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교과서, 달랑 네줄 기술에 그쳐

광주시 초·중·고, 70% 기념일 몰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올해로 89주년을 맞이했지만 역사적 평가나 정신계승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발생원인'이 잘못 기술돼 있고, 학생 70% 이상이 기념식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3.1운동과 함께 국내 3대 항일운동으로 평가받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잊혀진 역사'가 되고 있다.

◆전국 학생독립운동 시발점 =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시위를 시작으로 1930년 3월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일어난 운동을 말한다. 이 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전남 나주역에서 일본 중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한 데 격분한 광주고등보통학교(현재 광주일고) 학생들의 항일시위로 촉발됐고, 이후 전국적 양상을 띠었다.

1929년 11월 당시 학생 수백명이 광주시내로 진출하고 있다. 사진 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기념관 제공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특히 학생이 주체였으나 3.1운동과 비슷하게 전국적인 항일운동으로 발전했다. 여러 연구논문에 따르면 1929년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전국에서 320개교가 궐기했다. 함경·평안도 지역이 117개교로 가장 많았고, 서울과 경기 56개교, 전라 41개교, 경상 40개교, 간도 32개교, 충청 23개교, 강원 및 황해 11개교 순이다. 참가학생은 5만명을 넘었다.

◆조직적 항일독립운동으로 승화 = 광주학생독립운동 이전에도 학원문제 등으로 인한 학생시위가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은 식민지 차별교육 철폐와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보장, 사회과학 연구의 자유 등을 제기하는 독립운동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전남지방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 연구논문에서 "1920년대 말 신간회 운동을 비롯해 노동, 농민운동이 침체된 분위기에서 전체 민족해방운동을 다시 고양시켜주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학생의 노래'를 작사한 노산 이은상 선생은 '광주학생운동의 역사적 의의'라는 1957년 조선일보에 실린 기고문에서 "모욕 받는 동기 누이를 위해 의분을 참지 못했던 박 소년 1인의 미담이거나 광주 학생들의 의사로만 따질 일이 아니다"라며 "한민족의 전통적 생명력과 청년학생 전체의 의분이 광주학생들을 통해 용출됐다"고 평가했다.

광주고보 광주농고 학생들이 광주중 학생들과 충돌하는 장면. 사진 광주일고 학생독립운동기념관 제공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1930년대 노동 및 농민운동, 조선노동당 재건운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일부는 해외로 건너가 항일단체에 참가해 1920년대와 1930년대 독립운동을 잇는 가교역할을 했다. 윤준식 광주학생독립운동 동지회 부회장은 "이 운동이 3.1운동 이후 대표적인 항일독립운동인데도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광주행사로 축소된 기념식 = 이처럼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조국의 광복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독재정권 때는 기념식조차 못 열 정도로 수난을 당했다. 제 이름을 찾는데도 무려 50년이 넘게 걸렸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8년만인 1953년 11월 3일 '학생의 날'로 제정됐지만 독립운동기념일에선 빠졌다. 1960년대 '학생의 날'은 학생군사훈련 수단으로 악용됐다. 유신정권은 1973년 학생 시위를 우려해 아예 폐지했다. 1984년 '학생의 날'로 부활했지만 여전히 독립운동이라는 명칭이 빠졌다. 2006년에서야 비로소 학생독립운동 기념일로 제 이름을 찾았다.

기념식 또한 마찬가지다. 김 성 광주대 초빙교수는 '학생독립운동 기념사업 변천과정'에서 "1973년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되면서 국민적 관심사에서 멀어져갔고, 1984년에 부활됐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외면하는 국가기념일이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1953년부터 1958년까지는 서울 등 전국에서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1959년 광주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을 계기로 광주만의 행사로 전락했다.

◆교과서도 잘못 기술 =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교과서에서도 소외됐다. 김경훈 광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교사가 최근 발표한 '초등교육과정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따르면 이 운동은 초등학교 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에 달랑 네 줄로 기술돼 있다. 내용도 '기차로 통학을 하던 한일학생간의 충돌을 계기로 일어났다'고 잘못 적고 있다.

초등교사 지도서도 마찬가지다. 지도서는 '전남 광주에서 한일 학생 사이에 일어난 충돌을 계기로 평소의 민족차별에 대한 분노와 반일감정이 폭발하여 대규모 반일 학생시위가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발생 원인과 성격 등이 잘못된 내용이다.

잘못된 교과서는 학생들의 무관심을 부추겼다. 광주시교육청이 최근 초·중·고교생 31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학생독립운동 역사인식 설문조사'에서 25.8%만이 기념식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 김 교사는 "현행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포함된 내용이 너무 부족하다"며 "정신계승을 위해 체계화된 교육 자료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조명·전국화 과제 = 그간 학생독립운동동지회와 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등을 중심으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국화를 위한 세미나가 수차례 열렸다. 그러나 증언과 문헌이 부족하고, 좌우갈등으로 연구가 종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처음 나주역에서 촉발됐지만 이후 전국 320개 학교로 번진 항일운동인 만큼 전국화 작업이 중요하다. 독립유공자 발굴 역시 시급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정부포상을 받은 사람은 모두 212명(이계형 광주학생운동 독립유공자 현황)에 불과하다. 당시 참여한 인원이 5만4000명이고, 경찰과 검찰처분을 받은 사람이 2600명이나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이계형 국민대 특임교수는 연구논문에서 "공훈을 받은 수가 적은 것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독립운동가를 선정했고, 자료발굴에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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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택 방국진 기자 durum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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