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전기차 이어 조선업까지 불똥 … ‘무역충돌’ 넘어 ‘무력충돌’ 우려

전략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양국간 무역충돌이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민일보=연합뉴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스파르타와 아네테 간 전쟁은 필연이었다고 갈파했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스 전쟁사’에서 “전쟁이 필연적이었던 것은 아테네의 부상과 그에 따라 스파르타에 스며든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스파르타와 아테네 간 전쟁처럼 신흥세력과 지배세력이 충돌로 치닫는 양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명명했다. 앨리슨 교수는 고대 그리스 전체를 주저앉게 만든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래로 ‘투키디데스 함정’은 2000년 넘게 국가 간 대외관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쳐왔다고 주장했다. 지난 500년 동안만 하더라도 신구 세력이 갈등을 빚는 상황이 16번 발생했으며 이 가운데 12번은 전쟁으로 귀결됐다고 분석했다.

앨리슨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목하 17번째 ‘투키디데스 함정’의 사례가 진행중이라고 주장한다.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부동의 패권을 누려온 미국과 1980년대 이후 급속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이 ‘무역충돌’을 넘어 ‘무력충돌’까지 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17번째 ‘투키디데스 함정’ 진행 중? 벌써 오래전부터 앨리슨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조짐들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패권을 놓고 정치와 무역 외교 군사 등 전방위적인 충돌을 하고 있다. 특히 무역분야에서는 반도체와 전기차 조선업 등에 이어 소셜미디어(SNS) 산업으로까지 갈등이 번지고 있다.

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전화 회담은 미중갈등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냈다. 1시간 45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두 정상은 핵심 현안에 대해 팽팽하게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두 정상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문제, 첨단기술 이전 등에 대해 날선 공방을 벌였다. 바이든은 “미국의 첨단기술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데 사용되지 못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억압하고 정당하게 발전할 권리를 박탈하려 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맞섰다.

중국을 방문중인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정부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옐런은 5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의 회담 자리에서 “직간접적인 정부 지원은 현재 중국의 국내 수요는 물론 세계시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초과하는 생산능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과잉생산은 가격하락과 대량수출로 이어질 수 있어 글로벌 경제 회복력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옐런은 다음날 성명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국내 및 세계 경제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집중적인 교류를 갖기로 의견일치를 봤다”고 발표했다.

“중국 경제, 미국보다 이미 커져”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 수위가 높아지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영국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크리스 자일스는 지난해 12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쏘리 아메리카, 중국 경제가 미국보다 커졌네(Sorry America, China has a bigger economy than you)’라는 칼럼을 실었다.

자일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세계경제전망보고서를 인용해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중국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중국 경제가 22% 더 크다”고 분석했다. 자일스는 구체적인 사례까지 들면서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를 설명했다. “중국의 전력생산은 2010년 미국을 따라잡았다.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꺾이는 것처럼 보였던 2016~2022년 사이에도 중국의 전력생산은 45%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전력생산은 큰 변화가 없었다.”

결국 미국과 중국도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양국간 무역갈등은 이제 무역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은 통상무역을 국가안보 차원으로 끌어올리면서까지 험악한 공방을 벌이는 중이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이차전지 등 전략기술 제품의 중국 수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 역시 테슬라 차량들의 정부 시설 진입을 금하거나 엔비디아와 애플 제품의 판매 또는 사용을 일부 금지하는 등의 조치로 맞대응을 했다.

FT는 지난달 13일 ‘조선업: 미중 무역전쟁의 새로운 전장(Shipbuilding: the new battleground in the US-China trade war)’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FT는 5000년 넘게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었던 조선과 해운이 오늘날 무역은 물론 국가안보와 국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양국의 조선업 실태를 전했다.

“1975년 미국 조선업은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연간 70척 이상의 상선을 건조했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상선 건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의 조선업은 세계 19위로 떨어졌다. 반면 중국은 최근 20년간 미국보다 3배 이상의 선박을 만들어냈다. 원양선박의 경우 지난해 미국은 10척을 만드는 데 그쳤지만 중국은 1000척 이상을 건조했다.”

최근 전미철강노조(USW) 등 미국 5개 노조는 중국정부가 조선·해운 분야에서 벌이는 불공정 행위를 고발하는 청원서를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했다. 중국정부가 비합리적 차별적 조치와 정책, 관행으로 조선 해운 물류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질서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 하원, 틱톡 금지법안 통과

미중 무역충돌은 SNS 분야로도 번졌다. 미국 하원은 지난달 13일 중국SNS 틱톡을 미국에서 금지시킬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안은 틱톡 모회사인 바이트댄스가 틱톡의 미국 사업부를 완전히 매각하지 않는 한 미국 앱스토어에서 틱톡 유통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정부는 중국 바이트댄스가 틱톡을 소유하기 때문에 중국정부가 틱톡을 통해 미국인의 데이터를 수집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의 틱톡 금지 움직임을 둘러싸고 양국 외교당국이 장외 설전을 벌였다.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는 지난달 14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은 자국민에게 엑스(X)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구글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반발은 매우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공정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때 횡포를 부리는 것”이라며 “투자환경에 대한 국제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하고, 국제경제 및 무역질서를 파괴해 궁극적으로 미국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국은 전기차를 둘러싸고도 날카롭게 맞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로이터통신 등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중국 상무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미명 하에 IRA가 시행되고 있지만, 실제론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구매·사용하거나 특정 지역에서 수입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차별적 속성을 띤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캐서린 타이 USTR대표는 “IRA는 미국이 세계적인 기후 위기에 진지하게 대응하고 미국의 경제적 경쟁력에 투자하기 위한 획기적인 도구”라면서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한 정책과 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동맹 및 파트너들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FT는 지난달 13일자 기사에서 1990년대 이후 미국 주도로 작동해온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인 ‘워싱턴 컨센서스’가 무너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및 중동의 전쟁 발발과 함께 세계 공급망이 취약해지고, 중국과 서방 간 정치・경제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큰 충격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글로벌 교역환경 변화의 배경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EU 우방국과 중·러 두 블록이 서로 무역장벽을 강화하고 보호무역조치를 시행할 경우 우리나라의 수출 감소폭은 최대 10%까지 확대될 것으로 우려된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속하는 경제강국이다. 더 이상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가 아니라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돌고래라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대외 통상・외교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박상주 칼럼니스트 지구촌 순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