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연금개혁, 시민대표 공론조사도 무용지물

여야, 기존입장과 맞아야만 수용

극단적 대치에 시민숙의 무력

국회에서 추진한 시민대표들의 숙의과정인 공론조사가 다시 외면받으면서 무력화되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선거법 등 정치개혁 공론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지만 여야의 입장차가 커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상균 연금개혁 공론화위원장이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연합뉴스

올해 들어 실시한 연금개혁 공론조사 역시 국민의힘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서 거부하려는 모습이다.

26일 국회 연금특위 관계자는 “다음주 화요일인 30일에 국회 연금특위를 열고 공론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연금특위 결과가 각 정당의 입장에 맞으면 수용하려고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국회 연금특위 공론화위가 492명의 시민대표단을 구성해 4차례의 토론회를 연 뒤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늘리고 보험료율을 13%로 높이는 방안’(소득보장안)에 56.0%의 지지가 나왔고 ‘명목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고 보험료율을 12%로 올리는 방안’(재정안정안)에 손을 들어준 비율은 42.6%였다. 소득보장론이 재정안정론에 비해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4.4%p) 밖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셈이다. 국민의힘은 “조금 더 내고 더 많이 받는 개악”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내놨고 민주당은 “소득보장 강화가 국민의 뜻”이라며 수용 입장을 밝혔다.

공론조사 이전에 갖고 있던 입장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남은 21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방안이 나오기 어렵고 22대 국회땐 지방선거, 대선을 앞두고 합의점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많아지고 있는 이유다.

준비기간까지 3~4개월이 걸렸고 한 번에 수십억 원씩 들어가는 공론조사는 여야 합의로 진행됐지만 각 정당의 입맛에 따라 수용 여부를 결정한 탓에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지난해 ‘국회 첫 공론조사’로 관심을 모은 선거법 공론조사 결과도 무용지물이 됐다. 정치개혁특위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돼 있는 선거법과 관련해 시민대표 공론조사를 실시했고 비례의석 확대, 위성정당 차단 등의 결론을 도출해냈지만 거대양당이 내린 결론은 이와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두 정당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정반대의 결과를 도출했다. 비례의석은 한 석 줄었고 거대양당의 위성정당은 재등장했다.

정치개혁특위 관계자는 “거대양당의 합의하에 진행된 공론조사인데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결론이 나오면 시민대표가 숙의를 거쳤어도 수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면서 “국회에 대화와 타협이 사라지고 극단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 숙의도 무력해졌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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