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례 종합대책에도 해마다 학폭 증가 … 소송전 이어지면 피해 학생 2차 가해 우려

24일 교육당국에 따르면 학폭이 발생하면 교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거쳐 학교장 명의로 가해 학생에게 징계 등의 처분을 내린다. 당사자가 이에 불복하면 시·도교육청 학교폭력대책 지역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그 결과에도 불복할 경우 가해 학생은 행정심판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해 학생 측은 본안 소송에 앞서 법원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부터 한다. 이는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 행정처분 효력을 일시 정지해 달라는 것이다. 사법부가 학폭에 대해 선도·교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판단한 판례가 많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예방 현장 간담회│지난 6일 서울 서초구 푸른나무재단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현장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정순신 변호사 아들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정 변호사는 2018년 학폭 가해로 강제전학 처분을 받은 아들을 위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행정심판, 행정소송 등을 이어갔다. 대법원까지 이어진 소송에서 결국 패소했지만 정 변호사 아들은 그 기간 전학을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피해 학생은 1년여를 자신을 괴롭혔던 정 변호사 아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2차 피해를 당했다.

정 변호사 아들은 뒤늦게 서울 강남의 학교로 전학을 갔고 학생부에 적힌 학교폭력 사실은 졸업과 동시에 삭제됐다. 그는 학폭의 영향이 적은 정시를 통해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피해 학생들은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문제는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심판 청구를 할 경우 학교·교육청과 가해 학생 간 다툼이 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피해 학생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법원에서 효력 집행정지가 인용될 경우 피해 학생 보호를 위한 조치들이 무력화되기도 한다.

실제로 한 청소년단체가 소개해준 고등학생 B군의 사례가 현실을 잘 보여준다.

B군은 같은 학교 학생에게 피해를 입었고 학교는 학폭위를 열어 가해 학생의 강제 전학을 결정했다. 이제 학교생활이 좀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가해 학생 부모가 강제전학 조치는 과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B군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소송에 대응해야한다는 것이 막막하다. 소송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좋다는데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피해당한 것도 힘든데 비용을 내야한다는 것이 황당하다.

◆정부 엄벌주의 강조 = 교육계에서는 학폭 전력으로 대학 진학이 가로막히게 되면 가해 학생 대부분이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교육당국은 이런 우려 속에서도 '엄벌주의'를 원칙으로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산업 현장의 법치를 세우는 것처럼 교육 현장에도 학생, 학부모, 교사, 학교 간의 질서와 준법정신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지난 6일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주호 교육부총리도 국회 교육위에서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교육계에 따르면 국회에는 학생부의 학폭 기록 보존 기간을 강화하는 내용의 '초·중등 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계류돼 있다. 조경태 의원(국민의힘)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정부가 발표할 예정인 종합대책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학폭위 조치 1호(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 2호(피해 학생 및 신고·고발 학생에 대한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의 금지), 3호(학교에서의 봉사)는 생활기록부에 기재됐더라도 졸업과 동시에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 5호(학내외 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6호(출석정지), 7호(학급교체)는 졸업 후 2년간 기록이 보존됐다가 삭제되지만, 심의를 거쳐 졸업과 함께 삭제가 가능하다. 8호(전학)의 경우 예외 없이 졸업 후 2년간 보존됐다가 삭제된다. 다만 9호(퇴학)는 삭제되지 않는다.

개정안은 1·2호는 여전히 졸업과 동시에 삭제하도록 하지만 3·4호는 졸업 후 2년, 5·6호는 졸업 후 5년, 7·8호는 졸업 후 10년간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위 조치 사항을 기재하도록 규정했다. 삭제가 불가능한 9호를 제외하면 학폭위 조치 사항이 졸업 후 최대 2년에서 최대 10년까지 생활기록부에 남겨져 대입은 물론 취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학폭위 조치가 현행처럼 2년 후 삭제될 경우 정부가 정시에 이를 반영하도록 제도를 변경하더라도 'n수'를 통해 진학하면 제재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교육청·교원단체 한 목소리 반대 = 교육계에선 지나친 규제라며 자칫 학교가 소송 판이 될 수 있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조 의원 대표발의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17개 시·도 교육청 가운데 서울, 부산, 대구 등 11곳이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시도교육청은 "미성년 학생의 학교폭력 기록을 최장 10년간 보존하도록 해 입시, 취업에 불이익을 받도록 한다면 얻어지는 공익에 비해 학생의 진로 설계와 사회 진출 방해 등으로 학생이 입게 되는 피해가 현저히 크다"면서 "헌법에서 도출되는 직업의 자유 및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로 인해 행정심판, 소송 및 민원이 증가돼 학교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삭제할 수 있는 기간을 늘리면 학생들이 충분하게 변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 학생이라는 낙인을 찍을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도 신중론을 밝혔다.

한국교총은 "법률 근거를 통해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자는 취지는 이해된다"면서도 "학교폭력 가해 사실의 기재 강화에 부담을 느낀 가해 학생 학부모들의 맞신고, 민원, 행정심판 증가, 학교장 자체해결제 약화 등 부작용이 예측되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교폭력 예방교육 및 피해학생에 대한 치유·회복을 통한 재발 방지 등 교육적 해결책 모색과 연계되지 않은 처벌 위주 정책은 실효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낙인 효과에 가해 학생 변화·회복도 불가능 = 학교폭력예방법은 2004년 제정된 후 29차례나 개정됐다. 교육부는 이 기간 학폭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그 횟수만 8차례지만 학폭은 꾸준히 증가했다.

그동안 종합대책이 피해자 회복보다 가해자 처벌을 우선시 하는 '엄벌주의'를 기반으로 마련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보니 피해자의 온전한 피해 회복, 가해자의 진실한 반성과 책임, 학교 공동체 회복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피해학생 관계회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학교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학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징계를 강화하기보다 교육주체들의 신뢰 회복과 상호 존중을 통한 공동체 통합의 방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지원 방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교사운동 관계자는 "징계 기록 보존 기한 연장, 그 기록의 대입 반영과 같은 엄벌주의 방식 조치로 국민적 공분을 잠시 잠재우는 보여주기식 대책만 발표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교육주체 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상호 존중을 통해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방향의 대안들을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폭력의 주원인이 되는 사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도 이번 대책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률사무소 사월 노윤호 대표변호사는 "피해 학생들이 모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할 것 같지만 사실 가장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과"라며 "그런데 가해자가 사과하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모르거나 서툴러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간이 좀 걸리지만 관계회복 프로그램으로 잘 해결된 사례들도 많다"면서 "관계회복 프로그램이 활성화되려면 교육당국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 동참도 문제 해결 열쇠 = 학폭 예방과 근절은 정부, 학교, 교사를 넘어 학생과 학부모들의 자발적 동참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교총은 "미국은 학생 입학과 함께 학칙 준수 서약은 물론 자녀 학폭에 대해 동반 책임을 진다는 계약서까지 제출한다"며 "국내 여러 학교에서도 이미 학폭 예방을 위해 교육구성원 간 자발적 실천서약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학폭 근절을 나부터 실천하고 가정에서부터 예방교육에 힘쓰자는 취지"라며 "각 학교 차원에서 학폭 제로화 책임협약을 맺고 함께 실천한다면 학폭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고 근절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식의 일부 부모들의 태도가 가해 학생을 한 번 더 망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소한 폭력이라도 사소하게 취급하지 않고 교육의 기회로 삼는 부모의 태도가 자녀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는 지적이다.

이현숙 대표는 "새로운 제도가 시행 의도와 다르게 가해 학생 부모가 피해 학생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만 보호하는데 급급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한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제도가 피해자의 치유와 회복, 가해 학생의 재발방지에 도움이 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는 교육공동체로서의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면서 "학생 이익 중심의 관점에서 학교폭력에 잘 대응한 모범사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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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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