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발언부터 훈훈해

북 "드러내놓고 하자"

9일 판문점에서 마주 앉은 남북은 2년여 간의 관계단절에도 불구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회담을 이끌어갔다.

9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회의장 테이블 위에 평창수가 놓여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앞두고 판문점 남측지역으로 넘어온 북측 대표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회담 전망에 대한 질문에 "잘 될 겁니다"라고 장담했다.

전체회의 개시 후 남북의 모두발언에서도 분위기는 훈훈했다. 리 위원장은 "북남대화와 관계개선을 바라는 민심의 열망은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더 거세게 흐르는 물처럼 얼지도 쉬지도 않는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남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시작이 반', '첫술에 배부르랴' 등의 속담을 언급하면서 "민심에 부응하는 좋은 선물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남북 수석대표간 정반대 성향의 회담 스타일이 드러난 순간도 있었다.

비교적 거침없는 성격으로 알려진 리 위원장이 모두발언 말미에 "회담을 확 드러내놓고 (실황 공개) 하는 게 어떻겠냐"며 다소 정제되지 않은 듯한 표현을 쓰자 차분한 성격의 조 장관이 "말씀하시는 것도 상당히 일리가 있지만 통상 관례대로 비공개로 진행하자"고 설득해 넘어갔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전체회의에서는 평창올림픽에 고위급 대표단과 선수단, 응원단, 예술단 등을 파견한다는 북측의 입장표명이 있었다. 남측이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북측한테서 듣기를 고대하던 답이었다.

비핵화 등을 논의하기 위한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는 남측의 기조발언에도 북측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경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회의가 1시간여 만에 끝나고 이후 수석대표 접촉이 2차례, 수석대표를 뺀 대표 접촉 4차례가 쉴 틈 없이 계속됐다. 접촉 사이사이에 대표단은 각자 청와대 및 당 지도부와 긴밀히 협의하며 숨 가쁘게 움직였다.

남북 간 대표 접촉이 이어지던 오후에는 전격적으로 서해 군 통신선 복원이 됐다는 소식이 날아들어 회담 타결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이기도 했다.

회담을 취재하러 온 북측 기자들에게서도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들은 남측 취재진에게 날씨 등을 소재로 가볍게 말을 걸며 시종 호의를 보였다.

특히 조선중앙통신 소속이라 소개한 한 북측 기자는 남측 취재진에게 "회담을 좀 많이 취재해봤는데 분위기가 오늘 특히 좋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오후 8시 넘어 열린 종결회의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됐다. 리 위원장은 '두 마음에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의 '양심상인'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면서 "북과 남이 마주 앉아 믿음의 도장, 협조의 도장, 희망의 도장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회담은 참으로 좋은 회담"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막판에 북측 대표단이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연출됐다. 리 위원장이 남측 언론에 비핵화 회담이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또 북측이 서해 군통신선을 지난 3일 복원했는데 남측이 이날 복원된 것처럼 언론에 알렸다는 항의도 이어지면서 종결회의가 약 40분간이나 이어지기도 했다.

리 위원장은 종결회의 말미에 "다 좋게 했는데 마무리가 개운치 않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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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공동취재단 ·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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