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식품부터 성인용기저귀·맞춤가구까지 다양

발빠른 주력제품 전환으로 초고령화시장에 진입

저출산·고령화는 한국사회가 장기적으로 해결해야할 가장 큰 숙제다. 산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모든 업종에서 인력난이 심각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중소기업 건설현장 농수산업 등이 멈출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은 인구구조 변화로 바뀐 시장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내일신문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산업계 어려움을 살펴보고 업종 대표 기업들의 대응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대학생 두자녀를 둔 주부 김진순(경기 용인)씨는 일주일 한번씩 분유회사가 운영하는 쇼핑몰에 들어가 제품을 구매한다. 자녀 영유아 시절에는 아이들 식품 구매를 위해 분유회사 제품을 이용했지만 지금은 부모님 노인식을 구매하기 위해서다. 분유를 만들던 유업체들이 분유를 기반으로 한 노인식을 개발해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소비재산업구조 틀이 변화하고 있다. 분유를 만들던 회사들이 노인식 사업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고, 기저귀를 생산하던 업체들이 노인용 패드 생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건강한 고령층은 경제적 여유도 가지고 있고 적극적인 소비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런 50~70대 고령층를 오팔(OPAL: Old People with Active Life)세대라고도 부른다. 업체들은 오팔세대를 겨냥한 각종 제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심큰에서 유통하고 있는 시니어 전용 침대 브랜드 '센티다' 제품. 사진 심큰 제공


1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의료기기 식품 요양 주거 등을 아우르는 고령친화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2012년 27조3000억원 규모였던 시장은 지난해 72조8000억원으로 166% 늘었다. 관련 식품 시장 규모도 18조6000억원으로 195% 팽창했다.

◆변화하는 식품업계 = 인구 고령화로 인해 식품업계도 사업전환에 잰걸음이다. 특히 유업계는 분유에서 노인식 전문회사로 업종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출산률은 하락하고 고령층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국내 분유 소매시장 규모는 2017년 4291억원에서 지난해 3180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올해는 이보다 더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출생아 수는 2011년 47만명에서 지난해 26만명으로 줄었다.

분유업계 1위인 남양유업은 2011년 분유·이유식 매출이 3026억원이었지만 지난해 1772억원으로 10년간 41.4%가 감소했다. 전체 매출구성비에서도 분유·이유식은 25.2%에서 18.5%로 6.7%p 줄었다. 남양유업은 성인·노인식 제품 개발과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매일유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10년전 3000억원대 육박하던 분유·이유식 매출은 1000억원대로 쪼그라 들었다. 하지만 매일유업은 셀렉스라는 성인식을 개발해 매출을 메우고 있다. 셀렉스는 2018년 출시 후 꾸준히 성장해 연간 1000억원대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일동후디스가 선보인 하이뮨. 가수 장민호가 광고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 일동후디스 제공

일동후디스는 분유업계에서 만년 3위 업체였다. 하지만 고령층을 겨냥한 단백질 식품 '하이뮨'을 개발해 큰 인기를 모으며 단백질보충제 1위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단백질 보충제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는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 제품은 전년동기 대비 330% 성장했다. 액상형 제품인 하이뮨 음료는 지난해 6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1600만개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약 2.5초에 1개 꼴로 팔린 셈이다.

하이뮨은 산양유단백을 함유한 건강기능식품이다.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 비율을 6:4로 맞췄다. 필수 아미노산 류신(leucine)과 피부·연골 조직에 중요한 콜라겐도 담았다.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은 하이뮨 성공에 힘입어 "일동후디스는 더 이상 분유회사가 아니다"며 "종합건강식품회사로 전환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케어푸드 신성장동력으로 = 일동후디스는 하이뮨 성공에 힘입어 본격적인 케어푸드 사업에도 적극 진출한다. 케어푸드는 건강상 이유로 맞춤형 식품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차세대 먹거리다. 주로 식품 섭취와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을 목표로 한다.

일동후디스는 케어푸드 브랜드 '케어메이트'를 선보였다. 일반인과 일반 환자를 위한 '하이뮨 케어메이트 균형영양식'과 당뇨환자용 '하이뮨 케어메이트 균형당뇨식'을 출시했다.

회사 측에 따르면 균형영양식은 영양분을 고루 섭취하고 원활한 배변 활동을 돕도록 설계했다. 균형당뇨식은 당뇨병 및 혈당 조절이 필요하거나, 엄격한 당 섭취 제한이 필요한 소비자를 위한 균형 영양식이다.

현재 케어푸드시장은 CJ프레시웨이 풀무원 현대그린푸드가 3강을 형성하고 있다.

CJ프레시웨이는 업계 최초로 케어푸드 시장에 진출했다. 2015년 선보인 케어푸드 전문 헬씨누리를 통해 고령친화식품을 선보이고 있다. 고령층이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영양 소화 및 흡수촉진 요소를 고려했다.

풀무원도 고령층 전문브랜드 '풀스케어'를 내놓고 케어푸드시장에 뛰어들었다. 고령자의 저작기능 소화능력 영향균형을 고려한 음식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궁중섭산적' '언양식 불고기'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로부터 고령친화 우수식품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대그린푸드는 2020년 케어푸드 브랜드 '그리팅'과 온라인몰 '그리팅몰'을 선보였다.

세계 장수촌 식사법을 연구한 '장수마을식단', 지중해 식사법을 반영한 '칼로리 식단', 개인 건강관리 목적에 따라 선택 가능한 '챌린지 식단' 등을 선보이며 맞춤형 식단을 판매하고 있다. 정기구독형 식단 신제품까지 선보이고 있다. 오프라인 플래그십 매장을 여는 등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워홈은 2018년 선보인 '케어플러스'를 전국 실버타운과 요양 복지시설을 비롯해 병원 등에 유통하고 있다. 올해에는 경쟁력 확보를 위해 디지털 치료제 개발 기업인 로완, KB손해보험과 '디지털 케어푸드'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영양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별 건강상태 식습관을 고려한 맞춤 식단을 설계할 계획이다.

대상그룹 주요 계열사인 대상라이프사이언스는 2002년 출시한 국내 최초 건강 전문브랜드인 대상웰라이프를 통해 환자용 균형영양식 '뉴케어'를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 뉴케어는 수술환자식으로 개발됐지만 쉬운 섭취 방법과 한끼 영양소를 포함해 고령자를 위한 일반식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웰빙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케어푸드 소비층이 두터워지고 있다"며 "앞으로 케어 푸드 시장은 더욱 커지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자를 위한 실내 이동식 기능성 의자 브랜드 젠소. 사진 심큰 제공

◆시니어 위생용품 시장도 열려 = 식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비재에서도 고령층을 위한 제품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유한킴벌리와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18년 약 651억원 수준이었던 국내 성인용 위생용품(기저귀)시장은 2021년 약 836억원으로 증가했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성인용 위생용품 판매량이 아동용 판매량을 넘어설 정도로 일상화돼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 성인용 위생용품 시장규모 역시 추후 6000억원 이상까지 늘어나며 아동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유아용 기저귀 1위 기업인 유한킴벌리는 매년 신생아 수가 줄면서 고령층을 겨냥한 사업군 재편을 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그간 쌓아온 기저귀 제조 노하우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니어 전용 요실금 기저귀 및 간병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요실금 전용 제품 '디펜드 애니데이'를 선보였다. 유한킴벌리 관계자는 "고령층이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니어 비즈니스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구업계도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복지가구 유통기업인 심큰은 대형 병원들을 상대로 제공해 왔던 환자식 침대와 의자, 휠체어 등을 가정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독일 비스너-보서호프사의 '센티다'(Sentida)는 환자는 물론 곁에서 돕는 사람들까지 편하게 생활하는 데 가치를 둔 시니어 케어용 전동침대다.

심큰은 벨기에에서 90년 동안 의료용 가정용 가구를 만들어 온 브랜드 할부트의 주력 제품인 '페로(Fero) 리클라인 체어'도 선보였다. 가볍게 뒤로 밀면 전체 좌석이 기울어지는 기능을 적용해 휴식 중 편안한 호흡을 돕는 제품이다.

고령층 낙상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일본 최저 높이 전동침대도 국내에 도입됐다.

실버케어 스타트업 한국시니어연구소는 일본 최대 요양용 전동침대 제조사인 '프랑스베드'와 계약을 맺고, 낙상방지 전동침대 '플로어베드'를 판매하고 있다. 플로어베드는 바닥에서 약 11cm 초저상 높이까지 내려가도록 설계돼 낙상 우려가 거의 없다.

유통업계에서는 노년층이 사용하기 좋은 과학기술을 뜻하는 '에이징테크'(Aging Tech) 도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모바일 쇼핑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50대 이상의 '시니어 엄지족'을 잡기 위해 모바일 앱 '더현대닷컴'을 전면 개편했다. 개편된 모바일 앱은 고령층을 위해 가독성을 높였다. 할인행사 안내나 상품설명 글자 크기를 기존보다 최대 30%가량 키웠다. 상품 이미지 수도 3배 이상 늘렸다. 아울러 스마트폰에서 문자를 입력할 때 터치 위치 및 패턴 등을 분석해 자주 발생하는 오타를 자동으로 보정해 주는 '딥러닝 오타 보정 서비스'도 적용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재 생산업체들의 고령자를 위한 제품 개발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며 "독일 일본 미국을 볼때 국내 기업도 자연스럽게 이들을 위한 제품 개발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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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용 기자 sy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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