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비공개"

양 전 원장, 혐의 부인할 듯

사법농단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 돼 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수사가 시작된 지 7개월 만에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고 있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쯤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검찰 포토라인에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의혹 특별수사팀을 지휘해 온 서울중앙지검 한동훈 3차장과 티타임을 가진 뒤 청사 15층에 마련된 별도의 공간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조사실에는 최정숙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가 대동했고, 단성한 특수1부 부부장 검사가 조사를 맡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워낙 방대해 질문지는 총 150쪽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 두 차례 양 전 원장을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두 번째부터는 비공개로 부를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제지받는 시위자│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관련 검찰 조사를 받기 전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을 태운 차량이 대법원을 빠져나가려 하자 한 시위자가 도로에 뛰어들어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일본 강제징용 소송 개입 먼저 조사 =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핵심 혐의인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민사소송 개입 부분을 먼저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조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재상고심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일본이 반발해, 피해자 승소 판결을 확정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뜻을 전달하고,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상호 변호사를 집무실 등에서 만나 청와대 입장을 전달하며 재판 절차를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로 넘겨 승소판결을 막으려고 했으나, 2016년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실패했다.

이와 별도로 양 전 대법원장은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가처분 소송개입 △원세훈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 개입 △ 판사블랙리스트 사건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법원행정처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의혹 등 사법농단 사건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아왔다. 검찰은 핵심 증거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USB에 담긴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전반을 지시한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 내용은 40여개 =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4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양 전 대법원장의 조사범위에 대해 "대체로 임종헌 전 차장의 혐의를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이 분리해서 적용받은 것이고, 나누어진 두 전 대법관의 혐의의 대부분을 양 전 대법원장이 합쳐서 적용받은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죄명이 8개고 범죄혐의가 40여개임을 고려할 때 최종지시자인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도 40개 안팎일 것으로 예상된다. 임 전 차장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대부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서 혐의의 대부분을 부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검찰 출석에 앞서 부당한 인사개입이나 재판개입이 없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최종책임자인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을 적용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것이 검찰의 입장이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USB에 담긴 문건과 재판개입 문건을 작성했던 전현직 판사에 대한 조사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개입 등을 지시한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직 대법원장에 대한 예우는 갖추면서도 통상 수사의 예에 따를 것을 분명히 했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 조사는 본인이 완전히 거부하거나 도주하지 않는 한 수사를 통한 기소여부 결정을 위해 형소법에 정해진 필요한 절차"라며 "중요한 사건이지만 통상의 범죄수사"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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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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