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체제에 불만 표출 … 지지세력 결집 의도

'검찰 포토라인 패싱' … 검찰 수사에 대한 반발

일선 판사 '국민 분노 후배 판사에 떠넘기기' 비판

사법부 수장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이 12년간 근무했던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을 두고 논란이 많다.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 대한 불만 표출과 함께 법원 내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라거나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반발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법원노조를 비롯한 일선 판사들은 이런 태도에 대해 불순하다는 지적과 함께 자신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후배 판사들에게 짐을 지우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이런 행동이 검찰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검찰 출석하는 사법농단 정점 양승태│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 취재진 질문에 아무 말 없이 건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법원 내 적폐세력 결집 의도" = 11일 오전 9시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과 사전 조율 없이 자신이 대법관(6년)·대법원장(6년) 등으로 오랜 기간 근무한 대법원에서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한 뒤 검찰 청사로 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6월 자택 근처에서 밝힌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입장을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절대 다수의 법관들은 언제나 국민 여러분에게 헌신하는 마음으로 법관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성실히 봉직하고 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법관들도 각자의 직분을 수행하면서 법률과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저는 이를 믿는다"고 밝혔다.

이런 태도는 지난해 6월 1일 자택 앞 '놀이터 기자회견'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은 신성한 것이며 그것을 그렇게 함부로 폄하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이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로 인한 것이니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며 "그 분들의 잘못이 나중에라도 밝혀진다면 그 역시 제 책임이므로 제가 안고 가겠다"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등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은 고위인사들이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이례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논란이 많다. 검찰 수사에 불편한 심기를 품어온 보수 법관들의 결집을 유도하고, 대법원을 배경에 둔 채 자신이 '사법부의 상징적 존재'라는 점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본부장 조석제)는 전날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양승태가 서야 할 곳은 검찰 피의자 포토라인"이라며 "양승태가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은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법원본부는 이어 "이는 끝까지 법원을 자극해 혼란을 야기하려는 마지막 발악"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에 대한 노골적 불만 표현 =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포토라인을 사실상 패싱하고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강행한 것은 검찰에 대한 노골적 불만의 표현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 변호인단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검찰이 전·현직 대법관을 비롯해 100여명의 전·현직 판사들을 불러 조사한 것에 대한 불만을 검찰 포토라인을 무시하는 행태로 표현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그의 손발이었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피의자 신분'으로는 적절치 않았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류영재 춘천지법 판사는 전날 SNS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의 대법원 성명발표의 부적절함을 지적했다. 류 판사는 "피의자에게 법원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부여되는 것이 적절치 않고, 그 피의자에 대한 재판에 '친정이 하는 재판'이란 이미지가 부여돼 전관예우 의혹이 발생하는 등 재판하는 입장에서 부담이 커진다"고 밝혔다. 또 다른 재판개입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류 판사는 "최소한 도의적으로라도 사법농단의 책임자이신 분이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하면 결국 그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는 다시 후배 판사가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검찰 불만 = 검찰은 유례 없는 '포토라인 패싱' 출석 추진에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특별한 의견이 없고, 별로 언급할 말이 없다"면서도 "조직논리를 자극해서 검찰과 대립을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직 대통령의 경우에는 경비가 붙지만 대법원에서 하면 검찰이 보호조치를 해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지 않느냐"며 "어떤 명분을 가지고 밖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들(시위대)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막겠느냐"고 반문했다.

재경지검 한 현직검사는 "대법원은 재판을 해야될 곳이고, 양 전 원장 본인이 아직까지 거기 주인인 것도 아니다"라면서 "전직 대법원장이라고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한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출석할 때 청와대에서 해야됐느냐"고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어떤 의도로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표명을 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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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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