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기대 주춤 "어대문이면 홍준표"

20대 "부모 의사 무관" '반란투표' 기류

"반문정서 얼마나 확산되느냐가 관건"

24일 찾은 '보수정치 1번지' 대구 서문시장의 오후는 활기찼다. 선거유세가 없어도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붐볐다. 화재가 있었던 4지구 담벼락은 가게 이전을 알리는 색지로 빼곡했다. 선거벽보는 보이지 않았고 각 후보 현수막도 시장 바깥 교차로에서나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소방서 맞은편에서 건어물을 파는 김 모(63)씨는 "선거 때만 되면 우르르 몰려왔다 가는데 별로 관심 없다"며 "찍을 인물이 이렇게 없었나 싶다"고 말했다.

가게를 돌며 밥 배달을 하는 한 50대 남성은 "탄핵 있고 나서 밀어볼 만 하다 싶던 사람들이 줄줄이 나가 떨어지니 진(기운) 빠진다"며 "그래도 문재인은 안된다"고 말했다.

◆"안, 대통령감 아니면 정당투표" = 19대 대선이 불과 2주 남았지만 대구·경북 표심은 여전히 표류중이다. 탄핵 사태로 분위기가 가라앉은 마당에 마음 줄 인물마저 없다. 상당수 기성세대 사이에는 '반 문재인' 정서가 두터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대안을 놓고는 조심스럽다. 이들이 고민 중인 선택지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되는 분위기다.

먼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찍는 이른바 '전략투표'다. 조건은 2가지다. 안 후보가 차기 대통령다운 모습을 보이고 문 후보를 추월할 만큼 세몰이를 해줘야 한다.

둘째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찍는 '소신투표'다. 자신들이 누굴 찍어도 문 후보 당선이 확실시되거나, 홍 후보가 선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거나 둘 중 한 경우다.

그런데 한때 여론조사 지지율이 급등하며 부각됐던 '안철수 대안론'은 최근 다소 김이 빠진 모습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서문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박지원 상왕론, 평양대사 논란이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다"며 "안 후보가 이 지역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니 차라리 홍 후보를 밀자는 목소리가 커졌다"고 전했다.

전날인 23일 TV토론회에서 안 후보가 보인 모습도 영향을 줬다는 반응이다. 이 관계자는 "안 후보가 자꾸 문재인을 붙잡고 MB 아바타니 뭐니 트집을 잡으면서 호남을 두고 싸웠다"며 "동서화합을 해낼 사람인가 싶었는데 영남은 신경 안 쓰더라"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경북지역 공무원 A(54)씨는 "탄핵에 이어 잦은 주자교체로 자괴감·피로감이 쌓인 상태"라며 "안 후보가 대통령감 아니거나 어차피 문 후보 당선이다 싶으면 아예 정당투표(홍준표)나 기권을 하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런 정서는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묻어난다. 여론조사기관 폴스미스가 TBC 의뢰로 23~24일 실시한 TK지역 조사에 따르면 홍 후보는 31.8%의 지지를 얻어 안 후보(24.9%) 문 후보(22.8%)를 제치고 선두를 기록했다. 지지후보가 유동적이라는 응답도 32.5%에 달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2030 "홍준표 좋다는 친구 없다" = 정반대의 기류도 읽혔다. 20~40대 젊은층이 중심이다. 대구 중구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유 모(35)씨는 "문 후보를 지지한다"며 "그동안은 부모님과 지역사회 영향으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지만 이젠 확실히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심상정, 유승민 후보도 좋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주변에 홍 후보 좋다는 또래는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진광호(26)씨는 "지난번에는 박근혜를 찍었지만 지켜보니 이번에 1~3번은 안 찍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친구들도 이번에는 박근혜와 관련된 사람은 지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홍 후보가 인물은 괜찮은데 한국당 후보라 안 되겠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안보관이 불안하고, 안 후보는 기대를 많이 했지만 토론을 보니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도 했다. 대학생 최서영(24)씨는 "문 후보가 지난 세월호 단식 동참 등 행동으로 보여준 좋은 모습이 많아 지지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홍 후보는 이번 돼지흥분제 사건이 큰 것 같고, 안 후보는 MB아바타 논란이 우스꽝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는 "토론회 이후 심 후보를 좋아하게 됐다는 사람도 주변에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소영(대구대 정치학) 교수는 "TK는 문 후보가 얼마나 앞서가느냐, 반문정서가 얼마나 확산되느냐에 따라 판세가 결정될 것"이라며 "50~60대의 경우 반문정서가 매우 강하고 20~40대는 반대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최근까지는 홍 후보가 안 후보의 지지를 빼앗으면서 반문정서를 누그러뜨리는 캠페인을 잘 구사하고 있다"며 "숨은 지지율은 5~7% 안쪽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그는 는 "안 후보 캠페인이 실패를 거듭해 여론조사 지지율이 문 후보와 15%p 이상 벌어지는 경향이 지속되면 유권자들은 판세가 '안정됐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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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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