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원인, 책임자 놓고 진실게임만 반복

이태원 참사 등 인재 반복에 불안감 커져

“윤석열정부의 지난 2년은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과 안전을 우리 사회 가장 중요한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했던 사회적 합의를 거스른 시간이었다. 국민 안전과 생명은 뒷전이었고 참사 대비와 대응, 수습 전 과정에서 실패한 탓에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연달아 일어났다.”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4월 11일 성명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유족과 시민사회단체가 참사 원인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대책 등도 해결되지 않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 참사 10주기 4.16 기억문화제인 ‘진실 책임 생명 안전, 세월이 지나도 우리는 잊은 적 없다’가 13일 서울시청 주변에서 열렸다.

김종기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날 “국가는 바뀌지 않고 책무를 다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국민이 목숨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책임자 처벌은 단 한 명도 되지 않았고, 안전한 사회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10년 … 침몰해역에 헌화하는 아빠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오후 단원고등학교 희생자인 조은화 학생의 아버지 조남성 씨가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의 침몰해역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10년 째 사고 원인은 논란 중 = 사고 원인을 놓고 10년째 논란 중인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진도 앞바다에서 기울기 시작했다. 3분 후 첫 119 신고가 접수됐고 9시 25분 서해해경청 소속 헬기 511호와 해경 경비정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해경구조대는 조류로 인해 선내에 진입하지 못했고, 10시 30분 세월호는 뒤집혔다. 헬기 도착 이후 최소 45분, 123정 도착 이후 25분간 승객을 탈출시킬 시간이 있었지만 구조는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가 완전 침몰한 4월 18일까지 국민들은 생중계로 배가 가라앉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참사 직후 정부는 검찰 수사, 국회 국정조사, 감사원 감사 등 5번의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자료 제출 거부와 전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의 유가족 불법 사찰 의혹으로 조사 결과는 신뢰를 잃었다.

이후 2015년부터 세 차례의 특별위원회 조사가 이뤄졌다.

2015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구성됐다. 하지만 특조위 조사는 별다른 결론을 내지 못하고 2016년 9월 강제 종료됐다. 정부·여당의 반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상태에서 진실을 밝히기는 역부족이었다.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가 인양되자 4월에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출범했지만 침몰 원인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1년 4개월의 활동을 마쳤다.

2017년 제정된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에 따라 이듬해 12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출범했다. 하지만 사참위도 2022년 6월 침몰의 직접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활동을 마무리했다. 사참위는 종합보고서에서 △정부의 공식 사과 △피해자 사찰 및 세월호특조위 조사 방해 행위에 대한 조사 및 감사 실시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개선 등을 권고했다.

유족들은 또 구조실패 책임자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해경에서 구조 부실 책임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건 징역 3년이 확정된 김경일 전 123정장이 유일하다. 처벌은 승객 구조를 외면하고 탈출한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화물을 과다하게 싣고 안전 관리를 소홀히 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 등 민간에 집중됐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16일 성명을 내고 “2022년 활동을 종료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침몰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고 구조에 실패한 해경 지휘부도 무죄가 확정됐다"며 “어찌하여 진실에 닿을 수 없었는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못한 현재의 제도가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작동하지 않는 국가재난시스템 =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각종 재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 사이 정부가 여러 차례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법 개정을 했음에도 국가재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일이 반복되면서 이런 주장에 힘이 실린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의 경우 행사 주최가 없다는 이유로 기관별 안전대책 검토도 이뤄지지 않았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어야 하는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은 참사 발생 30분이 지나서야 상황을 파악했고 다음 날인 새벽 2시 30분쯤 가동됐다.

1조5000억원을 들여 경찰, 소방, 군부대, 지방자치단체 등 재난 관련 기관 무선통신망을 통합한 재난안전통신망은 작동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선 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통신망이 아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단체대화방이 이용됐다. 단톡방에 경찰이 포함되지 않아 결국 소방과 경찰, 의료진이 뒤엉켜 접근 통로조차 확보하지 못하는 혼란이 빚어졌다. 그러는 사이 159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윤석열정부는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원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 참사의 원인과 배경을 근본적으로 밝히기 위한 특별조사위원회는 대통령이 ‘10·29이태원참사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출범도 못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충북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도 안전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폭우로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지하차도가 침수돼 14명이 숨졌다. 당초 호우경보가 내려지면 도로관리청인 충북도가 상황을 관리해야한다. 하지만 홍수경보에도 충북도의 폐쇄회로(CC)TV 이용 감시 외에 도로통제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의 부실 대응으로 커진 인재라는 점이 여러 참사와 유사하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은 “사회적 재난·참사 재발 방지와 안전 사회 구축을 위한 근본적 제도 개선 등의 진전이 부족했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의 노력도 아무런 결실을 맺지 못했다”며 “이태원·오송 참사는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가 안전 사회 구축을 위해 어느 정도 진전했는지 보여주는 성적표와 같다”고 밝혔다.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필요” =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사회적 참사의 원인을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을 담당하는 독립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국가의 책임이 있는 사회적 참사의 경우, 정부가 책임을 숨기고 진상규명을 어렵게 할 수 있어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 참사가 날 때마다 정부 조사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어 주장에 힘이 실린다.

이들은 또 국회에 4년째 계류 중인 생명안전기본법이 시행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를 통해 안전사고의 피해자 권리를 규정하고 국민의 안전권을 위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들의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존 재난안전기본법은 안전과 생명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의무를 제대로 명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정민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이태원 참사에도 오송 참사에도, 10년 전 세월호 참사 때도 정부는 없었다”면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를 제어할 수 있는 것 또한 국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22대 총선의 결과는 압도적인 야당의 승리로 끝났다”면서 “생명 안전 공약인 이태원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사참위 권고 이행,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가장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이행하는 모습으로 이전의 퇴행을 속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60% “대형 사회재난서 안전치 않아” = 한편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에 국민들의 불안감도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국민 10명 중 6명은 대형 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동아대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가 공동 수행한 ‘세월호 10주기 재난안전인식 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46.3%가 “우리나라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면, 49.8%는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나머지 3.9%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5일부터 8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인천∙경기 거주자 32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특히 응답자 중 60.3%는 “우리나라는 대형 사회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반면 “안전하다”고 한 응답자는 32.7%에 불과했다.

동아대는 세월호 참사 이후 거의 매년 이 같은 조사를 해왔는데, “대형 사회재난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은 2020년 48.8% 대비 무려 11.5%p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나라 재난 대응 체계가 바뀐 것 같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8.4%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개선됐다”와 “나빠졌다”는 응답은 각각 39.1%와 7.9%였다.

‘정부의 재난 인식과 준비 정도가 나아진 것 같냐’는 물음에도 응답자의 59.9%가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고, “나아졌다”는 답변은 33.9%에 불과했다.

아울러 응답자의 68.7%가 “나도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를 겪을 것으로 걱정한다”고 답했고, 26.5%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동규 동아대 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소장은 “전반적으로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국민 인식이 악화했고, 그 원인으로 대통령과 정부를 꼽으면서 재난 관리 체계 준비 정도에 부정적 인식이 더욱 강하게 드러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 인식과 평가를 토대로 효율적 재난 관리 방안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장세풍·박광철·오승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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