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 학생·가정을 파괴해

회복 지원, 보호자도 상담 필요

"자녀가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하면 당사자뿐 아니라 가정도 무너집니다."

푸른나무재단 김석민 학교폭력SOS센터 팀장은 지난 20일 내일신문과 만나 학폭 피해가 학생 외에도 보호자와 가족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가해 학생이 지목되면 그 부모는 변론할 내용을 준비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훈육의 부분'은 사라지고 쌍방이 증빙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피해사실 증명부터 사안 처리 이후 아이 치료와 회복의 긴 과정이 온전히 보호자 몫으로 된다. 만약 행정소송으로까지 이어진다면 가족의 일상은 무너지고 구성원 모두는 고통을 겪게 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학폭 피해를 알았을 때 보호자 대처가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들이 학폭 피해를 보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사례가 있다. 동급생 8명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한 중학생은 부모의 노력으로 가해자들 행위를 밝혀냈지만 2명의 서면사과와 일부 학생의 접촉금지 처분을 받아내는 데 그쳤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해 학생들이 지역에 소문을 퍼뜨려 이 학생은 피해자 임에도 오히려 먼 지역으로의 전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학생은 사이버폭력에 시달려 그 피해로 조현병 진단을 받고 정신병원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폭력에 거식증에 걸린 중학생도 있다. 이 학생은 동급생들로부터 소변볼 때 갑자기 밀침을 당하거나, 용변 시 물을 맞는 등의 폭력을 당했다. 그 때문에 급식과 물도 먹지 않는 행동을 취했다. 화장실도 가지 않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교실에만 머물렀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 오면 허겁지겁 두 세끼를 먹는 아이를 흐뭇하게 지켜봤다고 학부모는 자책했다.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자녀가 학폭 피해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처음 겪는 일인 데다 피해 학생의 경험이 간접적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또 사안에 대처하고 아이를 돌보는 데 집중하다 보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여력도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재단은 따라서 학폭 발생 시 우선해야 하는 것은 피해 학생과 가족의 일상회복이라고 강조한다. 감정적으로 안정을 찾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보호자가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지금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자연스럽게 '내 잘못이 아니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때 학부모도 전문가의 상담을 받으면 도움이 된다.

김 팀장은 "학폭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보호자도 자녀 피해를 알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그 시간에 오히려 아이 보호를 어떻게 하면 좋은지 방향을 잡고 챙겨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학폭을 당했을때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누군가 지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관심을 두고 물어봐 주는 정도로도 괜찮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교육청과 지자체,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피해 학생을 위한 보호조치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라며 "피해자 사후관리와 회복 지원을 위한 표준화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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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철 기자 pkcheol@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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