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아동, 등교거부학생 극단적 선택 급증 … "우울증·정신 스트레스 학생, 부모 동의 없이 치료할 수 있어야" 법안 시급

한국 아동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한해 120여명의 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동안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학생 청소년 자살은 줄어들지 않았다. 위기학생 청소년의 문제가 단지 가정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학생·청소년 건강 주요정책을 들여다본다. 전문가들은 우울·급성스트레스를 겪는 아이들이 부모 동의 없이 치료가 가능한 법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교육부, 시도교육청,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 간 높은 벽을 허물고 융합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점검한다. <편집자 주>

"아이들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힘들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가정이나 학교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자살한 아동청소년 대부분이 심한 우울증을 앓거나, 정신건강학적 치료가 필요함에도, 부모가 동의하지 않아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20일 '제 1기 지켜줌인(人) 대학생 서포터즈'가 서포터즈 활동에 대한 각오를 종이비행기에 날려 보내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중앙자살예방센터 제공


홍현주 한림대학교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 소장의 설명이다. 홍 소장은 정신건강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시도교육청과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고위험군 아동청소년들이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맞춤형 정밀지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10-19세 아동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청소년 자살사망률은 2009년 정점을 찍은 후 2015년까지 감소추세를 보이다가, 2016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통계청의 2016년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살사망률(인구 10만명당)은 25.6명으로 전년 대비 0.9명(3.4%)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자살사망률은 4.9명으로 전년 대비 0.7명(16.7%)이나 증가했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 자살예방정책과 실효성이 높은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살시도 청소년, 정신적 증상 동반 = 자살을 선택하는 아동청소년 대부분이 '정신건강학적'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의학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가볍게 생각하거나 부모 동의가 없어 전문가 상담이나 치료 등 '골든타임'을 놓쳐 생명을 잃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부모 동의가 없이도 전문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관련법 개정'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유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심리부검 결과, 자살 학생 중 상당수는 정신병리가 있었음이 밝혀졌다. 자살한 학생 모두 우울장애나 급성스트레스장애, 조현병 등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망학생 30%정도만이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학생 중 70%는 자신의 질병 상태를 감추거나 소홀하게 생각했다. 부모들도 '쉬쉬'하거나 '내 자식이 정신질환자(?)일 리가 없다'며 치료를 강하게 거부한다. 일선학교에서 조사한 보고서 역시 자살학생 20%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이쯤이면 치유단계를 넘어 전문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전문의들의 의견이다.

이러한 현실은 부모나 학교에서 인식한 것보다,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쉽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어른들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전국최초로 '교육청-병원'이 연계한 위기학생 치료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면서 타 지역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학병원에 설치한 위(Wee)센터에 학생들이 찾아와 마음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학부모들 역시 병원 위센터에 신뢰를 보내고 있어 자녀와 소통이 쉬워졌다고 말한다. 2016년의 경우 병원을 찾아 전문상담을 진행한 게 2만5000여건에 달했다. 문제는 자살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 연령대가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학부모교육이다. 학교나 위(Wee)센터와 충분한 소통이 될 경우, 가정에서도 실효성이 높은 자살예방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정서행동특성검사에서 자살 가능성이 높은 '관심군' 비율이 2012년 14.9%에서 2016년에는 1.8%로 전국평균 3.2%보다 한참 줄어든 수치를 기록했다.

홍 소장은 "외부상담과 치료기관에 연계할 경우 미성년자인 학생들은 반드시 부모동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학부모들의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자녀 치료가 어렵다"며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 자살 요인, 사회양극화 등 변화 = 그동안 자살한 한국 청소년들의 가장 큰 요인은 학업스트레스였다. 가정이나 개인적 문제에 의해 발생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학업관련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게 특징이다. 한국 청소년들이 겪는 학업스트레스는 과도한 학습경쟁과 대학입시에 따른 결과라는 게 교육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교육부는 경쟁중심의 교육과정을 대폭 손질하며, '2015개정 교육과정'에 협력과 인성, 토론수업 등을 담았다. 문제는 대학입시 변화다. 대학입시 정책에 따라 학업스트레스에 따른 자살자 수가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송인한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청소년시기 건강한 고민을 나누고 풀어줄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며 "최근에는 소득빈곤격차에 따른 자살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경고했다.

소득빈곤가구의 아동청소년의 극단적인 선택은 낮은 자존감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가족의 해체와 상대적 빈곤의 사회현상은 청소년 자살 증가의 주요한 사회적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림대학교 '자살과 학생 정신건강 연구소'에 따르면, 학교에서 보고된 2017년 자살학생의 약 20%가 이혼, 별거, 사별 등 한 부모 가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약 40%가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발생했다. 소득수준 하위계층 자녀들의 자살은 2015년 18.4%, 2016년 23.5%, 2017년 29.2%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여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이해하고 살펴야 = 학생자살은 학기 초와 월요일에 많이 나타난다. 심리부검 결과, 자살청소년의 약 30%가 개학 전날 혹은 이틀 후 자살을 시행했다. 이들은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학교 적응력이 떨어졌다는 게 상담교사들의 증언이다. 자살사망 학생의 약 13%가 자살 직전 교칙 위반, 폭력, 절도, 도박 등 문제행동을 겪었다는 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평소 별다른 문제를 보이지 않던 학생이 자신의 문제점이 발각될 경우 심한 수치심, 두려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이럴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어, 깊은 관심과 심리적 보살핌이 필요한 대목이다. 교사는 대화기법 등에 주의해야 하고, 가정에서도 포용적인 태도로 자녀 입장에서 이해하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도록 부모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교육부는 다양한 사례를 중심으로 예방책을 세우고 시도교육청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등교거부 학생에 대한 관심과 대응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등교거부는 만성적 우울, 학교 적응의 어려움,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학생들에게 정서적 평가와 지원이 필요한 위기신호라고 진단했다.

이런 아동청소년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정부는 최근 청소년 위기문자 상담망 사업 '다 들어줄 개'와 정신건강전문가 학교방문관리사업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자살비율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고, 자녀를 잃은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조사여서 한계점이 분명하다. 따라서, 청소년 자살정책 수립에 필요한 객관적인 기초연구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경찰 조사 자료를 근거로 자살사망자 7만명의 심리부검에 착수했다. 교육부도 자살 예방에 초점을 맞추고 맞춤형 시스템 구축에 들어가 기대와 관심이 커지고 있다.

송 교수는 "어떤 이유로 자살을 하게 된 것인지 전문성이 확보된 조직에서 과학적 연구활동을 해야 자살 사망자를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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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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