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선거법·연금개혁 결과 ‘불수용’

“숙의 결과, 정치권 판단의 출발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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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두 번의 공론조사 결과가 국민의힘 입장과 배치되면서 국민의힘이 공론조사 결과를 거부하는 꼴이 됐다.

거대양당이 정당차원에서 분석과 검토를 거쳐 이미 입장을 정한 상황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공론조사로 국민의 뜻을 묻겠다고 할 때부터 수용가능성이 낮았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국회 첫 공론조사였던 선거법 개혁에 앞서 민주당은 도농복합(도시는 소선거구제, 농촌은 중대선거구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연동형비례대표제 고수, 위성정당 차단 등으로 대략적인 입장을 정했고 국민의힘은 소선거구제, 병립형비례대표제 등으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었다.

선거법 공론조사 결과는 민주당 주장에 더 근접하게 나왔다.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69.5%에 달했고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비례대표제에 대한 선호가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제보다 높았다.

국민의힘은 시민대표의 대표성과 함께 숙의를 지원하는 패널들의 편향성에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공론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숙의과정에서 결론나면 그게 국민의 뜻으로 치환이 될 수 있어야 되는데 대표성의 문제가 있어 일반 국민의 뜻을 다시 살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국회에서 선거법 결론을 내릴 때는 (공론조사에 참여한) 500분의 의사가 아니라 5000만명의 의사(를 반영해야 한다)”라고 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이번에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한 공론조사는 워킹그룹의 구성에 대한, 바이어스(bias)에 대한 이의 제기도 있었다”며 “토론 발제 과정에서 주로 정치학자분들에 의해서 주도된, 어떤 그런 경도된 여론조사가 나왔을 가능성이 또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세 차례 조사 결과가 나왔으면 이게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지”를 따져 물었다.

당 입장과 다르게 나온 연금개혁 공론조사 이후에도 국민의힘은 ‘편향성’을 문제 삼았다. 연금특위 국민의힘 간사 유경준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1안의 정식 명칭은 ‘기존보다 조금 더 내고 그보다 더 많이 받는 안’으로, 이를 ‘더 내고 더 받는 안’이라고 포장한 것은 서민을 교묘하게 희롱하는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했다.

전문가들도 공론결과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국민의힘과 같은 재정안정론자인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전 한국연금학회장) 등이 참여하는 연금연구회는 시민대표단이 ‘더 내고 더 받는’안을 최종 선택한 것과 관련해 “시민 대표단이 학습한 내용에 핵심 정보들이 빠졌다”고 했다.

시민대표단이 숙의 과정에서 학습한 내용이 “편파적이었다”는 비판이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해 여당의 반발에 힘을 실어줬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연금개혁 관련 전문가 간담회에서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이 “공론화에서 많은 지지를 받은 안에 대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당초 재정안정을 위해 연금개혁을 논의한 것인데, 도리어 어려움이 가속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한다”고 했다.

애초부터 입장을 갖고 있던 거대양당이 대화와 타협을 하지 못해 공론조사에 넘겨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공론조사 결과가 나왔어도 입장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결국 국민 대표인 국회가 국회 밖의 시민대표에 합의를 맡기지 말고 스스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줄어들지 않은 무게로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선거법 개편 공론조사를 추진했던 서울대 김석호 교수는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숙의의 진짜 효과는 결론을 냈으니까 따라가기보다는 그 과정을 통해서 공개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고민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다음은 정치적 선택과 판단과 결정의 문제”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인들이 단편적인 여론조사 결과나 해당 의원들과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의견을 마치 국민 전체의 의견으로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 공론조사 결과를 통해서 이런 부분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판단의 출발 근거는 확실히 될 수 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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