 역시 4년 만에 4.5배가 늘었다.

결국 법인세 인하 등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줄인 세금을, 전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고스란히 다시 걷어간 셈이다.

◆부자감세 효과 없었다 = 실제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던 박원석 의원(정의당)은 국세청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MB정부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이 25%에서 22%로 3%p 줄어든 이후 법인세 실효세율은 3.58%p 감소한 반면 근로소득세 실효세율은 0.46%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부자감세가 경제활성화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만 확인된 것이 아니다.

영국 런던정경대 데이비드 호프 박사 등 연구진이 2020년에 한국을 제외한 미국, 영국, 일본 등 OECD 회원국 중 18개국이 1965∼2015년 사이 실시한 30번의 주요 부자 감세 정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부자 감세 정책은 소득 기준 상위 1%의 세전 소득점유율을 감세 후 5년간 평균 0.8%p 높였다. 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나 실업률에 미친 영향은 통계적으로 0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부자감세 기조 바뀌나 = 부자감세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정부도 뒤늦게 근로소득세 개편방안을 함께 검토 중이다. 물가는 오르는데 과세표준과 세율을 그대로 둬 월급쟁이들의 유리지갑만 비우고 있다는 비판을 수용, 보완조치를 살펴보는 것이다.

실제 물가는 오르는데 소득세 과표구간과 세율은 그대로 유지되다 보니 급여 생활자들은 실질적으로 같은 급여를 받아도 세금을 점점 더 내는 구조다.

현행 소득세법은 8단계 과세표준 구간을 두고 6∼45%의 소득세율을 적용한다. △1200만원 이하 6% △4600만원 이하 15% △8800만원 이하 24% △1억5000만원 이하 35% △3억원 이하 38% △5억원 이하 40% △10억원 이하 42% △10억원 초과 45%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거둬들인 소득세수를 보면 주로 급여생활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이런 증세의 규모는 예상보다 크다.

소득세 규모는 2008년 36조4000억원에서 지난해 114조100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44%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제 규모 증가보다 소득세를 과도하게 더 거뒀다는 문제 제기가 이뤄지는 배경이다.

정부는 이런 지적에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현재 37%나 되는 면세자를 더 늘리는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과표를 전반적으로 상향 조정하되 소득세 과세 하한선은 그대로 두거나 되레 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소득세 개편 방안을 마무리하고 소득세와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 윤석열정부의 세법 개정 청사진을 발표할 계획이다. 개정 세법은 내년부터 적용된다.

["서민·중산층 힘들어지는데 웬 부자감세" 연재기사]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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