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과 전문의

"내전국가의 사망자수보다 국내 자살 사망자수가 더 많다." 이것은 수년전 복지부 차관의 발언이다. 비유는 멋졌으나 예산도 정책도 없었다. 다행히 문재인정부에서 민간 학자, 의사들과 시민단체의 노력 그리고 국회의 도움까지 얻어 자살예방정책과가 생기고 이전보다 더 큰 예산이 배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면 어떻게 하지' 라는 우려가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즉 시작부터 걱정이다. 왜냐하면 자살예방정책의 골간과 체계의 변화도 크지 않다. 박능후 장관이 제시한 대책에도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 새로운 사람도 없었고, 새로운 체계도 없었다. 결론부터 성급히 말하자면 이렇게 해서는 쉽지 않다.

자살은 국가적 재난적 사안

자살예방사업의 주체는 원래 대통령 혹은 국무총리의 사업이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핀란드의 자살예방정책에서 핵심은 심리부검사업이라고 알려졌으나 보건행정과 국민의 시각에서 보면 다르다. 핀란드 자살예방의 성공은 자살자 전수에 대한 심리부검을 결정하고 대통령 산하 직속위원회에서 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조언하고 관리한 마우노 코이비스토 대통령의 결심이 결정적이었다. 대통령, 국무총리 사무실의 벽판에 지난 달 자살사망자수가 눈에 띠도록 붙여져 있어야하고 전염성 있는 자살추세에 대한 정책적 결정도 역동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업은 앉아서 기다리면서 할 사업이 아니다. 국민이 사회적 타살이라 불리는 자살로 인해 사망하는 국가적 재난을 진두지휘할 사람은 적어도 국무총리 이상이여야 한다. 그래야 자살예방사업의 또 다른 핵심적 성공 요인인, "전 부처, 전 국민"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전환된다. 핀란드, 일본을 비롯하여 자살예방사업에 대한 국가 보고서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다.

자살예방사업이 한 부처에서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현대인의 자살은 주거, 금융, 복지, 가족 문제 포함하여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다양한 요인과 경로로 이루어진다. 일본처럼 우편배달부, 전기검침원부터 시장과 도지사까지 참여해서 함께 해야 억울한 죽음, 자살을 예방하고 줄일 수 있다. 생활문제부터 시작해서 심리문제로까지 오는 여러 경로의 길목을 지키고 자살로 향한 그 무거운 철문을 닫기 위해서는 전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생명사랑 지킴이라고 부르는 게이트키퍼를 양성한다지만 복지부 내에서가 아닌 전 부처가 참여하는 규모이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셋째로 다학제적 참여와 당사자들의 네트워크가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얼마전 NHS가 개혁 영상에서 밝혔듯이 현대 보건정책의 성공은 대부분 co-design 즉 협력적 파트너쉽을 통한 자발적 참여에서 이루어냈다. 자살시도자, 자살유가족, 자살자와 관련된 업무를 하는 다양한 관련 종사자들이 함께 자살자의 경로에서 행정적 노력 이상의 자발적 시민운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일로(silo, 외부와 소통하지 않고 벽을 쌓는 부서)효과가 한없이 높은 한국 행정에서 그 칸막이를 없애지 않는 한 이 정책은 우물안 개구리, 복지부 한 부서의 큰 예산을 쓰는 작은 사업이 되고 만다.

살고 싶어 지는 사회, 못 만드나

넷째로 더 전문적인 국민에 대한 심리적 치유가 절실하다. 현재 우리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는 국민이 매해 몇십만명인 나라다. 이 국민들의 인식을 전환하고 위로, 설득할 심리적 연구 사업을 진행해야한다. 한마디 캐치프레이즈가 해결할 사업이 아니다. '죽지 않고 살고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이 나라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를 연구하고 개발해서 전파해야한다. 국가의 기운을 '소용없다'에서 '해볼 만하다'로 만들어야한다.

많은 청소년들이 "이번 생에는 망했다"고 하면서 자해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주관적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고 있는 사회의 한복판에 우리는 서있다. '국민을 너무도 살기 힘들게 만드는 이 사회에서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시절에는 물어봤자 소용도 없었지만, 문재인 정부팀에게는 한번 묻고 싶다. 총리의 답변이 듣고 싶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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