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 지정 조리흄이 주요 원인 … 구토·어지럼증에도 쉬지 못해

"학교급식 노동자 '폐건강' 위험" 에서 이어짐

문제는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의심 진단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강득구 의원(민주당)은 자료를 공개하면서 "급식 종사자의 '폐암 의심' 비율은 국내 35살 이상 65살 미만 여성의 폐암 발생률과 비교하면 약 35배에 이른다"고 밝혔다.

'2019년 국가 암 등록 통계'에 따르면 35~64살 여성의 인구 10만명당 암 환자 수는 28.8명(0.0288%)이다. 급식 노동자의 주축은 40~50대 여성이다. 정밀검사가 필요하지만 건강진단에 참여한 급식노동자 중 폐암 의심 진단 비율은 상당히 높다.

박미향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열린 '학교급식노동자 폐암 산재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공

그동안 폐암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급식 노동자는 50명이다. 2021년 14명에서 지난해 3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의심 환자들에 대한 정밀조사가 마무리되면 그 수는 더 증가할 수 있다.

전체 노동자 가운데 직업성 암에 대한 산재가 승인되는 경우는 한 해 평균 220여 건 수준이다. 급식 노동자들처럼 단일 직종에서 특정 암이 단기간에 급증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튀김류 조리때 발암물질 더 발생 = 급식 노동자와 전문가들은 조리실 환기시설 부족으로 인한 '요리매연'(조리흄)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조리흄은 식재료를 조리할 때 나오는 연기로 기름을 이용해 230도 이상 고온으로 요리를 할 때 지방 등이 분해되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리흄에는 호흡기에서 걸러내지 못하는 지름 100㎚ 이하 고체 초미립자가 포함된다. 고체 극초립자는 직접 폐와 혈액에 침투해 체내 세포와 장기를 파괴한다. 특히 포름알데히드, 벤조피렌, 질소화합물 등도 포함돼 있어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 등에서는 조리흄을 발암물질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노동부가 2021년 12월 환기시설의 구조와 성능 등을 정한 '학교 급식 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를 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높은 노동강도에 다른 질병도 = 급식 노동자의 폐질환이 사회문제로 부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수도권 한 도시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했던 A씨가 지난해 폐암 판정을 받으면서 이슈가 됐다. 그가 일했던 급식실에서는 1200명의 식사를 조리실무사 7명이 책임졌다. 고열의 환경에 노출이 심하다 보니 구토와 어지럼증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쉬지도 못하는 것이 조리실의 업무 현실이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환경에서 세척 업무를 하다 보면 세제에서 발생되는 유해한 가스를 입과 코로 들이마시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앞서 2021년에는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 업무상질병심의위원회가 2018년 폐암으로 사망한 B씨(당시 54살)에 대해 업무상 질병을 인정했다. 2005년부터 2017년 2월까지 경기도 한 중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던 B씨는 같은 해 4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 1년 동안의 투병생활 끝에 숨진 B씨 외에도 이 학교에선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조리실무사 3명이 구토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이 가운데 2017년 5월 급식실에서 쓰러진 C씨 역시 지난해 3월 환기 등 작업환경과 높은 노동강도 등으로 인한 뇌출혈로 산재 승인을 받았다.

당시 주변 노동자들은 튀김·볶음 등의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을 의심했다. 2016년 여름부터 성능이 떨어진 환풍기와 공조기 교체를 요구했지만, 일부 점검과 수리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무상 질병 심의위원회도 B씨의 업무상 질병 인정 이유에 대해 "12년간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볶음·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에 낮지 않은 수준으로 노출됐다"고 밝혔다.

◆인력부족에 2차 피해 우려 = 상황이 심각해지자 교육당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18일 부산 해운대 APEC하우스에서 제88회 총회를 열고 '급식종사자 폐암 예방을 위한 제도 마련' 등의 안건을 심의·의결하고 교육부 등과 '급식종사자 폐암 예방 공동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안건을 제안한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폐암 건강검진 실시 대상 기준과 환기시설 개선 방향이 교육청마다 달라 표준 가이드라인 제정이 필요하고, 폐암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면서 즉각적인 후속 조치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교육감협의회가 이를 공식화하면 참여해 개선 방안을 통의할 계획이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에는 상당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공간 부족 등으로 조리실을 지상으로 이전하거나 환기시설 교체가 어려운 학교들도 상당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대화사업 이전에 조리흄 등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도록 조리기구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지난 3일 조리작업의 단순화와 안전성 확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23 학생건강증진 정책방향'을 시·도교육청에 전달했다.

정책방향에서 교육부는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가열 요리는 오븐을 적극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특히 급식시설 현대화 대상에 노후 급식시설과 함께 '지하층에 설치된 조리시설'을 강조했다. 이는 지하에 위치한 조리실이 조리흄 관리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급식실 인력 부족에 다른 2차 피해도 우려된다.

최근 지방은 물론 서울·수도권 학교들도 급식 노동자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높은 노동 강도와 열악한 근무 환경, 낮은 임금 등을 이유로 기피하는 것이다. 특히 학교 현장에선 폐질환 대책 등 급식실 환경 개선이 있어야만 학교 급식 인력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기존 인력들이 더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근골격계 질환 증가 등 악순환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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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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