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재정.’ 좋은 말이다. 나라살림도 가정처럼 빚은 줄이고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 윤석열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건전재정이다. 하지만 집권 3년차 윤석열정권의 재정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 빚 좋은 개살구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출발부터 진정성이 부족했다. 정치적 반대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측면이 더 큰 탓이다. 윤석열정부의 건전재정은 전임 문재인정부를 ‘퍼주기 정부’로 비판하면서 쓴 대안 개념이었다.

코로나19에 대응해 재정지출을 늘린 문재인정부는 ‘방역과 재정정책’ 모범국으로 자처했다. 다른 주요국가에 비해 재정을 덜 쓰면서도 효과적으로 방역했다는 자평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현 여권은 ‘퍼주기로 나라 빚만 잔뜩 늘린 정권’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 후보는 “우리가 집권하면 퍼주기를 중단하고 건전재정을 하겠다”고 했고 결국 집권했다.

하지만 ‘건전재정’을 내건 윤석열정부의 재정성적표는 참담하다. 시작부터 부자감세 논란을 자초했다. 세금을 깎아주면서 건전재정도 하겠다는 ‘요술’ 수준의 정책기조를 고집했다.

매년 사상최대 지출구조조정을 했다고 자랑했지만 지난해 말 기준 나라빚은 1126조7000억원으로 사상최대가 됐다. 국가채무비율은 처음으로 GDP 대비 50%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56조4000억원이란 유례없는 세수펑크를 냈다. 돈이 부족한 정부는 올해 1분기에만 한국은행으로부터 32조5000억원을 빌려써야 했다. 역시 사상최대 규모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표가 급했던 정부여당은 지난 총선에서 ‘더 많은 감세’를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전국을 돌며 24차례 민생토론회를 열고 ‘퍼주기 약속’을 했다. 이 과정에서 쏟아낸 감세와 재정지출 약속만 수백조원이 넘는다.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부가가치세 인하까지 다짐했다.

정부여당이 ‘말잔치’하고 있을 동안 경제여건은 서민들을 더 옥죄고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코앞에 두고 있고 환율은 1400원을 바라보고 있다. 모두 생산비용을 높여 물가를 위협하는 핵심요인이다. 여기에 예상외의 탄탄한 경제 회복력 탓에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도 옅어지면서 고금리·고물가 장기화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는 서민 생활에 직격탄이다. 정부는 부자감세 타령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취약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해야 한다. 물가와 ‘멋대로 국정운영’에 지친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윤석열정권을 표로 심판했다. 선거 후에도 국정기조 변화가 없다면 국민들이 생존을 위해 더 중대한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성홍식 재정금융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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