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는 디지털 혁신 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양자기술, 5G·6G 등 첨단기술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로 부상했다.

오늘날 표준은 단순한 규격이나 기준을 넘어 국가전략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제품과 서비스의 상호운용성, 안전 및 보안 보장, 사용자 편익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표준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개발과 육성, 촉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요소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서 그 역할을 더욱더 확장해 나가고 있다.

‘표준'은 디지털 신질서의 근간

AI나 양자기술 분야 표준 경쟁에서는 단순히 기술적 우위를 넘어 국가 간의 지정학적 경쟁과 긴장 속에서 동맹국 간 협력도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표준화 무대에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중국 등 비서방 국가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우방국 간 연합이 공고해지는 ‘표준 블록화’ 현상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첨예한 글로벌 표준 경쟁 속에서 주요국은 표준을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자산으로 인식하고 관련 정책 수립과 함께 투자를 확대해왔다. 미국은 2023년 5월 핵심·신흥기술 표준전략을 발표하고 연방정부의 R&D 투자 확대와 표준 연계를 강화하고 있고, 유럽은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2021~2027)을 통해 R&D와 표준 연계를 위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이다. 중국도 국가표준화 실행계획을 통해 표준화와 기술혁신 간 상호 작용을 강조하고 국가 주도의 국제표준화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2023년 6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표준 분야에서 주도권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패권경쟁 시대 ‘초격차 확보’를 위해 디지털 핵심 기술 분야에서는 국제 표준 논의 초기단계부터 우리나라의 이익과 입장이 반영되도록 적극적인 참여와 긴밀한 협력을 강조한다. 지난 3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의결한 2025년 국가연구개발 투자 방향에서 ‘혁신적 연구가 시장까지 이어지도록 R&D와 표준화를 병행 지원하겠다’는 중점 투자 방향을 설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정부의 R&D 투자는 기술 창출과 보호, 그리고 글로벌 시장 사업화로 이어져야 한다. 사업화가 성공하려면 그 기술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따라서 R&D와 표준 연계는 우리나라 기술력을 글로벌 시장에 확산시키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표준’은 투자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적인 도구다. 표준화에 성공한 기술은 글로벌 확산의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고, 설령 실패했더라도 표준에 반영된 기술 요소들은 표준특허와 같은 경제적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물론 R&D 결과를 표준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연구자의 노력을 조화롭게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표준화는 국가·기업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사리 그 성공을 속단하기 어렵다. 또한 R&D 역량뿐만 아니라 표준화 절차에 대한 이해, 전략적 협상 능력 등 다양한 역량과 긴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 장기전임을 고려해야 한다.

R&D와 표준 연계 확대해 나가야

급변하는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서 R&D 결과의 표준화는 이제는 더 이상 선택 요소가 아니다. R&D-표준 연계를 통한 성과 확산은 발전과 혁신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첨단 디지털 기술 분야에 대한 R&D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하고 그 결과를 표준화하는 데에도 초점을 맞춰 R&D와 표준 연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해소할 장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일련의 과정들을 착실히 실행해 나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확대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손승현 정보통신기술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