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전당사자간 '전쟁종식' 확인하는 합의문서

평화의 구조화·제도화인 '평화체제'와 차이

남북·북미 연쇄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과 깜짝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간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교도통신은 1일 시 주석이 지난달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때 이런 제안을 했다고 미중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통신은 시 주석의 발언이 유엔군과 북한, 중국이 1953년 체결한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전했다.

평화조약·평화의정서·평화선언도 같은 말 = 평화협정은 북한이 비핵화의 대가로 요구하는 체제안전보장과 군사적 위협 해소를 제공하는 핵심 요소다. 군사적으로 정전상태인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제거하려면 종전선언·종전협정과 그에 따른 평화협정 체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평화협정은 전쟁을 끝낸다는 교전당사자간의 합의를 문서화하는 것이다. 그 성격상 군사적인 문제 위주로 구성되며, '평화체제'와는 개념 차이가 있다. 평화협정은 평화조약, 평화의정서, 평화선언 등으로도 불린다. 명칭에 따라 효력이 달라지지 않으며, 국제법상 똑같은 효력을 갖는다.

이에 비해 평화체제는 평화에 관한 사회적 기구 혹은 구조 등을 다루는 제도 차원의 개념이다.

조약(협정)에 의해 형성되는 평화체제는 평화와 관련된 권리와 규칙의 집합체로, 평화협정은 평화체제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정상적인 경로'와 '예외적 조기실현 경로'의 두가지가 거론돼 왔다.

'정상적 경로'는 한반도 비핵화가 완성되고 재래식 군축이 이뤄지는 등 여건이 성숙됐을 때 체결하는 것이다. '예외적 조기실현 경로'란 한반도 비핵화와 냉전구조의 해체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협정의 체결을 먼저 고려하는 방식이다.

지난달 우리 대북특사단의 중재·중개로 북미가 정상회담을 추진키로 하면서 국정운영의 최고책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우선 회담을 열어 비핵화와 북미수교·평화협정을 먼저 주고받을 것으로 예상돼 예외적 조기경로 방식과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달 25~27일 북중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변수가 생겼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 해결 방식으로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 동시적 조치"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내정자를 내세워 "북한을 어떻게 비핵화할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수록 더 좋다"는 메시지를 내보낸 것에 반격이다.

북한이 비핵화를 의제로 한 북미정상회담에 나오겠다는 의사를 보인 뒤 트럼프 대통령이 한걸음 더 나아가 일괄타결 방식으로 '선비핵화'를 못박으려하자 중국을 끌어들인 김 위원장이 '동시행동 원칙'으로 받아친 셈이다.

그간 소외돼 있던 중국은 북중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담판'에 초기부터 전격 참여할 길을 열게 됐다. 현재의 과정이 남·북·미 3자간 협의로 계속 진행된다면 미국은 3자간 평화협정 및 북미수교를 무기로 북한을 '해양세력'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 이에 따라 북한 핵을 폐기시키고 주한미군 주둔은 용인 받는 최상의 패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 축으로 참여하면 비핵화의 방식과 속도를 둘러싼 미중간 타협이 불가피하다. '예외적 조기경로'가 '정상경로'로 변경될 소지가 생긴 셈이다.

2007년 10.4선언에서 '종전선언' 거론 = 지금 진행 중인 한반도 정세의 국면전환은 문재인정부가 기울인 적극적·전략적 노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남북·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비핵화-북한 체제안전보장의 맞교환 구도 속에 평화협정이 거론된다면,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가 서명의 주체가 될 것이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종전선언→평화협정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면 '협정의 당사자'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울러 '협정의 형식'에 대해서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과거 북한은 북미평화협정을 줄곧 주장했었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가 체결 서명을 했다. 북한-중국-미국 3자간 협정인데, 5년 뒤 중국은 북한에서 병력을 철수했고, 1992년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단에서도 빠졌다. 더구나 정전협정의 서명 주체인 '중국인민지원군'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다. 북한이 정전협정 서명의 한 당사자인 중국도 배제한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한 근거다.

상황은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산물인 2005년 9.19공동성명과 2007년 2.13합의로 달라졌다. 9.19공동성명은 △한반도 비핵화 달성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를 공약했고, 2.13합의에서는 실현되진 않았지만 '한반도 평화포럼' 구성을 명시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북한은 '남·미·북' 3자 안과 '남북한+미중' 4자안을 놓고 저울질하기도 했다.

남측이 참여한 종전선언과 이후 평화협정 체결로 평화로드맵의 방향이 가닥을 잡는다면, 한국의 참여 문제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4국간 평화협정은 지난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공동으로 발표한 10.4 정상선언에도 '종전선언'이라는 표현으로 관련 내용이 언급돼 있다.

당시 정상선언 4항에는 "현 정전체제를 종식하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이 있다.

평화협정 체결 형식으로는 남북한 양자가 서명하고 미국과 중국이 이를 보증하는 방식이 있고, 남·북·미·중 4개국이 전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북미가 2개의 부속협정을 체결하는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 전체 평화협정에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특수관계임을 명시 △군사분계선 및 NLL 현실화 △비무장지대에 평화지대 설치 △무력 불사용 등 분쟁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 평화보장관리기구 구성·운영 △국제적 보장 등을 담을 수 있다. 이어 남북간 부속협정으로 △남북 평화공존 및 평화통일 의지 천명 △상시 남북정상회담 및 상주대표부 교환 등을 명시하고 북미 부속협정에서는 △한반도 문제 평화적 해결 및 평화통일지지 △주권존중 및 영토 보장 △분쟁의 평화적 해결 △상호 국교정상화 조치 이행 등을 천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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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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