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집약산업으로는 생존 어려워 … 탈탄소 대응 중요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한국 조선산업은 1인당 소득 3만달러 시대에도 경쟁국들과 초격차를 확보하고 세계시장 1위를 이어갈 수 있을까. 조선산업은 엔진을 포함한 다양한 기자재와 선체를 조립하는 산업으로 전통적으로 노동집약산업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선주인 해운기업들이 경쟁사들보다 선박을 싸게 구입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에 조선소들은 기자재는 물론 후판 등을 조립하는 인건비도 억제해야 했다. 조선산업은 고용유발효과가 크지만 1인당 소득향상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견디지 못한 유럽과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 한국은 후발인 중국과 순위 다툼을 치열하게 진행중이다. 탄소중립과 디지털전환은 조선업의 불확실성을 더 키우고 있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조선해양을 두차례(2001~2006년, 2015년 5월~2019년 3월) 경영한 정성립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지금은 '한국 조선산업이 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화그룹으로 매각이 진행 중인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도 이 질문에 대한 답 속에서 결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 넘는 나라에서 노동집약적 특성이 강한 조선산업을 초격차 산업으로 키우고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가 점점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소득과 인건비가 오르면 노동집약산업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조선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 되고 소득이 높아진다고 해서 조선산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가안보면에서도 위험하다.

국가 차원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조선산업은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중 하나고, 인류가 존속하는 한 선박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다. 일반적인 노동집약 산업에서 기술집약 자본집약산업으로 탈바꿈해야만 지속가능할 것이다.

■조선소 공정을 자동화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중후장대한 조선산업 자동화에 한계가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그 틀에서 미래는 없다. 지금이 새로운 조선업을 시작해야 하는 때다. 스마트야드나 자동용접도 국지적 이야기다. 조선소 작업을 옥내화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한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작업환경을 개선해야 사람이 올 것이다.

중후장대산업을 어떻게 옥내화하느냐. 유럽을 보면 대형 크루즈선 만드는 조선소들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데, 독일의 마이어베르프트(Meyer Werft)조선소는 대형 블록공장을 옥내에서 무인화했다. 몇 사람이 공정을 컴퓨터화해서 작업하고, 로봇통해 용접 절단하고, 크레인으로 옮긴다. 유럽조선소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많다. 지금부터 시설투자도 많이 해야 한다. 돈이 많이 들어간다.

■고용규모 조정은 불가피할까.

앞으로 가장 어려운 게 인력문제다. 도장 등 현장에서 힘들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구할 수 없다. 전에는 조선소에서 10년 용접한 사람들 급여가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다 높았는데 지금은 차이가 없어졌다. 험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계속 외국인노동자 고용을 늘려달라고 하는데 고용의 양보다 질을 생각해야 한다. 자동화해도 밖에서 하는 일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매력적인 산업이 돼야 젊은이들이 올 것이다.

■한국조선의 기술수준은

세계적이다. 조선기술이나 기자재 등 연관산업도 거의 세계 1위다. 엔진이 많이 진화했고 모든 기계들이 전자화돼 이전보다 좋아졌다. 선주가 조선소를 선정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에 대한 품질이다. 자동차처럼 디자인이 멋져 사는 게 아니다.

짐을 나르는 배는 고장이 안 나야 하고, 내구성·효율이 좋아야 한다. 석탄을 실은 배(벌크선)가 두쪽이나 대서양에 빠지면 하루 뉴스지만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이 태평양에 빠지면 기름 오염 때문에 1년 뉴스가 된다. 싸다고 중국에 못 간다.

둘째, 선주가 예상했던 날짜에 배가 나오느냐. 납기에 대한 신뢰도가 중요하고, 이를 지키는 게 조선소 능력이다. 조선소는 생산관리를 잘 해서 빠른 시일 내 조립해 내는 관리기술이 중요하다. 한국의 조선소는 모든 관리능력이 선진화돼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초대형 컨테이너선 세가지가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 선주입장에서 중국은 품질 납기를 만족시키지 못 한다.

■탈탄소, 자율운항에서도 경쟁국에 앞서 있나.

자율운항은 언론이나 학계에서 과도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선주들이 자율운항선박을 사겠다고 해야 하는데 자율운항선박 투자금과 선원유지금액 비교해 자율운항선이 더 비싸면 당분간 생각 안 할 거다. 필리핀 등에서 선원구하는 게 어렵지 않고, 해기사 기관사 선장 등 몇 사람만 있으면 되니까.

하지만 탈탄소 이슈는 중요하다. 해운회사와 엔진회사들이 LNG 암모니아 전기 등을 선택한다. 국제해사기구(IMO) 등을 통해 탄소중립·친환경 규제가 강제되면 선주들이 새로운 룰에 맞춰 배를 발주할 수밖에 없다.

■흑자수주가 경영자에겐 핵심 능력 아니냐.

한국의 조선 대형3사가 적자수주를 해서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배를 만들어서 적자가 나지 않고 적자가 나도 관리 가능한 영역이다. 적자는 해양플랜트에서 났다.

3사가 서로 외형경쟁을 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건조(컨스트럭션, C) 부문 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설계(엔지니어링, E) 구매·조달(프로큐어먼트, P)까지 EPC를 모두 계약해 손실이 많이 났다. 배 만드는 기술에서 리스크는 거의 없다. 대손충당금을 많이 쌓아서 적자가 나기도 하는데 이는 충당금 환입으로 흑자요인이 되기도 한다.

■대우조선을 한화가 인수하면 당분간 3사 체제로 가지 않을까.

한화가 인수해도 한국의 조선산업이 대형3사 체제로 계속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은 계속 나올 것이다. 대우조선 크기가 1이라면 삼성중공업도 1, 현대중공업은 2~3이다. 대우조선과 현대가 결합하면 4~5 규모의 회사가 나와 시장지배력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지만 삼성과 결합하면 '2' 규모와 '2~3'규모가 경쟁하는 구도니 유럽연합 등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다.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 등을 인수하며 한화·삼성 양 그룹은 서로 딜을 한 경험이 있다. 조선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을 위해 3사 체제 극복을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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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범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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